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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각커피 Jul 11. 2019

일상으로 출근하는 '방구석 출근인'

2장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은 행동



 집에만 있다 보니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가끔 화장실 갈 때 우연히 거울에 비치는 꾀죄죄한 내 모습과 마주치고 거울 속 나를 쓰윽 외면하는 유일한 목격자인 내가 있을 뿐. 보는 사람도 없고 잘 보일 사람도 없으니 하루 종일 다 늘어지고 구멍 난 옷과 떡진 머리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귀찮다고 머리를 2,3일씩 머리를 안 감고 그냥 묶고 있다 보니 기름기에 떡지고 자꾸만 비듬이 생겼다. 매일 헌 옷만 입고 있다 보니 꾀죄죄한 내 모습은 이제 내가 생각하는 나의 고정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그래 나 원래 꾀죄죄하고 볼품없는 존재인걸? 이게 나야'라고 나를 단정했다. 집에만 있다고 머리를 안 감고 잠옷 차림으로 있다 보면 잠깐 나가서 간단한 물건을 사야 할 경우가 생겨도 그냥 버티고 집에 있다 계획한 일과 해야 할 일도 계속 미루고 미뤘다. 깔끔한 옷을 입을 이유도 의지도 없으니 깔끔했던 외출복은 그대로 입고, 자고, 먹고를 반복해 음식이 묻고 목이 늘어나 잠옷으로 전락했다. 어쩌다 밖에 나갈 일이 생겨도 나갈 때는 옷이 없어 방황하다 외출을 포기하기 일쑤였다.


 더 이상 하루를 이렇게 보낼 순 없었다. 집에서도 일상으로 출근을 한다는 생각으로 아침 루틴을 끝내고 나면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기름진 머리카락과 간지러운 두피는 어디 가지 않더라도 하루에 한 번 머리를 감았고, 완전히 말리기 시작했다.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이 버릇을 고치려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것처럼, 배게에 얼굴을 대고 눕지 못하게 하려고 집에만 있어도 얼굴에  화장품을 발랐다. 눕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게 올라올 때는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 화장도 했다. 무기력과 게으름의 최고치일 때에는 이렇게 까지 했는데도 배게에 수건을 깔고 기어이 또 잔 적도 있지만, 확실히 낮잠의 빈도는 점점 줄어들었다. 옷차림도 이제는 밖에 나가도 될 만큼의 깨끗하고 편한 옷을 입고 있는다. 뭐가 묻거나 늘어나지 않은 깨끗한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지 않은 깔끔하고 편한 티를 입었다.


자, 이제 여기까지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나의 일상으로 출근이 시작된다.

 크고 대단한 일이 펼쳐지는 하루가 아니어도 별거 아닌 이런 일상부터 잘 살아내고 싶었다. 방구석에서 삶이라도 제대로 꾸려나가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에서의 온전한 일상을 사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매끼 밥을 먹어야 하고, 먹은 뒤 정리를 하고, 해 둔 빨래도 말랐나 확인해야 하고 마른빨래는 접어야 한다. 하루하루 벗은 속옷과, 세탁기에 넣으면 망가질 옷들은 손빨래해야 하고, 다른 옷은 세탁기에 넣고 돌린 후  빨래를 넌다. 재활용 쓰레기와 음식물 쓰려기도 들고 내려가기 힘들 정도로 쌓이기 전에 그때그때마다 버려줘야 한다. "방구석 출근인"은 방구석에서도 바쁘게 보내려고 하면 쉴 틈 없이 바쁘다.


 대충 할 일을 서둘러 끝냈으면 이제 방으로 출근해 책상 앞에 앉으면 어질러져 있던 책과 노트부터 정리한다. 그리고 여기저기 쌓인 먼지를 닦는다. 계속 같은 방에 있지만 자고 일어나 씻고 '사회적 일상복'을 입은 다음부터는 더 이상 내 방은 '침실'이 아니라 '나만의 사무실'이 된다. 침대는 정리한 뒤에 전기 방어막이 처져 있기 때문에(2장 2편 참고), 그곳은 건드리지 못하는 금지구역이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누가 시키진 않지만 나는 이제 내 사무실로 출근하는 '방구석 출근인'이다.

 컴퓨터를 켜고 뉴스창에 들어가 세상 돌아가는 것도 읽고, 다이어리를 정리한다. 그리던 그림도 그리고, 하루하루 떠오르는 글도 쓴다. 계속 보던 미드도 아직 정주행 할 에피소드가 몇 편이나 남아있는 데다 요일마다 쏟아지는 웹툰과 티브이 예능과 드라마까지 챙겨보고, 유튜브로 영어회화도 따라 해 본다. 그 사이 또 식사시간이 돌아오고 세탁기에서는 빨래가 돌아갔다고 알람이 울리니... 해야 할 것들이 태산이다.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 그냥 누워 보낼 수 있지만 방안에서도 바쁘게 보내려고 하면 쉴 틈 없이 바쁘다.


 방구석에서 방구석으로 출근을 하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지만 우선 이 일상이라도 잘 살아내는 것이 지금 내 일이라고.



  그렇니 이제 바쁘게 살고 있는 다른 이가 꿈꿀 이 일상을 열심히 즐겨보자고. 그렇게 방구석으로 출근하기 위해 머리도 감고 옷도 깨끗한 걸로 갈아입고 얼굴에 뭐라도 찍어 발랐더니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왠지 약속이 있어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 혼자만의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디론가 나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기고 이렇게 차려입은(?) 내 모습이 나쁘지는 않아 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는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갈 일이 없는 날인데도 날이 좋은 날에는 에코백 하나 어깨에 걸치고 집 근처 다이소라 구경을 갔다 오기도 했다. 나에게는 믿기지 않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거울을 보고 지금 내 모습이 어떤지 체크하기.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제 경험을 토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다음에 또 이런 순간이 오면 다시 꺼내보기 위한 정리 목록이기도 해요.

보시는 분들께 이렇게 해야 돼! 라며 강요하는 정답이 아닙니다.

주제에서 더 잘 아시는 분이나 다른 방법을 갖고 계셨던 분들은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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