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가는 길.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장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려온다.
길거리 공연에서 신나게 부르는 노래는 로제의 아파트.
이미 어둑한 거리에 빽빽하게 모인 사람들이 버스킹을 구경하며 더러는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런 삶의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부럽다.
며칠간 포르투갈 음식만 내처 먹은 터라 조금 다른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숙소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부러 찾아갔다. 근데 막상 메뉴판을 보니 해산물 요리가 푸짐하다. 기껏 찾아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결국 조개가 듬뿍 들어간 봉골라 파스타와 문어요리 뽈보를 먹었다.
숙소로 가는 길에 골목길에 즐비한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선물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장 신을 양말을 사기 위해서.
툭하면 비에 젖으니 더는 신을 것이 없다고 한다.
나는 양말이 젖으면 젖은 부분만 살짝 빨아서 말려 신는데 딸은 그런 엄마가 궁상맞단다. 부족한 가운데 생존하는 법을 터득한 세대와 부족한 건 채우고 사는 세대.
자식들은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기도 하지만 또래집단과 사회에서 배우는 것도 못잖게 크다.
가게 벽에 조롱조롱 매달린 알록달록 양말은 한 켤레 4,000원 꼴이다. 우리나라 시장이나 지하상가에서 한 켤레 1,000원, 열 켤레 사면 하나 더 끼워주기도 하는 양말과 비슷한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 그것도 현금결제만 가능하다고 적혀있다
그걸 굳이 다섯 켤레나 집어든다.
" 두 켤레만 사지, 너무 비싼데..."
" 비싸도 필요하면 사야지."
표안나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가게 주인이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쎄우우라라요?'라고 되묻는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더니 다시 말한다.
"쎄우울 아라요"
아, 서울!
서울은 알지만 우리는 대구서 왔다고 하니 대구도 안단다.
양말이 비싸거나 말거나는 차치하고, 지방에 있는 도시 이름도 알고 한국말도 곧잘하는 가게 주인이 신기하고 반갑다.
가게 주인은 서울 잠실에서 3년여를 일하며 지냈다고 한다.
잠실은 서울에서도 집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싼 곳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더는 말이 없다.
나도 더는 말을 보태기가 마뜩잖다.
가게 주인의 표정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그닥 좋은 기억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일자리를 찾아온 외국인을 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을 익히 알아서 지레 제 발 저린 것일 수도 있다.
그것도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불과 하루 전에 겪었던 'Don't come in, Chinese!'의 불쾌함이 무색할 지경일 것이다.
차별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지 않은가.
신분 차별, 직업 차별, 국적 차별, 학력 차별, 남녀 차별, 외모 차별 등등
돈과 권력 등 대부분 뭔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차별하지만, 피부색의 경우는 피부색이 없는 사람이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자신의 책 '젠더 트러블'에서 모든 차별의 근원이 젠더의 구분에서 비롯된다고 썼다. 차별을 없애려면 젠더의 구분을 허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바꾸어 말하면 결국 구별 짓기와 차별하기는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인간본성이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기념품 가게 주인을 비롯해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오는 외국인들이 겪었을지도 모를 차별과 모멸감의 무게가 어제저녁 마트 앞 또라이 아저씨의 말 한마디보다 가볍지는 않았을 듯싶다.
돈을 쓰는 여행객들이 겪는 차별의 수위는 돈을 벌러 온 사람들에 비해 낮을 것이므로.
뭉뚱그려 인종차별이라 여겨진 리스본에서의 시시콜콜한 기억들이 꽤 불쾌하긴 했다.
그 불쾌함의 바탕에는, 자기 나라에 돈을 쓰러 온 관광객에게 어떻게 이렇게 무례할 수 있냐는 생각이 깔렸을 수도 있다. 아니면 동양인은 죄다 중국인 취급하는 것이 기분 나빴을까? 근데 이건 나 또한 인종차별의 대열에 편승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둘이서 한 끼를 먹으면 최소 5,6만 원은 기본인 관광지의 물가, 그리고 붐비는 대중교통으로 인한 리스본 주민들의 불편도 이해된다.
한 때 해상강국으로 무수한 식민지를 거느렸던 부유한 시절에 대한 향수가 관광객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오는 동양인들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데 일조한 것일 수도.
리스본에서 며칠 빡세게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치다 보니 그들의 무표정과 가끔은 적의를 드러내는 모습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싶다. 물론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라고 해서 다 수긍한다는 것은 아니다.
리스본 3일 차 일정
상 조르주 성 -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 & 산타 루치아 전망대 -
전망대 야외 카페 - 비카 푸니쿨라 (구경만) -
타임 아웃 & 핑크 스트리트 ( 걷는 중에 지나가기)-
코메르시우 광장 & 테주 강변 노을 감상 -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 (또 해산물 요리 )-
기념품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