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터미널, 묘한 빵맛
리스본에서 포르투로 가는 날 아침.
서둘러 조식을 먹고 산책 삼아 아우구스타 거리를 한번 더 둘러보러 나갔다.
이른 아침, 그것도 먹구름이 내려앉은 스산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앞에는 구불한 줄이 늘어서있다.
호텔 체크아웃이 12시.
리스본에서 포르투로 가는 버스 출발 시간은 2시 30분이다.
무려 2시간 30분의 여유가 있음에도 체크아웃 후에 택시를 타고 바로 고속버스 터미널로 이동했다.
미리 터미널에 가서 승차 장소까지 딱 알아놓고 점심을 먹든지 쉬든지 할 참이었다.
점점이 뿌리던 비는 터미널에 도착할 즈음 폭우로 바뀌고 있었다. 리스본에 온 이후 가장 거세게 쏟아지는 비다. 택시에서 내려서 터미널로 들어가는 길은 고속버스가 들고나는 통로이기도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오가는 차량으로 정신이 없다.
카페나 식당이나 어디든 들어가서 간단하게 점심이라도 챙겨 먹자 싶어서 둘러보는데 식당은커녕 편하게 앉아서 차 한잔 마실 곳이 보이지 않는다.
터미널 편의시설이 생각보다 열악하다. 즐비한 식당 앞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해야 하는 우리나라 고속버스 터미널을 생각하고 왔다가 적잖이 당황했다.
화장실 사정도 다르지 않다.
한 곳은 내부 수리 중인지 아예 문이 잠겨있고 문이 열려있는 곳도 화장실 이용료를 내야 한다.
한 번 들어가는데 1유로, 즉 1,500원.
동전이 없어서 10유로짜리 지폐를 내니 화장실 앞에 서있는 직원이 동전으로 바꿔 준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멀찍이 떨어진 곳에 천장으로 하늘만 가린 카페가 있다.
이왕 만드는 것 벽도 좀 쌓지 이게 뭐람.
간이 탁자와 의자가 듬성듬성 놓인 널찍한 곳에는 그나마 빈자리도 찾기 힘들다.
가장자리 빈 탁자는 들이치는 비에 젖어있다.
버스 타기까지 2시간가량 남았는데 이렇게 춥고 어수선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10 여분 걸어가면 동네 식당도 있고 카페도 있다고.
터미널에서 근처 동네로 나가려면 일단 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그나마 올라오는 길은 에스컬레이터가 있지만 내려가는 길은 달랑 계단만 있다.
덜커덩 덜커덩 가방을 끌고 계단을 내려가니 어둑한 굴다리 밑으로 외지고 한적한 골목이 이어진다.
여행가방을 끌고 우산까지 받쳐 들고 어딨을 지도 모르는 식당을 찾아 헤매려니 막막하다.
힘들게 내려간 것이 아깝지만 돌아섰다.
구글지도로 10 여분, 이 거리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 당장 계단 내려가는 데만 5분은 걸렸겠구만.
결국 천막 식당 같은 카페로 돌아왔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평온해 보인다. 비가 오거나 춥거나 불평 없이 간이 테이블에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대화도 나눈다. 우리가 유난을 떠는 건가 싶다.
어차피 버스터미널은 버스를 타기 위해 있는 곳이다. 상황에 맞게 시간을 보내다가 무사히 버스만 타면 된다.
장거리 버스를 타기 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딸.
딱히 입맛도 없다고 포장해 온 나타 두 개로 요기를 할 거란다.
내 것만 주문하러 갔다.
진열대를 주욱 훑어보니 만주처럼 생긴 노릇하게 구운 동그랗고 통통한 빵이 눈에 들어온다.
익숙한 외양과 예상 가능한 맛,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만주 같은 빵 한 개, 그리고 핫 초콜릿 한 잔.
주문을 하는데 '핫 초콜릿'을 못 알아듣는다.
핫 초콜릿 같은 만국공통어를 달리 무엇이라 부르는가?
조금 길게 '핫 초콜릿 드링크'라고 말했다.
심지어 마시는 시늉까지 촌스럽게 열심히 했는데도 모른다.
주문받는 젊은 여성이 못 알아들으니 옆에 있던 올백머리 곱게 빗어 넘긴 흐트러짐 없이 날가롭게 생긴 중년여성이 다가온다.
벽에 진열된 네슬레 핫 초코 박스를 가리키며 말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 가게에서는 혹시 핫초콜릿을 네슬레라고 부르는지 궁금하다.
맛도 만국공통인 핫 초코.
뜨끈하게 한 입 마시고 노릇노릇 맛있어 보이는 빵을 한 입 깨물었다.
" 이거 뭐지? 안에 참치 들었어."
달콤한 앙금을 기대했는데 꾹꾹 눌러 넣은 듯 뭉쳐진 갈색 생선 살이 한가득 들어있다.
베어물 때의 식감과 냄새는 참치, 근데 입안에서 퍼지는 맛은 참치가 아니다. 씹을수록 짠맛과 비린맛이 세게 올라온다.
"이거 이거 굉장히 익숙한 맛인데 분명 참치는 아니고. 근데 냄새가 디기 익숙하네."
내 호들갑에 딸이 한 입 소심하게 먹어본다.
천천히 꼭꼭 씹어먹더니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말한다.
" 음, 왜 익숙한 지 알겠네. 치즈 습식 사료에서 나는 냄새잖아."
아, 맞다. 우리 집 고양이가 하루 한 봉씩 먹는 습식 사료, 고양이 입에도 비린지 꼭 조금씩 남겨서 성가신 설거지 거리를 만드는 바로 그 곤죽이 된 생선살.
핫초코 한 잔이랑 생선빵 하나, 합계 4유로. 우리 돈 6,000원쯤이다.
돈 주고 산 음식이라 어떻게든 먹어보려 했지만 비위가 상해서 도무지 먹을 수가 없었다.
달디단 앙금빵 보다 건강식일 것 같긴 하다만.
한 입 베어 먹은 빵을 속재료가 안 보이게 뒤로 돌리는데 컵과 설탕 포장지에 적힌 가게 이름이 보인다.
'SICAL'
"가게 이름이...식칼?"
썰렁한 농담에 픽픽 웃다가, 여행가방 지퍼를 주우욱 열고 옷을 꺼내 주섬주섬 껴입다가, 근처에 둔 접이 우산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을 알고 황망해하다보니..그럭저럭 시간이 휙휙 간다.
2시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 아니었다.
여하튼 카페테리어 'SICAL'에서 만주 모양의 빵은 부디 피해 가기를. 물론 비린맛에도 개의치 않을 만큼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브런치북은 한 권에 30편 까지 글을 올릴 수 있네요.
브런치북이 아직 낯설어서 시스템을 이해못한 채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리스본에서의 여행담이 모두 26편.
26편을 끝으로 <우왕좌왕 포르투갈 여행기 1>을 마무리하구요..
나머지 이야기는 <우왕좌왕 포르투갈 여행기 2>로 넘어갑니다.
2권은 포르투 일정을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