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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각커피 Nov 06. 2019

오늘은 나를 너무 사랑하고 싶은 날

2장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은 행동

 



 나는 밖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우선 그 자리에서 실컷 당하고만 있다 집에 와서야 분에 못 이겨 혼자 마음속으로만 쌍욕을 날린다. '너네가 뭔데? 씨발!'  '너네가 날 알아? 왜 나한테만 가혹한 건데?'  

미친 듯 세상을 증오하고 미워해도 다시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광활한 벌판에 허공에 대고 아무리 소리치고 탓을 해봤자 그에 대한 답을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그 증오와 미움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네가 문제야, 네가. 한심한 년, 나약한 년.. 그것도 못 견디고 나자빠진 년, 쓸모없는 년, 무기력한 년. 그런 마음으로 그렇게 눈치도 없고 요령도 없어서 어떻게 사람을 만나고 돈 벌고 살겠냐?'


 이런 나 자신이 너무 싫어 이 꼴인 나를 볼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졌다. 내 모습을 마주치기 싫어서 거울에 비친 나를 차마 보지 못하고 외면했다. 내 눈에는 창밖 사람들은 다들 멋지고 근사했고, 서로 어울리며 서로를 사랑을 했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직장을 다니고 꼬박꼬박 돈을 벌고 번 돈으로 가끔은 먹고 싶은 거 먹고, 입고 싶은 거 입고, 놀고 싶은 곳을 놀러 다니며 악착같이 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런 사람들도 많은데 지금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져 몇 달은 창문 한번 열지 않고 방에만 있었다.










모두들 10살, 20살, 30살, 40살, 50살, 60살, 70살.. 그 나이 때에는 꼭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통과의례'를 향해 경쟁하듯 앞을 향해 너도나도 앞으로 달려 나간다. 학생 때에는 모두들 다 나랑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너나 나나 다 똑같이 보이던 그 사람들은 나와 같은 시간 속에 나이를 먹어가다 어느 순간부터 성공과 목표 달성에 차이가 나기 시작하고, 그 목표 달성의 기록이 축적된 것들로 '삶을 잘 살고 있느냐'에 대한 평가가 순위 매겨지기 시작했다.


"야, 너 소식 들었어? 00이 어디에서 ㅁㅁㅁ됐데~! 대박이지?"

"지나가다가 우연히 00이 봤는데.. 어디에서 나와서 XX 하면서 XX 하고 있더라.."


그래서 난 저 순위 중에 그래도 중간은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박 났데! 하면서 단연 잘되고 뛰어날 순 없어도, 뒤쳐져서 손가락질과 동정은 받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수업내용을 필기하고 지각 안 하고 출석 꼬박꼬박 하면 그래도 B는 나왔으니, 삶도 그럴 거야.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 삶이 B일지 B+일지,
나의 삶의 순위와 성적은 과연 누가 매겨주는 걸까?





 회사를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내 가게를 오픈하고. 그냥 그 자체가 좋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내 그림에 만족하는 감정보다 내 그림을 보고 눌러주는 '좋아요 개수'가 중요했고, 가게로 이번 달 얼마를 벌었는지가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내 그림은 내가 아무리 만족하고 그려도 '좋아요'를 많이 받지 못하면 실패한 그림이었고 삭제해야 할 보잘것없는 그림으로 전락했다. 아무리 한 달 미친 듯 일하고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려도 그 달 수익이 나지 않으면 난 그 한 달을 아무 의미 없이 쓸모없이 버려 버렸다고 생각했다. 상대 반응에 목말라 미쳐 날뛰었고, 뭐를 가져다 팔아도 좋으니 어떻게든 돈을 벌고 싶어 발버둥 쳤다. 사람들의 관심과 돈이 내 삶에 전부였다.




 얼마 전, 이효리가 남편 이상순과 나눈 대화 내용을 방송에 나와 말한 적이 있다. 이상순이 나무의자를 만드는데 의자 바닥까지 사포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효리는 왜 바닥까지 사포질을 하냐고 '여긴 안 보이는데 누가 알겠어?'라는 물음에 이상순이 이렇게 대답했다. "누가 알긴, 내가 알잖아."  


하루 날을 잡고 저녁에 앞에 종이를 펼쳐두고 '나는 뭘 하고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잘살고는 싶은데 과연 나한테 잘 사는 게 뭘까? 다른 사람의 시선은 다 무시하고 그냥 내가 원하는 삶은 뭐지? 지금 그림을 그만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요리를 좀 하니까 동네에 작은 떡볶이 집을 차려볼까? 떡볶이를 팔아도 지금 수입이 아예 없는 것보단 그래도 좀 벌겠지. 내가 떡볶이 장사로 먹고 살만큼이 된다면, 나는 그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며칠 동안 고민과 생각에 빠졌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고 또 해도 그림을 그리고, 그림이 내 생각대로 완성됐을 때 그때 느꼈던 희열과 쾌감을 포기가 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내 삶이 좋았다. 스스로 만족한 그 그림을 그린 내가 좋았다. 그림을 그리며 살면 돈은?이라는 질문이 마지막 최종 보스처럼 남아있었는데 '돈 못 벌어도 너 그림 그리는 거 선택할 수 있겠어? 벌써 한번 겪어 봤잖아, 어떡할래?' 모질게 자문한 그 질문에 한참을 쭈뼛거리다 난 결국 '그림을 그리는 삶'으로 결정을 내렸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그런 성공한 삶보다 그림 그리는 내 인생을 선택했으니 내 길로 들어선 거고, 그림 그리면서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떼돈을 버는 건 불가능할지 모르니 불평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각자의 삶이 있고, 난 내가 걸어갈  '이 세상 유일한 내 삶'에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게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내가 원하는 진짜를 찾았으니 나대로 내 삶을 잘 꾸려 가보자.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 결정이 고통스럽고 힘들었는데 그렇게 마음을 확고히 정하고, 종이에 적어 정리해 보니 내 의지와 삶의 방향이 단단해지고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담담히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미래에 분명 나에게도 올 기회나 행운처럼 느끼는 타이밍 같은 것. 또는 내가 쌓아두고 있고, 응축해둔 이 능력이 언젠가 빛을 발할 날이 올 거라 단언해 생각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기회는 온다. 그러니 이제 내 그림도, 내 삶도 난 포기하지 않을 거야.


오늘 만이라도, 오늘부터라도 못나게 느껴져 모질게 꾸짖기만 했던 나를 너무나 사랑하고 싶은 날이다.






제 경험을 토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다음에 또 이런 순간이 오면 다시 꺼내보기 위한 정리 목록이기도 해요.

보시는 분들께 이렇게 해야 돼! 라며 강요하는 정답이 아닙니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집순이를 위하여' 마지막 편입니다:)

다음 편은 후기로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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