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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Sep 25. 2023

Prost!: 맥주 나라의 특별한 주문

   술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기쁜 마음에 저도 모르게 글이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중간에 이미지가 많이 들어가서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으실 거예요. 글을 나눌까 하다가 맥주도 원샷인데 글도 원샷으로 가자 싶어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흥겹게 읽어 주시기를.


   지금 뮌헨에는 옥토버페스트가 한창이다. 뮌헨 근교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나는 토요일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한글학교에 가는데,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테레지엔 비제(Die Theresienwiese, 테레제(공주)의 잔디밭: 1810년 10월,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황태자와 작센의 테레제 공주의 결혼식에서 옥토버페스트의 전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가 한글학교와 무척 가깝기 때문에 가죽 반바지를 입은 헨젤들과 가슴을 끌어모은 그레텔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을 보고 올해도 옥토버페스트가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지난 글에 우리 사회에 제일 많이 알려진 독일어 단어로 ‘아르바이트’를 꼽았는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독일어 단어는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라고 한다. 브라질 리우 카니발, 일본 삿포로 눈축제와 함께 3대 축제로 꼽히는 세계 최대 맥주 축제다. 옥토버페스트 기간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통 복장을 차려입고 나와서 반짝이는 얼굴로 축제를 즐긴다. 맥주만 냅다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먹을거리를 파는 형형색색의 가판대가 들어서고, 퍼레이드와 서커스, 영화 상영이나 음악 공연 같은 이벤트가 즐비한 축제다. 가장 놀라운 것은 허허벌판에 롯데월드 하나 분량의 놀이기구가 매년 솟아난다는 것. 한 5년쯤은 그대로 두어도 될 것 같은데, 매년 열심히 쌓아 올렸다 거둬들였다 하는 게 희한하고 놀랍다. 혹시 조상님인 니체의 영원회귀 철학을 따르는 걸까.


   올해는 축제 첫날 롤러코스터 추돌 사고가 생겨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횔렌블릿츠(Der Höllenblitz, 직역하자면 지옥번개 정도 되겠다)라고 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롤러코스터가 매년 들어서는데, 열차 하나가 엔진 이상으로 출발하지 못하면서 뒤따라 들어오던 열차와 부딪혔다. 다행히 운행 중의 사고가 아니어서, 9명이 경미한 부상을 입고 행사장 내 의료시설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롤러코스터가 추돌했다는 소식에 너무 놀라서 마신 술이 번쩍 깨는 느낌이었는데, 자세한 소식을 듣고서 모두들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쨌든 롤러코스터가, 그것도 실내와 실외에 모두 들어서는 큰 규모의 축제를 생각하면 되겠다.  

대략 이런 모습 ©Bayerischer Rundfunk

   아니 그런데 10월 축제를 왜 9월에 하냐고? 옥토버페스트에 맞춰 독일 여행을 계획한다면 주의해야 한다. 보통 10월의 첫 일요일이 옥토버페스트의 마지막 날이고, 대부분의 축제는 9월에 진행된다. 올해의 옥토버페스트는 9월 16일부터 10월 3일까지. 독일 날씨는 9월부터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쌀쌀해지고 10월에는 급격히 추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교적 온화한 날씨를 즐기려는 이유에서다. 앞서도 말했지만 남자들은 가죽 반바지에 얇은 체크무늬 셔츠, 여자들은 퍼프소매 반팔 블라우스에다 드레스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정도이기 때문에 이 복장 만으로는 추위를 견디기 어려울 수 있다.

술 마실 생각에 즐거운 헨젤과 그레텔들. 레더호젠과 딘들은 독일 전통 복장이라기보다 제가 사는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 복장이에요.

   하지만 옥토버페스트를 즐기다 보면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옷을 하나 입게 된다. 비어야케(Bierjacke)라는 옷인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옷이다. 애주가인 나는 (번번이 말하지만 금주령이 있는 시대에 태어났으면 투옥 중이었을 거다) 독일에 살기 전부터 비어야케를 무수히 입어왔다.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대충 짐작할 듯하다. 술을 마시다 보면 온도가 2도 정도 상승하면서 내 주변으로 뜨끈한 매직 실드가 쳐진다는 것.

    비어야케는 맥주를 뜻하는 비어(das Bier)와 재킷이나 점퍼를 뜻하는 야케(die Jacke)를 합친 말로, 술을 마시다 보면 취기가 올라 몸이 후끈해지는 느낌을 말한다. 그런 기분을 두고 '비어야케를 입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튼튼한 독일인들에게는 비어야케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지, 사실 그리 자주 쓰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원래는 영어권 슬랭인데, 표현만 그대로 독일어로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이 표현을 독일어 선생님인 동네 이웃에게서 배웠고, 듣는 순간 너무 귀여워서 내 옷장 안에 고이 보관해 두었다.  

아마존에 진짜로 이런 비어야케가 있는 걸 보고 크게 웃었다. 보냉 재질이라는데, 껄렁껄렁하고 위풍당당한 자태가 몹시 매력적이다.

   옥토버페스트는 그 해 만든 햇맥주가 든 나무 술통을 개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오에 뮌헨 시장이 맥주통에 맥주가 나오는 꼭지를 커다란 나무망치로 박아 넣으면서 "O'zapft is!(오차프트 이스: 맥주통에 꼭지를 박아 넣었다는 뜻의 바이에른 사투리. "맥주통이 열렸다!"는 선언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라고 외치면 축제가 시작된다. 몇 번의 망치질로 박아 넣는지를 세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 신기록은 단 두 번의 망치질로 박아 넣은 기록이 있는 크리스티안 우데 전임 시장과 그 뒤를 이어 현 시장이 된 디터 라이터가 가지고 있다. 자그마치 20번 가까이 쳐서야 성공한 사례도 있다고 하는데, 라이터 시장은 올해도 땅땅, 단 두 번의 망치질로 성공해서 자신의 기록을 재확인했다.

O'zapft is! 맥주통이 열렸습니다! ©Bayerischer Rundfunk

    축제에 사용되는 맥주는 보통 맥주보다 알코올 도수를 약간 높게 만든다고 한다. 매년 축제 기간에 약 700만 리터의 맥주가 소비된다는데, 잔도 큼지막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500cc 잔 따위는 바이에른 대부분의 유명한 비어가르텐이나 비어할레, 특히 옥토버페스트에는 맥주잔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1리터가 들어가는 '마쓰(die Maß)'라는 두꺼운 유리 머그에 따른 것이 한 잔. 6대 브랜드의 맥주를 모두 마시려면 6리터를 마셔야 한다. 그러므로 옥토버페스트에 참가하는 대표 브랜드 맥주를 하루에 종류별로 다 맛보겠다는 용맹한 마음은 부디 거두시기를.

저의 첫 옥토버페스트 사진. 얼굴을 최대한 가리는 사진을 쓰려다 보니 잔 크기가 실감이 안 나는데 무척 큰 잔이에요. 아이가 500 잔에 마시는 것은 사과주스입니다. (놀람 금지)

   옥토버페스트는 테레지엔 비제('초원'을 뜻하는 비제(die Wiese)의 바이에른식 표현인 비즌(Wiesn)으로 줄여 부르곤 한다), 즉 잔디밭에서 시작되었기에 햇볕을 담뿍 받으며 꿀 같은 황금빛 맥주잔을 기울일 수 있는 야외석도 많다. 하지만 맥주 회사별로 커다랗게 쳐놓은 대형 천막 안에 들어가야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분위기만 살짝 보시라고 예전 영상을 올립니다. 술 마셔서 손 떨린 거 아니고요... 원래 제 영상은 불안하고 저급한 카메라 워크가 특징입니다. (와중에 소화기 엔딩 무엇)

   천막에 입장하면 귀가 먹먹해지면서 차원을 건너온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살짝 상승한 온도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잔 부딪는 소리. 밴드는 쿵짝쿵짝 신명 나는 음악을 연주하고, 소시지와 감자, 고기 굽는 냄새가 코 끝에 휘감긴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사람들은 어깨를 걸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목청 높여 건배를 하는데, 수많은 맥주잔이 동시에 부딪히는 소리를 배경으로 "Prost!('프로스트!'라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 발음은 프호스트에 가깝다)"를 외칠 때 축제의 흥은 절정에 다다른다.


Prost!

   커다란 천막 안을 온통 메아리처럼 채우는 단어 ‘Prost’는 독일에서 건배할 때 가장 즐겨 쓰는 말이다. '사용하다, 유익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prodesse이 변화한 prōsit(좋기를, 유익하기를)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므로 잔을 부딪히는 상대방이 탈없이 건강하며 모든 일이 순조롭기를, 이 잔과 우리의 시간이 당신에게 유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15세기 초 대학에서 박사 학위 구술시험을 볼 때 오랜 시간 문답을 나눌 시험관들을 위해 학생들이 와인과 과자를 준비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시험관들은 그 와인을 마시면서 학생에게 "Prosit!"이라는 말로 행운을 기원해 주곤 했다고 한다. 그것이 점차 확산되어 술을 마실 때 서로에게 행운을 기원하는 경쾌한 감탄사로 발전한 것이다. 영어로 ‘차가운 서리’를 뜻하는 frost와 발음이 비슷해서, 개인적으로는 'Prost!"하고 외치면 내가 잡은 맥주잔에 시원하고 짜릿한 감각이 더해지는 것 같다.  


   술이란 걸 마시다 보면 각종 사건사고가 생기는 법이니, 이 잔을 마시고 탈없이 건강하고 괜찮기를 바라는 마음, 이 시간이 부디 후회나 부끄러움이 아닌 즐거움과 유익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건배의 말은 참 다정하게 들린다. 술을 마시면 어느 순간 입게 되는 비어야케처럼, 상대에게 한 겹 보호막을 두르는 마법 주문이 되면 좋겠다.  


  독일의 술문화에 관한 온라인 포럼을 본 적이 있다. 유럽 내의 나라별 비교가 눈에 띄었는데, 평소에는 많이 마시지 않지만 특별한 경우에 미친 사람들처럼 달리는 스칸디나비안 음주 문화, 그리고 과도한 음주는 삼가지만 평소에 식사와 곁들여 간단히 마시는 것이 일반화된 지중해식 문화, 이 두 문화에서 안 좋은 것만 골라 합친 것이 독일 술 문화라는 의견을 보고 크게 웃었다. 평소에도 챙겨 마시고, 특별한 날에는 더욱 왕창 마신다는 얘기다.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신 사람’이라는 뜻의 '비어라이혜(Bierleiche)'라는 단어가 따로 존재할 정도다. 영국식 음주가 단거리 달리기라면 독일식 음주는 마라톤이라고도 한다.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어떤 농담을 건네서든 상대에게 술 한 잔을 권하는 문화가 있는 반면, 독일은 오히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 관대한 편이라는 의견도 많은 지지를 얻고 있었다. 또 비교적 일찍 합법적인 음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법적 보호자의 동의가 있다면 만 14세부터 맥주와 와인을 마실 수 있고, 16세부터는 맥주 구입이 가능하다. 위스키 같은 센 술은 성인이 되는 18세부터 마실 수 있다.) 부모님이나 어른들의 관심 아래 스무 살이 될 때까지 5년 정도의 적응 기간이 있고, 그렇기에 이십 대가 되면 오히려 술을 책임 있게 즐기게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마시는 건 사실이지만 요즘의 독일은 예전만큼 마시지 않고, 무알콜이나 가벼운 칵테일류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특히 남부 바바리아 지방(네, 저희 동네입니다...)에서는 아침에 흰 소시지에 곁들여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일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일터에서도 맥주 한 병 정도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 분위기. 처음 독일에 와서, 안내 데스크에 마시다 만 맥주병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술병 노출을 금하는 미국과는 달리, 놀이터에서 부모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거나 맥주병을 손에 들고 산책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술에 대한 규정이 엄격한 미국에 살다가 독일에 왔을 때, 피자가게 전단지에서 배달시킬 수 있는 술 메뉴가 피자 메뉴보다 더 긴 것을 보고 당황 반 기쁨 반이 짬짜면처럼 내게 배달되는 것을 느꼈다. 보통 마트 계산대 근처에는 사람들의 추가적인 구매욕구를 부르는 작은 물건들이 오르기 마련인데(예를 들면 껌이나 사탕, 초코바 같은 것), 독일 마트 계산대 부근에는 귀여운 미니 술병들이 빠지지 않고 놓여 있다. 세상의 모든 작은 것들은 귀엽지만, 코에 붙이기도 뭐한 작은 술병들의 귀여움이란. 어쨌든 이 나라는 술과 관련해서 여러모로 나를 놀라게 한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것은 맥주에 관련된 역사다. 알고 보니 이곳 사람들에게 맥주는 생존과 관련된 것이었고, 종교적 신념과도 관계가 깊은 것이었다.


맥주 마시는 아이들?
A Boy Drinking (Annibale Carracci, 1582-3)/ Boy Drinking (Cornelis Picolet, between 1641 and 1679)

   <술 마시는 소년>이라는 이름의 이 그림들은 각각 16세기 이탈리아,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의 작품이다. 엄마의 눈으로 봤을 때는 놀라 자빠질 그림들이다. 사실 왼쪽 그림은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이 집에 숨겨둔 과일주를 몰래 한 잔 맛보는 느낌 같기도 한데, 오른쪽 그림에서는 소년이라기보다는 아기에 가까운 녀석이 아주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맥주잔으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방긋 웃고 있다. 그런데 놀랄 일은 아니다.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에서는 식사 때 물 대신 알코올 도수가 0.5도에서 2.8도 사이의 아주 약한 맥주를 아이와 여성들이 마셨다고 한다. 이런 맥주를 스몰 비어라고 부르는데, 주로 맥주를 만들 때 생기는 찌꺼기를 발효시켜 만든다. 조지 워싱턴의 전시 노트에도 군대에서 이런 스몰 비어를 물 대신 보리차처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그들이 이렇게 맥주를 마셨던 이유를 흔히 석회질 물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식수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의 질 때문이라기보다는 건강이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던 것이다. 물을 마시고 병에 걸리거나 죽는 경우가 많았을 만큼 당시의 물은 위생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물을 끓이면 살균이 되어 안전해진다는 사실을 아직 몰랐고, 큰 도시일수록 강물이 오염되어 식중독이 유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맥주를 마시면 의외로 식중독에 걸릴 확률이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의사들이 사람들에게 맥주를 권했다. 맥주는 끓여서 발효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부들은 가족의 건강을 위해 집에서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이들에게 맥주는 건강 음료였던 것이다. 내 아이의 건강을 위해 맥주를 준비하는 엄마라니, 당장 잡혀갈 것 같지만 당시의 생활상으로는 자연스러웠던 모양이다.


   이런 이유로 과거 독일 남부 농촌 지역에서는 오늘날 가정집 부엌에서 커피를 끓이듯 집집마다 맥주를 만드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는데, 수도원도 커다란 집이었으니 당연히 이 아름다운 전통을 따랐다. 독일에서 무슨 맥주를 마셔야 할지 모르겠을 때는 그냥 수도사들이 그려진 맥주를 마시면 될 만큼, 수도원에서 만든 맥주들은 맛과 향이 뛰어나다. 독일의 대표 맥주인 아우구스티너, 프란치스카너, 파울라너 같은 맥주들은 모두 남성형을 만드는 접미사 '-er'가 붙은 단어로, 각각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수도사,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사, 성 파올라 수도원의 수도사라는 뜻이다.  

잘 모르겠다 싶으면 이렇게 수도사들이 그려진 맥주를 드세요

   일반 가정집이나 브루어리에서와는 달리 수도사들은 글을 읽고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실험과 연구를 통해 좋은 맥주를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고 전수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수도원 맥주는 일반 맥주보다 품질이 우수했고 맛이 좋았다. 맥주는 수도원 재정에 큰 도움을 주는 수익원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하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음료이기도 했다.


   액체빵(Liquid bread)이라는 맥주의 별칭이 있다. 빵 하나를 호로롭 마시는 것과 같기에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뜻으로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사실 이 별명에는 보다 깊은 종교적 함의가 있다. 수도사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양 이외의 맥주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하루를 지탱할 빵 한 조각을 얻기 힘들었던 빈민들은 맥주를 통해 고된 노동을 버틸 에너지를 채울 수 있었다. 아마 추운 겨울에도 비어야케의 온기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액체로 흐르는 빵은 그들에게 기적이자 은혜였을 것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안덱스 수도원이라는 맥주의 성지가 있다. 그곳에도 ’맥주는 빵처럼 곡식과 효모와 물로 만드는 것이니 이것은 쾌락이나 사치가 아니요, 그저 빵 같은 음식‘이라는 아름다운 말씀이 계셨다(아멘).


   액체빵이라는 별명은 사순절과 관련이 깊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 40일 동안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는 기간으로, 수도사들은 이 기간에 절제하고 금식하며 예수님의 고통과 희생을 되새겼다. 하루에 한 번 고체로 된 간단한 식사 외에 '흐르는 것'만 섭취할 수 있었는데, 이 '흐르는 것'을 두고 맥주를 떠올리는 깜찍한 수도사들이 생겨났다. 그 시작이 공교롭게도 17세기 독일 바이에른 뮌헨 지역의 성 파올라 수도원이었다. 자신을 파올라의 수도사, 즉 파울라너(Paulaner)라고 불렀던 이 수도사들은 사순절에 맥주를 마셔도 되는지 묻는 서신을 로마 교황에게 보내 답을 구하기로 한다. 교황께서 맛보시고 부디 긍정적인 답변을 주시기를 바란 듯, 직접 정성스럽게 빚은 맥주와 함께. 당시 뮌헨에서 로마로 가는 길은 길고도 험난해서, 맥주가 교황에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마시기 힘든 상태로 변질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맛없는 맥주와 서신을 받아 든 교황은 자비의 마음으로 허락의 결정을 내린다. 힘들게 계율을 지키고자 하는 수도사들에게 버틸 힘을 주고 싶었고, 맥주는 도수도 제법 낮았기에 심신을 크게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공식적으로 금식 중 섭취할 수 있는 음료가 된 맥주는 이런 연유로 '흐르는 빵‘, 즉 ’액체빵'이라는 귀엽고도 성스러운 별명을 갖게 된다. 이후 파올라 수도원의 맥주에는 독일어로 ‘구세주, 구원자’를 뜻하는 살바토르(Salvator)라는 이름이 붙는다. 수도사들은 한 해의 첫 살바토르를 오픈할 때 바이에른 영주를 초대해서 첫 잔을 바쳤다고 하는데, 현재 파울라너 살바토르 맥주 라벨에 그 모습이 그대로 들어있다.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지면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었다고도 하니,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수도사들이 영주에게 직언하기도 좋았을 것이다. 여러모로 은혜로운 액체빵이다.

파울라너 살바토르. 광고 이미지에도 빵이 보인다. 안주 아님.


   (...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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