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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소깍 물빛 깊어지는 구월

by 무량화 Sep 0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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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진입하는 구월이다.


기록을 갈아치우는 폭염과 45일간에 걸친 열대야로 거의 그로기상태에 빠졌던 팔월.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고온에 시달리며 이웃들과 그저 견디는 중, 그래도 살아있음의 안부나 주고받던 여름이었다.


그러나 역시 믿을 건 궤도 따라 질서 정연히 순환하는 절기뿐.


낼모레가 흰이슬 내린다는 백로다,  

완연 높아진 하늘에 한라산 주변부로 흰구름 목화 햇솜처럼 펼쳐져 있다.

한낮 햇살 따가워도 절기는 못 속인다.

풀섶 가까이 지나다 보면 어느짬에선가 땅강아지 찌르르, 저녁이면 창너머로 소슬하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바람결은 이에 화답하듯 더할 나위 없이 청량하다.

하루 집에서 쉬려던 계획이 수정된다.

날씨에 대한 예우상 가까운 쇠소깍이라도 잠시 들르기로 한다.

쇠소깍 들머리 교각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한라산 명료하고  새벽녘과는 달리 흰구름이 목화송이처럼 소담스럽게 부풀어 오른다.


맹살공원 저 아래로는 물길 푸르다.

잘생긴 암반들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 그 어느 때보다 기운차다.

여태껏 본 중에 오늘만큼 효돈천 수량 풍부했던 적이 있었던가.

콸콸 여울져 흐르는 물소리에다 가끔씩 작은 폭포 냅다 곤두박질치며 지르는 환호성 경쾌하다.



맹살공원 삼각주에서 양쪽으로 갈라진 물줄기가 다시 합쳐져 큰내를 이뤘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기암괴석 규모 커진다.

깎아지른 절벽도 장엄스럽다.

청록빛 비밀스러운 소(沼), 쇠소깍에 이르렀다.

줄 배 형식의 테우와 보트를 타는 물놀이객 구명조끼가 꽃잎같이 붉다.

쇠소깍 민물은 곧 청푸른색 해류와 섞인다.

바다 저만치 송판 쪽 같은 지귀도가 떠있다.

여전스레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

검은모래 해변에 마구 부려놓는 허연 파도.

이쯤이면 두 손들고 만다.

깨끗이 항복한다.

바다에겐 판판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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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빛이었다가 청록빛 여울지는 쇠소깍이다.

하효동 쇠소깍 해신당이 있던 자리를 지난다.

물질하는 해녀들이 용왕신께 안위를 빌던 자리여서이리라.

강가 양변을 따라 절벽 병풍 두르고 노송 그늘 짙게 드리워져 빛깔 이리도 깊지 싶다.

문득 떠오르는 그림.

청이가 치마폭으로 눈 가리고 뛰어든 인당수 이리 무진 청청했을까.

논개가 적장을 안고 뛰어내린 남강 수심 깊어 이리 짙푸르렀을까.

저 아래 여유작작 뱃놀이 즐기는 관광객들, 모쪼록 일상의 회포 여기에 다 풀어놓고 떠나소서.

그대들이 흩뿌린 온갖 만감 저 바다에 섞여 투명하게 희석되도록.

한라산 골짜기 쓰다듬으며 흘러온 물길 곧이어 바다와 만난다.

 

태평양에 잇닿아 있는 무한 청청 제주 바다다.

수평선 너머 일본은 활처럼 굽어진 방파제 되어 태평양 거센 파도로부터 불철주야 한반도를 보위하고 있다.

태풍 몰아쳐도 일단 일본을 통과하는 동안 세력 약해져, 법환포구 할퀴어대는 파도 그나마 누그러든다.

밉상 지기는 이웃나라 일본도 그럴 땐 전위부대 역할 톡톡히 수행해 주니 덜 밉상이다.

검은모래 해변에는 떠나는 여름 전송하며 각자 떠나온 여정을 반추하는 여러 뒷모습들.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의 작품이 아니라도 어딜 가나 만나게 된다.

따가운 햇살이 귀가를 서두르게 한다.

웬만하면 쇠소깍부터 걸어 보목 제지기오름 올라 솔바람 쐬다 오련만 일로 직행, 거처에서 내려다보니 제지기오름 오늘은 남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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