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던 폭우가 가시니 날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열기는 물러가고 차가운 공기가 바람을 맴돈다. 나무마다 서걱일 잎들을 불러 모아 비벼대는 자리마다 ‘사라락’ 소리가 좋다. 오랜만에 아이와 놀이터로 나와 놀면서 잠깐 사이 읽을 책도 들고 나왔다. 시원해진 바람을 사이에 두고 어루만지는 책은 가을을 머금으려 하늘을 당기고 있다.
낙엽이 그새 떨어져 있었다. 낙엽은 그것이 끝이 아닌 생명이다. 잎맥들이 햇빛을 받아 내게 유유히 세상 빛의 찬란함을 보낸다. 아주 작은 세포로 시작해 봄의 새로움을 타고 여름의 열정을 즐겨 가을의 소리를 보듬고 있다. 곧 들어올 겨울에 땅의 온기를 덮어 지켜내려 마지막까지 나무의 숨결 따라 이어져 있기에 여전히 생명은 그대로라 느껴진다.
바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안아가 모든 세상의 감정을 잘 고이고이 잘 품어낼 낙엽을 가만히 쳐다본다. 잎맥을 따라 해를, 하늘을 비추어 본다. 투명해진 사이사이 비친 자연이 이파리 하나에 모두 들어있다. 처음이라는 신비함과 여름을 이긴 인내와 인정 따라 피고 진 무수한 일들, 숨조차 쉬어지지 않을 온갖 것으로부터 지켜낸 유연함, 가을의 빛깔을 품고 나무의 시름을 덜어낸 겨울마저 생각한 이해가 모두 맞물려 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낙엽 하나에도 생명의 모든 것이 들어있으니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우주의 법칙이 가득 들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