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ul 17. 2023

황혼무렵 시 한잔8 모순-헐크와 배너박사

항상 화가 나있던 배너박사와 헐크와의 수용,화해


.



누구나 자기 말을 지키며 살고 싶어한다. 그 누구도 거짓말쟁이라 손가락질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종종 내 마음은 천사와 악마같은 두 가지의 소리가 동시에 새어나온다. 마징가 제트의 최종보스 닥터 헬의 부하이지만, 오히려 최종보스보다 더 매력적인 아수라 백작은 그렇게 두 가지 마음의 소리를 동시에 내는 기괴한 캐릭터성 덕분에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게 아닐까.


출처 나무위키 아수라 남작


아수라 백작(사실은 남작인데 마지막에 죽고나서 닥터헬이 백작으로 특진해줬다고 한다) 처럼 하나의 몸에 두 가지 정체성이 공존하는 대표적 캐릭터는 역시 헐크일 것이다. 박사학위가 무려 7개나 되고 천재들이 널린 마블 유니버스에서도 존경받는 배너 박사는 실수로 감마선에 노출된 후 화가 나는만큼 육체적으로 무제한으로 강해지는 녹색괴물 헐크로 변한다. 가장 지성적인 존재가 가장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존재로 변신한다는 건 아이러니하지만 또 너무나 매혹적이다


그치만 시의 3연에서 육백만불의 사나이가 자기 팔다리를 잃고 기계를 달고 나서 제 안에 제 것이 아닌 것을 달고 사는 불편함을 토로하듯이, 배너 박사도 자기 안의 헐크 때문에 불안증에 시달리게 된다. 자기는 기억도 잘 안 나는데 화가 나면 자기 주변을 다 때려부순다니 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자기 자신이 혐오스러울까...


그럼에도 4연에 내 안에 내가 너무나 많다고 노래하던 시인과 촌장은 한 사람이듯 배너와 헐크도 한 사람이다. 술취한 아버지를 피해 출가한 붓다와 출근하기 싫어서 장판에 붙어버린 카프카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도 내 안에 있다... 그렇다면 헐크와 배너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인피니티 워 까지만 해도 자기 안의 헐크를 억누르려고만 했던 배너 박사는 마지막 영화 엔드게임에서는 헐크와 하나가 된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타노스에 의해 우주 생명의 반이 사라진 대재난 후 5년의 시간 동안 그전에는 헐크를 자신 안의 질병 바이러스 같은 걸로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화내는 헐크도 병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라고 자연스럽게 수용해 보기로 하고 5년에 걸쳐 노력한 끝에 스마트 헐크-배너박사라는 극적인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마치 프랑스의 철학자 데리다가 고대 그리스의 parmarkon에 대해 언급하며 이것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약이지만 또한 올바르게 이해하고  사용한다면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그런 이중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진 모순적인 존재. 이런 이중적인 헐크를 의도한 듯 심지어 마블 공식 굿즈 피규어에서 헐크가 아이패드를 들고 논문을 보는듯한 재밌는 모습 매력적이다.



이 스마트 헐크 배너박사는 힘과 지성을 둘 다 가진 영웅으로 병든 토르를 대신해서 인피니티 건틀렛을 끼고 자기가 스냅을 하는 희생으로 5년 전 죽은 우주의 절반을 되살리는 등 대활약을 해낸다. 배너가 자기 안의 괴물 헐크를 인정하고 수용하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었을 일이다. 그렇다면


꼬마시절 누구나 그렇듯 나도 슈퍼맨 꿈을 꿨지


혹시 나도 내 안의 괴물을 인정할 수 있을까


난 박사학위 7개도 없고 영웅도 전혀 아닌데?


그저 내 안의 모순을 인정하고 용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다른 마블영화 데드풀 대사처럼


밥먹을때도 영웅 양치할때도 영웅일 필요는 없


살면서 대여섯 번쯤 영웅적인 행동을 하는 게 영웅이라고 한다면


 절반쯤 살면서 두세 번쯤은, 내 안의 악을 모순을 활용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인간실격 요조처럼 부끄러움 많은 인생을 살았다는 마음을 조금을 덜어낼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런 인생 연습 중일까


황혼 무렵에 시 한잔...


Fin.




다음 한 잔은... 권혁웅의 시 슈퍼맨 또는 스파이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