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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Apr 26. 2024

나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If I express myself with color

If I express myself with color



 나는 여러 색을 좋아한다. 자라오면서 나를 나타내는 색은 다양한 빛깔이 된다.     

어린 시절 아기인 나는 연노랑에서 노랑의 모습이다. 태어난 삶은 생명 자체로 귀하다.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으로 유년기를 거쳐 가며 노랑이 된다. 그 시절 해맑음은 가장 순수하게 빛이 난다. 봄에 팔랑거리는 봄 햇살 나비 같은 모습이다. 놀이터를 나가 보면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노랑이다. 어디에 있어도 귀하고 예쁘다.

    

 10대, 20대를 지나면 연분홍에서 분홍빛으로 물들어 간다. 분홍빛은 약간의 부끄러움을 가지고 소심하고도 풋풋한 마음으로 영글어간 시절이다. 첫사랑의 아련함을 맛보기도 하고 잘 보이려 애쓰던 모습도 있다. 친구가 좋아 나누던 이야기들은 그들만의 비밀이고 보물이 된다. 10대인 나의 아이만 보아도 그들만의 영역에서 나오는 아우라는 익어가지 않은 밝음이다. 아직 삶을 잘 모르기에 넘치는 매력은 가장 순수한 빛이다. 통통 튀는 매력이 있다.


 30대를 지나면 빨강이면서도 파랑이다. 가장 활동이 왕성한 시기이면서  힘든 시기 또한 여러 번 겪어 낸다. 익숙하지 않은 처음을 항상 맞닥뜨려야 한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업무, 새로운 일, 결혼과 가정을 일구고 처음 아이가 태어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학생 시절일 때와 다른 책임감이 생긴다. 부모, 선생님이 울타리였다면 지금은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 나가야 할 시기이다. 내가 스스로 져야 할 무게는 ‘책임’이라는 단어를 어깨에 지고 이어간다. 마음의 열정은 솟구치나 간혹 여러 가지 힘든 일로 쉽게 흔들거린다. 그러면서 알아가고 깨우쳐 가는 자유의지가 다분한 시절이다. 다르게 만들어가는 여러 일들 안에서 나오는 열정과 힘, 차분하게 이어가려는 의지는 빨강과 파랑으로 물들어 간다.   

  

 지금 나는 40대 후반이다. 나의 색은 초록이다. 환경에 따라 초록색도 빛이 달라진다. 그날의 감정에 따라 연둣빛이 되었다가 청록색에 가까운 진한 색이 되기도 한다. 처음 나오는 싹은 연둣빛이다. 연둣빛은 뜨거운 태양과 강한 비바람을 이겨내 이내 무성해진 초록으로 그늘을 드리운다. 지나간 시절에 비해 마음의 여유와 생각의 변화로 유연해지고 차분해짐을 발견하여 가는 시기다.    

  

 쉼이 되어주는 색이다. 드리운 그늘에서 쉬어가면 바람도 초록이 된다. 무엇을 하든 '그럴 수 있다.’고 안정된 마음의 눈으로 여유있게 바라보려 한다. 쓸데없이 걱정하고 고민하기만 해서는 개선이 되지 않는다. 고민으로 부정하기보다 건강한 고민이 되도록 받아들이려 한다. 나오는 감정은 모두 소중하다. 그 감정이 소홀함이 없도록 다독이고 밖으로 뾰족거리게 튕겨져 나오지 않도록 어루만진다. 나를 채울 수 있는 초록의 마음은 자연을 닮았다. 자연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옴으로 인해 있는 그대로의 지금은 내게 너무 각별하다. 바람을 맞으며 초록의 숨결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싶은 소망이 곧 나의 마음이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감정에 따라 초록의 빛깔은 다양하게 나탄난다. 어떤 때는 연한 초록이었다가 때때로는 짙어가는 색이 되기도 한다. 그 빛깔에 비친 하늘을 이고 나무의 무성함으로 우뚝 서고 싶다, 쉼을 주는 나무의 초록처럼 단단하다. 누군가의 말에 휩쓸리고 넘어지기보다 그늘이 되어주는 푸르름을 안고 간다. 그 안에서 새가 지저귀고 바람이 앉았다 간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의 편안함이다.


 속으로 무수히 되뇐 언어들을 모두 합쳐 좋은 말은 꼭꼭 씹어 내고 안 좋은 말들은 좋은 것이 되도록 되돌려 준다. 다져진 말들이 단단함으로 무성해지도록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 하나의 존재인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바로 서고 이내 푸르러 타인을 사랑하게 된다.     


 50세가 지나면 나는 어떤 색이 될까? 초록을 거머쥔 빛깔은 서서히 익어가 누군가에게 내어줄 수 있는 여유로운 빛인 갈색으로 물들어 가지 않을까? 진하게 일군 가을의 빛을 닮은 빛깔은  제자리에서 잘 내어주는 마음이 된다. 나를 잘 표현해갈 수 있는 빛깔이 되도록  오늘도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가을 문턱에서 무성해진 초록이 진해질 수 있도록, 느리더라도 꾸준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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