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송림에 안개 흐르는 날 사진작가들 새벽같이 찾아가는 경주 남산 삼릉 소나무 숲.
흑백 처리하면 송림 사진은 수묵화 되고 선화도 된다는데.
쏴아~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소나무 군무 자못 오묘하게 펼쳐질 게다.
비 온 다음날이지만 시간대가 늦어 숲안개는 전혀 없고 소나무 맨 허리만 맹송하게 드러난다.
부옇게 안개비라도 내리면 몽환적일 거 같지만 밋밋한대로도 솔향기 음미하며 평지 흙길 걸으니 느낌 안온하다.
소나무 반듯하면 반듯한 대로 굽으면 굽은 대로 능침을 지키는 호위무사들 기백 청청.
너르고도 밀밀한 솔숲 초입에 들어서면 삼릉 쪽 나란히 봉분 셋 둥실둥실 솟아있다.
신라 초기라 이름도 생소한 8대 아달라왕, 그보다 영 후대인 53대 신덕왕과 54대 경명왕 능이다.
대한민국 사적 제219호로 지정됐다.
뻐꾸기 소리 나른한 한낮, 목하 먼먼 옛적 신라를 꿈꾸는 듯 참선에 들어간 듯 삼릉 송림은 미동도 없다.
소나무 그림자도 고요하다.
노천 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에는 뒹구는 돌멩이 한 점 무뚝뚝한 바위 하나 예사롭지가 않다.
천년 사직 서라벌의 흔적들, 세월의 무게 탓인가 저마다 묵직하게 다가선다.
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삼릉과 돌다리로 연결된 솔밭에는 비운의 경애왕 묵언수행 끝날 줄 모른다.
저물어가는 신라 천년 막바지에 왕의 권좌가 무슨 소용이라.
건너편에 누운 아버지 신덕왕 슬하에도 들지 못하고 외따로 솔 그늘에서 홀로 지새우는 릉 하나.
신라 박씨왕조의 마지막 왕인 경애왕이다.
경애왕의 애달픈 심사를 소나무 숲 낱낱이 전해 듣고 위로의 솔바람으로 봉분 말없이 쓰다듬어 주는 걸까.
명징한 산까치 소리 적요를 흔들어 놓고 멀어진다.
돌아보니 천년 세월도 한낱 봄꽃 피었다 분분히 낙화하는 수유(須臾)의 한순간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