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걱정 마. 나 완전 잘살고 있어요
늦은 주말 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술이 거하게 취한 목소리.
아빠는 다짜고짜
아빠는 젊은 시절 내내 술과 친구를 좋아하셔서 늦게 들어오시는 일이 다반사였다.
평균 주량 소주 10병
아무리 취해도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술이 거하게 취한 목소리로
"개딸~~~"을 외치시면 내 방문을 열어젖히곤 하셨다.
아빠의 술주정은 늘 나를 괴롭히는 거였다.
늘 한참 단잠을 자고 있는 딸을 굳이 깨워 까슬까슬한 수염을 볼에 비비고, 코를 물고 귀를 잡아당기셨다.
잠결에 늘 당해야 했던 나는 아빠의 그 술버릇이 그렇게도 싫었다.
늘 괴로워하는 나를 보면서 뒤로 넘어갈 듯 웃어젖히는 아빠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그렇게 술에 취했어도 늘 아침이면 별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출근을 하셨다.
주량에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자신 있다던 아빠가 소주 1병에 취해서 실수하게 될까 봐 도망쳐왔다라면서 속상해하셨다.
"딸~ 아빠가 소주 딱 1병 마셨는데 취기가 확 올라오는 게 딱 추태를 부릴 거 같더라고
우린 또 그럼 안되잖아?
술에 취해도 실수하면 안 되잖아 그지?
근데 오늘 아빠가 좀 막 흐트러지고 싶었거든.
노래방 가서 임영웅 노래도 부르고, 친구들한테 힘들다고 투정도 부리고
하고 싶은 말도 다 하고 아빠 하나도 강하지 않다고 막 망가지고 싶었는데 그게 참 안되더라."
"아빠~ 만약에 거기서 하고 싶은 대로 했음 아마 지금쯤 더 힘들었을걸. 괜히 그랬다고 머리 싸매고 후회할걸.
잘했어. 나한테 망가지면 되지. 뭘 또 그걸 후회할게 뻔한데 친구들한테 하려고 해?
나한테 해. 내가 다 듣고 잊어줄게"
"근데 딸~ 아빠가 그럼 안되잖아. 우리 딸도 힘든데 아빠까지 그럼 안되잖아 그지?"
"아닌데? 나 하나도 안 힘든데? 정말 행복하고 잘 사는데? 세상에 나처럼 걱정 없는 애가 없는데..^^
내가 딱이야. 나한테 해."
"아빠가 요즘 자꾸 딸 생각을 하면 미안한 것 투성이야.
네가 이혼한 것도 네가 서방복 없는 것도 아빠가 널 잘못 낳아서 그런 것 같고
(울 아빠는 사주 공부하신 분이라서 사주에 대한 믿음이 지나치게 강하시거든요. 제가 서방복이 없는 사주라네요)
그래서 우리 딸 이리 힘들게 사는가 싶어서 아빠가 너무 미안해"
"아니 이렇게 후회할 거면 사주 공부 미리 해서 엄마한테 좀 늦게 낳으라고 하지 그랬어?^^
애 나오는 게 아빠 뜻대로 될 거면 아빠도 좀 좋은 사주에 태어나지.. 히히.
아빠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왜 미안해하고 그래.
태어나는 시간은 아빠가 조절 못하는 거야. 미안해할 필요 없어
그리고 요즘 세상엔 서방 없는 게 박복한 게 아니라니깐.
난 원래 누구 마누라로 맞춰서 살기 싫고 그냥 나로 살고 싶었어.
누굴 만났어도 그랬을 거야. 아빠 탓이 아니라 내 성격 탓이야. "
그 후로도 아빠는 세상 오만가지가 다 미안하다며 하다못해 학교 다닐 때 학원 못 보내준 것도 미안하다고 속상해했다.
술의 힘이라도 빌려 자식에서 미안하다고 하는 울 아빠가 너무 멋있었다.
니 인생 네가 사는 거지. 니 결정이니 아빤 그저 응원한다고 했던 울 아빠여서
그런 아빠가 내 아빠여서 그것만으로 난 얼마나 부모복이 있는 사람인데 아빠는 해주지 못한 것들만 생각이 나시나 보다.
울 아빠 평생 풍족치 못하게 길렀고 살갑게 사랑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단단하게 길러주셔서 이런 힘든 일도 웃으면서 걸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아빠, 엄마가 건강하고 내 아들이 내 곁에서 잘 자라고 있고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급여로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히 잘 살아가고 있으니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거 아닌가?
서방복 없음 어때. 잘 사는 부모복 없음 어때, 자식복이 좀 없음 어때.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는 거니 다른 어떤 복이 있겠지.
나의 이혼이 아들에겐 때로는 결핍일 거고, 부모에겐 마음의 상처겠지만 그 또한 평생 곁에서 갚아가면서 살아가는 게 저의 업보라는 생각으로 그전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기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