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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볼 거 없다

그러게요

by 양M Mar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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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해사(海士)에 입학했다. 온 나라가 IMF로 흉흉해져가던 시기였다.


 4년간의 생도생활은 듣던대로 힘들었지만, 학업・병역・취업을 단방에 해결했다.

초・중・고 교육과정에 반항않고 순응했기 때문에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장교가 되었다. 해군에 복무한 덕분에 일찍이 결혼하고 남매를 두었다.




군(軍)에 들어와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 전까지의 삶은 석차와 %라는 학업성취도 숫자 놀음에 놀아나던 암울했던 학창시절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해봐도 영 재미없던 시간이다. 그나마 감옥 같은 교실 안에서 수인(囚人)처럼 지낼 수만은 없었다. 부모님께 아쉬운 소리 안하고 조용히 독립하고 싶었다.


그 시절 부모님께서 입버릇처럼 늘 하시던 얘기가 있다.


“공부해서 손해 볼 거 없다..”


이 말은 언제나 공허한 메아리였다. 솔직히 겨자씨만큼도 마음에 심겨진 바는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 그것은 명백한 진리임을 깨닫는다.


또한 "해라."하는 명령화법 보다 "손해 볼 거 없다."는 완곡표현을 사용하신 부모님의 지혜가 놀랍다. 듣는 이의 내적 동기를 촉발하는데 거부감이 훨씬 덜하지 않은가.


요즘에 은근히 "공부는 핸드폰 들여다 보는 것보다 손해 안보는 일이다."라고 하면서 자녀들을 채근(採根)하고 있는 나를 본다.


부모님께서는 평생을 두고 부부지간에 불화하신다. 우선 두 분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 양가 집안의 가풍을 보아도 천양지차(天壤之差)다. 그러나, 각자 양가의 맏이로서 또 부모로서의 책임과 역할에는 소홀함이 없으시다.


오늘 나를 있게 만든 바탕이다. 이런 연유로 사실, ‘자녀교육’을 특별히 어렵게 생각치는 않았다. 성실하게 도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부모의 뒷모습이면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앞서셨고 자식인 내가 따랐듯이, 이제 부모 된 내가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 내 자녀들도 학생으로서 그들의 본분에 충실하겠거니 생각했다. 다들 알아서 공부하려니 지레짐작 했다.




부모님 인생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아내와 갈등 없이 지내려고 나름 각별히 노력한다. 하지만, 유독 자녀교육만으로는 크게 다투기를 여러번 반복하고 있다.


아내 말로는 이 시대 대한민국의 공교육 현실이 이렇다.


첫째, 학교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 학원은 필수다. 이건 우등생이 되길 바래서가 아니다. 사랑하는 자녀의 자존감 보호차원이다.


둘째, 공부하는 방법을 포함한 학습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학교 밖에서 준비해야 한다. 공부를 학교 밖에서 준비하는 이유는 학교에선 그걸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여건이 허락하는 선에서 사교육 지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부모 된 도리다.


무엇보다 자녀들이 엄마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런 말도 안되는 교육 현실이 혼란스럽다.


학습지도를 요청하면 학교 선생님들이 곤란해 하신다? 믿기 어렵다. 하지만, 직접 확인해 볼 방법도 없다.


"우리 부모님이.. 그때는.. 말이야.. 어쩌구..하는 시절 없는 볼멘소리를 그치기로 했다."


부디, '아이들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그 결정들이 실은 부모욕심만이 아니기를 바란다. 부모와 자녀 모두 울상 짓게 될 공산(公算)이 크다.


사회적, 국가적 손실로까지 연결된다. 조금만 돌아보면 주변에 이런 사례들이 널려 있다. ‘차라리 그렇게까지는 안했으면 더 나았을 텐데..’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도, 여전하다. 마치 로또 맞기를 바라는 모양새다. 자녀들에게 비싼 미래를 선물해 주려고 하는 사이, 정작 돈으로도 못사는 지금 손안에 든 행복을 빼앗고들 있다. 이런 부모님들의 슬픈 사랑을 본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서로 한 평생을 으르렁 거리며 사신다. 영락없는 한쌍의 호랑이 부부다.


내게 공부란, 어린 시절엔 두 분의 불화를 조금이나마 누그러 뜨릴 수 있는 효도방법이었다. 자의식이 생겨난 후로는 속히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평화로운 내 삶을 쟁취 하자!'는게 솔직한 본심이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자녀양육에 관한 만고불변의 진리다. 불화하시는 부모님을 내가 감히 속단할 수 없음은 두분이 맺은 삶의 열매가 곧 나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삶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이해한다.


이상은 내가 조기독립의 당위성을 깨우치게 된 연유다.

이 기회를 빌어 지금까지도 부부의 연을 이어가시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깊이 머리숙여 경의를 표한다.@


#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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