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낮을 이고 호박이 햇살을 따스하게 쬐고 있다. 크고 무거운 호박의 무게는 땅으로부터 이어진 줄기의 자락으로 매달려 있다. 가볍지 않을 무게를 잡은 줄기에 시선이 간다. 새끼손가락 굵기만큼 가녀린 줄기지만 울퉁불퉁 크기만 한 호박을 넝쿨째 붙들고 있었다. 땅에 놓인 호박이 아니라 담장을 넘어선 줄기 힘만으로 오로지 매달려 있다. 매달린 호박도, 끝끝내 잡고 있는 줄기의 힘도 대단하다.
줄기 하나로 인해 속이 여문다. 햇살을 받아 비를 품어내며 바람을 맞는다. 그것이 줄기 따라 머금어져 안으로, 안으로 단단해진 여물을 만들어 간다. 나의 인생도 그러하면 좋겠다. 호박과 줄기를 보면서 관계에 대한 생각에 잠기었다. 누군가의 자연스러운 끌어짐은 인고의 시간으로 나오게 되고, 끌고 끄는 사이는 말하지 않아도 믿어주는 다정한 속삭임으로 이루어진다. 어디에도 시선을 뺏기지 않을 올곧은 집중의 힘이다. 굴하지 않을 하나로 이어진 단단함을 여기서 배운다. 호박은 매달린 하루만큼씩 여물어질 인생으로 차오르게 시작한다.
줄기가 시작된 지점부터 끝이 어디일지 눈으로 발을 옮겨 가며 살펴본다. 차근차근 보아 가는 나의 눈에 줄기를 따라 피어진 호박꽃이 배시시 웃고 있다. 가을의 풍성함이 노란 빛깔로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나도 거기에 머물러 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