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아지 어때요?
엘다와 밀로 사이에 태어날 강아지들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3주가 거의 다 채워질 무렵, 출산예정일을 불과 며칠 앞둔 정오였다.
설거지 하고 있던 내 시야에 파트너의 휴대폰이 들어오는가 싶더니, 뽀얀 아기 강아지 사진이 보였다. 딱 봐도 갓 태어난 아기 사진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순간 내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뭘 얘기하려는 거지?' 다만 입을 열어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내가 생각한 그게 아닐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말 대신 ‘응?’ 하는 눈빛으로 그의 부연설명을 기다렸다. 파트너는 자기 입이 더 근질근질했던지 곧바로 말했다.
"지난번에 태어난 강아지(코로나의 아기들 말고 그보다 더 먼저 출산한 픽슬라의 아기. 대기 번호 때문에 우리에게까지 순서가 돌아오지는 않았었다) 중 여자아이 한 마리에 대해 새로운 보호자를 다시 찾고 있대. 혹시 관심 있느냐고 브리더가 묻는데 어떻게 생각해?"
더 생각하고 말할 게 있을까? 하는 게 이성이 내리누를 수 없는 가장 솔직하고 즉각적인 감정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말을 아끼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자. 마지막 기회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에게 선택지가 있을 거라는 가정 하에 살짝 남자아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유는 중성화 수술할 때 남자아이의 수술이 덜 위험할 것 같아서. 그러다 갑자기 여자 아이 이야기가 나오니 순간 당황스러웠다.
아니, 다 거짓말이야. 사실은 대답이 너무 쉽게 나오면 안 될 것 같아서 천천히 생각해야 할 이유를 찾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 불쑥 정해지는 게 맞나, 이렇게 갑자기 결정해도 되는 건가?' 그러나 곧 이 아이를 데려와야 할 이유들이 떠올랐다. 이 아이는 한 달 반 전에 태어났으니 곧 8주 차. 8주부터 엄마 젖을 떼고 새 보호자 집으로 갈 수 있게 되니까, 우리가 이 아이를 맞이하게 되면 함께 올여름을 보낼 수 있게 된다. 그 말은 곧 사회성 발달에 중요한 3, 4개 월 시기를 실외에서 지내며 다양한 사람들과 충분히 어울리게 할 수 있다는 얘기 -스웨덴의 가을은 9월부터 시작되며 거의 우기雨期와 다름없기 때문에 가을에 8주를 맞는 강아지들은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쉽지 않다- 가 되며, 이는 곧 당초 우리가 이상적으로 봤던 스케줄이기도 했다. 그리고 애써 이유를 끄집어낼 것도 없이 실은, 돌고 돌아 처음 기다렸던 그 애에게 가 닿는 다고 생각하니 좋았다. 원래 이럴 일이었던 것처럼.
“일 끝나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일단 브리더에게는 그렇게 답장을 해둔 후, 오후에 일을 마친 후 서둘러 브리더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당장 이번 주말 케널에 방문해서 강아지를 보고 오기로 일정을 잡았다.
강아지의 현 소유주인 브리더에게는 당연히 준비된 보호자를 찾아 그들에게 강아지를 넘길 권한과 의무가 있다. 본래는 예약 단계에서부터 케널을 한 차례 방문해서 간단한 예비 보호자 인터뷰를 하는 것이 대기 조건인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연락한 케널의 경우 코로나 감염증의 우려로 인해 그러한 대면 절차는 모두 생략되었었다. 대신 예약 전 단계에서 전화상으로 왜 강아지를 원하는지, 왜 지금인지, 강아지와 함께 할 시간적/공간적 조건은 어떤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바 있었다. 그러나,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은 사실. 그러므로 주말에 이루어질 만남에서 브리더가 그간 전화로만 소통해온 우리를 직접 마주하면서 나름의 심사를 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우리도 사진으로만 본 강아지를 직접 만나 보고 최종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우리가 다녀가고 며칠 후에 강아지들의 마지막 건강검진이 예정되어 있어서, 건강검진 후 수의사로부터 분양을 가도 좋다는 결과를 받을 경우에 한 해 입양이 확정된다고 들었다. 여전히 절차가 남기는 했지만, 건강검진까지 무사히 끝나면 지금부터 보름 후엔 강아지가 우리 집에 오게 되는 것이다.
통화를 마친 후 브리더는 몇 개의 사진과 동영상을 추가로 전송해주었다. 사진과 영상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게 아닌 듯 파일크기도 아주 작았고 저화질이었지만, 우린 눈을 화면 가까이 대고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보고 다른 가족에게도 전송했다. 절차가 아직 남았다는 것을 애써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이미 기분은 끝을 모르고 부풀어 가고 있었다.
그러고부터 다시 몇 분 후, 파트너는 들떠있던 좀 전과 달리 다소 심각한 얼굴로 내 앞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는 이제 강아지 보호자가 될 거고 향후 적어도 14-15년간 늘 이 아이를 돌봐야 할 거야. 너도 나만큼 각오가 되어 있는 것 맞지?" "첫 일 년은 너무 변화도 많고 신경 써줘야 할 것도 많아서, 네가 혹시 한국에 가더라도 아주 오래 가 있는 것은 어려울지도 몰라. 괜찮겠어?" "네가 원하는 대로 중성화 수술을 하게 되면 6천 크로나 정도가 필요하대. 앞으로 반년 동안 기존 지출을 줄이고 이 돈을 미리 모으자. 너도 동의하지?" "그 외에도 강아지 보험과 사료 등 다른 고정 지출이 생길 텐데,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수입을 현명하게 운용해야 할 거야. 우리 둘다 이에 대해 준비된 거 맞지?”
나 역시 진지한 얼굴로 그의 질문을 한 번 더 곱씹어 본 다음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우린 그동안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왔고, 앞으로에 대한 각오와 현실적인 준비도 이제 다 되어 있다고 생각해.”
엄청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한층 실감한다. 우리가 한 생명과 그 삶을 책임지는 보호자가 된다니 이 상황을 기쁘고 엄중하게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