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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희쌤 Oct 31. 2024

 '보다 읽다 말하다'

김영하 산문

1. 보다

본다는 말은 수정체에 맺힌 상을 뇌가 지각한다는 원래적 뜻을 넘어서 세상과 사물을 주의깊게 살피고 이해한다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눈을 크게 뜨고' 잘 보는 사람은 강할 수밖에 없다. 

    

진짜 부자는 소유하지 않는다

니콜라스 베르그루엔 '가난한 억만장자'는 집도 절도 없이 전 세계의 특급 호텔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부자들도 고가의 주택에 거주하지만 소유하지 않으며 차도 갖고 있지 않다. 리스회사에서 빌리면 된다. 재벌일가는 회사를 직접적으로 소유하는 대신 최소한의 지분으로 교묘하게 지배하면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여러 재화와 용역을 무상으로 누리고 있다. 

    

패스트 패션 시대의 책

종잇값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는 판에 책은 왜 더 싸지는 것일까. 스위스 명품 시계는 비싸다 그 이유는 '필요가 없으니까'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은 값이 내려간다 그러나 스위스 명품 시계는 사람들에게 필수품이 아니다 살 의향이 있고 구매력도 있는 소수의 소비자를 위한 것이다     


현재 책은 일종의 필수품이다 점점 저렴해지고 있다 심지어 도서관에서 무료로 대출해서 읽고 있다 마치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종류의 책이 내 것인 것 마냥. 작가는 책이 더 이상 필수품이 아닌 시대가 온다면 그때는 선택받은 부유한 소수만이 책을 사고 읽을 것이다라고 한다 음... 책이 없는 시대가 오지 않기를 바라본다 내 생각엔 책의 형태가 바뀔 수는 있어도(이미 전자책이 널리 활성화되었다)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2. 읽다

읽는 능력은 보고 말하는 능력보다 늦게 나타난다 비록 늦게 시작했지만 읽는 행위는 인간을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무엇보다 독서가 강력한 것은 독자를 독립적 사고를 하는 개인으로 변모시킨다 책을 읽는 사람은 강하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더 나은 세상과 삶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생각과 상상은 결국 인간을 행동하게 만든다

     

우리를 미치게하는 책들

어떤 책은 분명 우리를 살짝 미치게 만든다 중독성 있는 마약처럼 작용한다 고등학생 시절에 나는 엠미 보바리처럼 소설책에 탐닉했다-     


이 부분에서 격하게 공감한다 나 또한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 고3 시절에 로맨스 소설(제인에어, 폭풍의언덕, 천국의 계단, 전쟁과 평화 ...같은 등등)에 빠져 들었다 교과서를 펼쳐놓고 소설책을 읽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찌나 재밌고 다음 내용이 궁금한지 참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이때가 가장 책을 많이 탐독한 때가 아닐 듯싶다 

    

인간의 내면이란 크레이프 케이크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고 쌓여가면서 개개인마다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독자, 책의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도서관은 책을 모아 놓은 곳이다 누구라도 그곳에 들어가면 어떤 신성함을 느끼게 된다 많은 저자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책들은 묘비처럼 느껴진다 그곳은 죽은 이와 산 자가 가장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저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신경 쓰는 사람도 거의 없다 작가는 자기가 쓴 책에 묻힌다'는 말의 의미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곳도 도서관이다     


주말마다 가는 도서관이지만 작가처럼 도서관의 의미를 해석하니 도서관이 더 새롭게 다가온다 책등이 묘비명이라니~ 이런 공동묘지라면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책이 많이 있는 어떤 방으로 가서 그중 한 권도 손을 대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한답니다 그러면 무어라고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받게 돼요 그것은 어떤 강한 흥미라고도 할 수 있고 어떤 안도감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장클로드 카리에르-     


내가 도서관과 서점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만 하루종일 보아도 질리지 않고 책을 읽다가 졸아도 기분 좋고 편안하다   

  

3. 말하다

TED,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힐링캠프, 하버드대학 등에서 했던 화제의 강연과 각종 인터뷰, 대담 등을 해체하여 그동안 소설가 김영하가 세상을 향해 해온 말들을 몇 가지 주제로 묶어 독특하게 구성했다 지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예리한 말하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작가의 생동감 넘치는 말을 글로 접할 수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은 강하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더 나은 세상과 삶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생각과 상상은 결국 인간을 행동하게 만든다. 책을 통해 타인의 생각을 흡수하여 소화한 사람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고, 전과는 다른 방식과 내용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내가 말하면 다른 사람도 나에게 말한다. 그리하여 대화라는 게 시작되는데, 이런 섞임을 통해 우리의 생각은 더 다듬어지고 풍성해진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시야가 좁다는 것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더 많은 책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렇게 ‘보다’는 ‘말하다’와 ‘읽다’로 이어지고, 그 셋은 순환하면서 인간을 더욱 강한 존재, 세상의 조류와 대중의 광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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