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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언니 Apr 28. 2020

아빠 나 괜찮아

아빠 걱정 마. 나 완전 잘살고 있어요

늦은 주말 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술이 거하게 취한 목소리.


아빠는 다짜고짜 

“딸~ 아빠가 늙었나 봐. 

겨우 소주 1병 먹고 취해서 실수할 거 같아서 도망쳐왔어”


아빠는 젊은 시절 내내 술과 친구를 좋아하셔서 늦게 들어오시는 일이 다반사였다.

평균 주량 소주 10병

아무리 취해도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술이 거하게 취한 목소리로 

"개딸~~~"을 외치시면 내 방문을 열어젖히곤 하셨다.


아빠의 술주정은 늘 나를 괴롭히는 거였다.

늘 한참 단잠을 자고 있는 딸을 굳이 깨워 까슬까슬한 수염을 볼에 비비고, 코를 물고 귀를 잡아당기셨다.

잠결에 늘 당해야 했던 나는 아빠의 그 술버릇이 그렇게도 싫었다.

늘 괴로워하는 나를 보면서 뒤로 넘어갈 듯 웃어젖히는 아빠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그렇게 술에 취했어도 늘 아침이면 별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출근을 하셨다.


주량에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자신 있다던 아빠가 소주 1병에 취해서 실수하게 될까 봐 도망쳐왔다라면서 속상해하셨다.   

  

"딸~ 아빠가 소주 딱 1병 마셨는데 취기가 확 올라오는 게 딱 추태를 부릴 거 같더라고

우린 또 그럼 안되잖아? 

술에 취해도 실수하면 안 되잖아 그지?

근데 오늘 아빠가 좀 막 흐트러지고 싶었거든.

노래방 가서 임영웅 노래도 부르고, 친구들한테 힘들다고 투정도 부리고

하고 싶은 말도 다 하고 아빠 하나도 강하지 않다고 막 망가지고 싶었는데 그게 참 안되더라."


"아빠~ 만약에 거기서 하고 싶은 대로 했음 아마 지금쯤 더 힘들었을걸. 괜히 그랬다고 머리 싸매고 후회할걸.

잘했어. 나한테 망가지면 되지. 뭘 또 그걸 후회할게 뻔한데 친구들한테 하려고 해? 

나한테 해. 내가 다 듣고 잊어줄게"

  

"근데 딸~ 아빠가 그럼 안되잖아. 우리 딸도 힘든데 아빠까지 그럼 안되잖아  그지?"

    

"아닌데? 나 하나도 안 힘든데? 정말 행복하고 잘 사는데? 세상에 나처럼 걱정 없는 애가 없는데..^^

내가 딱이야. 나한테 해."     


"아빠가 요즘 자꾸 딸 생각을 하면 미안한 것 투성이야. 

네가 이혼한 것도 네가 서방복 없는 것도 아빠가 널 잘못  낳아서 그런 것 같고

 (울 아빠는 사주 공부하신 분이라서 사주에 대한 믿음이 지나치게 강하시거든요. 제가 서방복이 없는 사주라네요) 

그래서 우리 딸 이리 힘들게 사는가 싶어서 아빠가 너무 미안해"   


"아니 이렇게 후회할 거면 사주 공부 미리 해서 엄마한테 좀 늦게 낳으라고 하지 그랬어?^^

애 나오는 게 아빠 뜻대로 될 거면 아빠도 좀 좋은 사주에 태어나지.. 히히. 

아빠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왜 미안해하고 그래. 

태어나는 시간은 아빠가 조절 못하는 거야. 미안해할 필요 없어

그리고 요즘 세상엔 서방 없는 게 박복한 게 아니라니깐. 

난 원래 누구 마누라로 맞춰서 살기 싫고 그냥 나로 살고 싶었어. 

누굴 만났어도 그랬을 거야. 아빠 탓이 아니라 내 성격 탓이야. "

    

그 후로도 아빠는 세상 오만가지가 다 미안하다며 하다못해 학교 다닐 때 학원 못 보내준 것도 미안하다고 속상해했다.

술의 힘이라도 빌려 자식에서  미안하다고 하는 울 아빠가 너무 멋있었다.

니 인생 네가 사는 거지. 니 결정이니 아빤 그저 응원한다고 했던 울 아빠여서 

그런 아빠가 내 아빠여서 그것만으로 난 얼마나 부모복이 있는 사람인데 아빠는 해주지 못한 것들만 생각이 나시나 보다.    


울 아빠 평생 풍족치 못하게 길렀고 살갑게 사랑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단단하게 길러주셔서 이런 힘든 일도 웃으면서 걸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아빠, 엄마가 건강하고 내 아들이 내 곁에서 잘 자라고 있고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급여로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히 잘 살아가고 있으니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거 아닌가?


서방복 없음 어때. 잘 사는 부모복 없음 어때, 자식복이 좀 없음 어때.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는 거니 다른 어떤 복이 있겠지.  

나의 이혼이 아들에겐 때로는 결핍일 거고, 부모에겐 마음의 상처겠지만 그 또한 평생 곁에서 갚아가면서 살아가는 게 저의 업보라는 생각으로 그전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기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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