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몰래 떠날 수 없을 거예요.
강아지가 자는 동안
그림자를 따로 불러냈다
배고파? 물으니
꼬리를 흔들었다
봉지에서 사료를
한 움큼 집어서 줬다
다 먹은 그림자가
강아지의 기척에 얼른 돌아갔다
강아지가 다시 잠든 사이
조명등에 어른거리는 그림자
조용히 쓰다듬으니
배를 내밀었다
밤마다 이렇게 놀자
밥도 많이 줄게
소곤소곤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는 그림자
나는 살며시 그림자에게 목줄을 채우고
리드줄을 손에 꼭 쥐었다
삐삐랑 산책할 때면 그림자도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그림자를 별개의 존재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2023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그림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 같아요. 그림자가가 독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책이었거든요.
그래서 2023년 10월 첫 합평수업 시간에 강아지 그림자와 관련된 시를 내기도 했어요.
하지만 평가는 좋지 못했답니다. 저는 알겠는데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 시를 썼던 거죠.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지난달에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라는 책을 읽었어요. 이 책은 그림자가 본체를 떠나는 것으로 죽음을 표현했더라고요. 지극히 N성향인 저는 그럼 삐삐의 그림자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어요. 잘 지내는지 확인하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떠나고 싶지 않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협상을 하는 거죠. 하하.
그래서 써본 시예요. 협상하는 척하면서 그림자를 붙잡아 두려는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합평시간에 혹평을 들었던 그 시도 소개하면서 이번 글을 마무리할까 해요.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실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호불호가 있는 시가 좋은 시라고 했는데 저는 호에요. 하하.
그럼 다음 주에 또 만나요!
긴 그림자가 신나게 뛰어놀던 때
촐랑대는 눈코입을 꼬리는 따라갔지
"같이 가야지"
발맞춰 가는 그림자가 뚱뚱해져
걸음이 따분해진 그림자가 두 다리를 치켜들면
심장은 얼굴을 맞댄 채 온기를 느꼈어
숨어있던 네가 나타났지
작게 움츠려 있던 너는 기지개를 켜고
그림자에 흰 칠을 해댔어
꼬리를 잡아채고 다리에 찰싹 붙어버렸지
그림자가 짧아지고 있었어
흐릿해진 길을 걷던 그림자가
내 손을 놓고 잠이 들어 버린 날
너는 그림자를 물고 가버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