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제 정말, 나를 살고 싶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떼제 공동체(2)

by 메리힐데

‘나를 지킨다’는 말은 결국, 나에게 가장 해로운 것부터 놓아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나를 버려야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되고자 했던 나', 그 허상을 버려야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전, 내가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무엇을 챙겨가야 하는가'였다. 순례길은 여행이 아니다. 누구에게 맡길 수 있는 캐리어도 없고, 도중에 내려놓을 방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내가 짊어져야 한다.


그래서 더 망설여졌다. 길이 어떨지 모르고 내 몸이 얼마나 버틸지 몰라서 버리지 못하겠는 것과, 지니기엔 너무 무거운 것들 사이에서 계속 머뭇거렸다.


많고 많은 약들과 드라이기, 지금보니 참 많이도 짊어지려고 했군..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내 짐은 너무 무거웠다. 기차에 타고 있을 때조차 무거웠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미 나는 나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에 지쳐 있었다. 이 무게를 지고 걸을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제야 왜 많은 순례자들이 길 위에서 짐을 버리게 된다고 말하는지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내 어깨 위의 짐은 ‘있으면 좋을 것 같은 것’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길 위에서는 단 하나도 필수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며칠을 걸으며 ‘무엇을 버릴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알게된 것은 내가 짊어진 이 배낭보다 더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던 어떠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었는데, 그것이 내가 버려야하는 유일한 것이었다.



진짜 무거운 것은 짐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내가 짊어지고 있던 것은 여분의 옷이나 작은 물건이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를 짓누르던 것은 다름 아닌 혹시 부족해 보일까 하는 두려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모자라는 사람으로 보이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배낭 속 물건보다 더 무겁고, 어깨 끈보다 더 깊게 살을 파고드는 것들.


그 무게 때문에 나는 매일 지치고 매일 허덕이며 살았다는 사실을 순례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았다. 길 위에서 하나씩 물건을 내려놓을 때마다 나는 나에 대한 생각 하나씩을 내려놓고 있었다. ‘이건 없으면 안 돼’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다 내려놓아도 되는 것들이었다. 아니, 내려놓아야 살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짐이 가벼워질 때마다 내 마음도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했다.


내가 붙잡고 있던 건 사실 ‘나’가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한다고 믿어왔던 나’였다.


사랑받으려면 사랑받을 만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잘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
인정받아야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라는 확신.


그리고 창피한 고백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 속 깊은 곳에는 내가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착각,
사람 사이에 높고 낮음이 있다는 교묘한 오해가 있었다.


그 모든 생각이 나를 조금씩 마르게 하고, 조금씩 날카롭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였지만 속은 늘 불안했다. 언제든 ‘진짜 나’가 들킬까 봐 초조해하며 포장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렇게 되려고 애쓰는 동안 정작 있는 그대로의 나를 한 번도 바라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순례길에서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둘째날, 알베르게에 기부하고 온 드라이기


처음에 내려놓은 것은 물건들이었다. 여분의 양말 한 켤레, '혹시나' 해서 챙긴 비상약,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옷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드라이기까지(바람이 말려줄 것을, 시간이 해결해줄 것을...머릿결이 소중하긴 하지만, 이건 과했다).


하지만 정작 버려야 했던 것은 그 물건들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던 나의 두려움과 집착이었다. 그것들을 내려놓기까지 내 순례길 전체가 필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여전히 연습 중이다. '이정도면 다 비웠겠지?' 생각할 때면 여지없이 뒷통수를 치고 들어오는 낡은 생각들 앞에서, 다시금 '아, 아직 멀었구나...' 하고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어질 연습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삶이라는 것이 결국 끝없는 순례라면, 우리가 순례자로 산다는 것은 곧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계속해서 버려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닐까.



길을 걷다 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짐을 버릴수록 가벼워지는 건 배낭이 아니라, 바로 '나'다. 걸음이 가벼워진다는 말은 사실 발이 가벼워졌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의 무게가 풀렸다는 뜻에 더 가깝다.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만약 이 모든 것을 내려놓아도 내가 살아남는다면
나는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일까?’


그 질문이 너무 낯설고, 너무 아프고, 너무 진짜여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순례길 어딘가, 바람이 세게 불던 어느 언덕에서 나는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은 어린 아이를 마주했다. 저 멀리 아무런 짐 없이, 여전히 날아오르고 싶어하는 순수한 희망을 품고 있는 어린 아이였다. 그 어린 아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고 있는 '어린 나'였다.


나는 내가 되고자 했던 ‘어떤 사람’이 되느라 정작 있는 ‘나’는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슬펐지만, 그 어린 아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내 삶이 공허했음을 인정하는 데 28년의 시간이 걸렸고, 그 사실 앞에서 주저앉아 울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나를 잃은 게 아니라, 애초에 나를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었음을 알았을 때 그 허탈함은 참 깊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를 마주한 날, 그 언덕 위에서, 내 마음 속에는 아주 작지만 희망찬 목소리가 울려왔다.



“이제 정말, 나를 살고 싶다.”


아무에게도 자랑할 필요 없는 삶,
누구에게 증명할 필요도 없는 존재.
누군가의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



그날 나는 배낭에서 마지막으로 가장 무겁던 물건 하나를 꺼냈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
그 허공에 그린 신기루를 내려놓았다.



이 믿음을 내려놓는 순간, 이상하게도 바람 소리가 다르게 들렸다. 길은 그대로였지만 내가 걷는 방식은 변해있었다. 걷는다는 행위가 더 이상 ‘버티기’가 아니라, '살아있음을 느끼는 행위'로 바뀌었다. 나는 바람을 느끼고 나무를 만지며 꽃과 눈을 맞추고 동물들과 교감하기 시작했다. 흔들리지 않으려 뿌리를 움켜쥐는 나무가 아니라, 바람에 마음껏 몸을 내맡기는 한 그루의 자유로운 나무로 자라나고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알았다. 나를 지킨다는 것은 나를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두고 있던 허상을 놓아주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그 길에서 나를 버려야했다. 한 번도 제대로 만나본 적 없는, 진짜 나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의 여정은 비로소 시작된듯했다. 이제 막 내가 살아갈 길 위에 발을 올려놓은 느낌이었다. '만약 이 모든 것을 내려놓아도 내가 살아남는다면, 나는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일까...?'


오래 붙들고 있던 이 질문 앞에서 문득 아주 단순한 진실 하나가 떠올랐다.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나로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어려운 질문들 뒤에 남은 단 하나의 대답.


"이제 정말, 나를 살고 싶다."


어느샌가 도착하는 어떤 곳을 향해,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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