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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파수꾼 멍이

2016

by 무량화 Mar 05. 2025


날이면 날마다 뒤란 텃밭에 온 동네 새떼가 모여 진을 치다시피 했다.


그냥 놀다 간다면 누가 말리랴만 허구한 날 거기서 먹자판을 벌렸다.


유채꽃 장다리꽃 시금치꽃, 꽃지고 씨 맺히자 새들이 연한 꼬투리를 쪼아 알맹이를 빼먹었다.


처음엔 밭두렁 뒤편에서만 거덜을 내더니 점점 앞쪽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래도 종자는 좀 남기겠지 싶었는데 날이 갈수록 새들이 늘어나며 밭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할 수 없이 헌 옷가지로 허수아비 흉내도 내보고 풍선을 사다 매달아도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떼거리로 모여든 새들은 씨앗 대궁에 앉아 맛나다고 재잘거리며 신나게 씨앗을 쪼아댔다.


올 채소 농사는 유독 풍작을 보여 씨앗 대궁도 내 키를 훨씬 웃돌게 자랐으며 씨주머니도 아주 실했다.


시효 지난 종합 비타민, 홍삼, 로열젤리와 오메가 쓰리를 물에 풀어 밭에다 뿌려준 덕인지


암튼 올 채소 농사는 특별한 성과를 이뤘고 따라서 씨앗도 예년에 비해 풍성하게 맺혔다.  


이번엔 종자를 알뜰히 채취해 채소씨 원하는 이웃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게 되었다 싶었는데

그대로 두었다가는 새들이 씨를 다 먹어치워 채소씨를 건지기는 애진작에 글러버릴 판이었다.


생각 끝에 멍이를 뒤란 텃밭 앞에다 보초를 세우기로 했다.


낮 동안만 새들 파수꾼 노릇을 하겠지만 햇볕을 피하게 집까지 바깥으로 옮겨다 놓았다.


새들이 근처에 얼씬거리기만 하면 멍이는 제 영역을 침범했다고 길길이 날뛰며 왕왕 짖어댔다.


 효과는 제대로 나타났다.


가까스로 약간의 씨앗은 챙기게 됐다.


며칠 후 주말, 딸내미가 왔길래 자랑삼아 씨앗 건진 얘길 늘어놨다.


딸이 화들짝 놀라며 눈 동그랗게 뜨더니 속사포를 쏘아댔다.


엄마, 목사리 채워 멍이 묶어놓은 거 동물학대한다고 신고 들어가면 어쩌려고!


순간 멍 #&% 띵해진다.


 참 미국법은 미묘 요상스럽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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