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2학년 대상 ‘겨울 생태계 알아보기’ 도서관 4주 프로그램이 모두 끝이 났다. 다른 지역 1학년 동생들과 친해진 은솔이는 매주 토요일 프로그램이 끝나면 아파트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헤어진다. 10월 초 어는 일요일에는 따로 약속을 미리 잡아 도시락을 싸고 야외에서 만나기도 했다. 이미 친하게 지내는 터라 만나기만 하면 수업 후 노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11월의 바람은 제법 차가워지고 나무의 낙엽은 실오라기 남기지 않고 비워내기의 절정을 향해간다. 간혹 남아있는 나뭇잎조차 울긋불긋 마지막 여운을 남기어 가고 있다. 오후이지만 쌀쌀해진 탓에 온몸이 움츠러들었지만, 아이들의 활동 반경 안에서는 날씨쯤이야 아랑곳하지 않을 기운들이다.
놀이터는 아이들의 세상이다. 뛰어다니던 총총거림이 미끄럼틀을 내려오면서 층층이 기차가 된다. 기차는 서로 연결되는 줄처럼 이어지다가 점점 납작하게 붙는 만두처럼 찌그러져 재미있는 놀이가 된다. 앞에 있는 아이와 제일 뒤에 있는 아이들이 차례대로 일어나 뜀박질한다. 찬바람에도 불구하고 뛰어다니니 몸에 열기가 도나 보다. 휙 잠바를 벗어 놓는다. 아무리 열이 많기로서니 잠바까지 벗는 것은 이런 날씨에는 엄두가 안 난 엄마들은 잠바 입히기에 혈안이다. 안 입겠다고 도망가는 아이와 입히려는 엄마 사이에 술래잡기가 시작이다. 그것이 재미있어 도망치는 아이들은 또 까르르거린다.
놀이터 주변에는 나무가 많다. 11월 답게 나무들 사이로 낙엽이 제법 고이고이 놓여 있다. 아이들이 낙엽 우거진 나무 사이로 뛰어 들어가면 바스락 소리가 아이처럼 경쾌하게 들린다. 경쾌한 소리는 시들어가는 것이 아닌 새로움을 위한 준비이다. 걸어가면서 내는 소리는 첫눈을 밟을 때처럼 조심스럽지만 차분해지는 쉬어감의 소리로 들린다. 새로움과 쉬어감은 한 공간 안에 공존되는 무언의 소리다. 새로움은 탄생이고 쉬어감은 또 다른 준비를 이룬다. 아이들의 세상과 어른들의 세상도 그런 공존의 세상 안에 뒤엉켜 내어 주고 돌려주는 관계로 이어지고 있나 보다.
추운 날씨에도 노는 아이들은 행복 그 자체다. 앉아서 영상물 접근이 많은 때에 이렇게 온몸으로 교감하고 놀 수 있다는 자체가 행운이다. 은솔이가 가지고 온 티니핑 인형으로 미끄럼틀에 앉아 소꿉놀이도 하고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인 마피아 게임도 한다. 시소를 타며 또 까르륵거리다가 요새 유행인 ‘아파트’ 노래에 맞춰 율동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놀이 세상은 무궁무진하기에 이것저것 태세 전환도 빠르다. 새로운 놀이도 금방 익숙하게 따라 하고 어떤 것이든 해 보려고 한다. 서로 하고 싶은 놀이는 순서대로 잘 양보하면서 하는 모습에 제법 커 가는 모습이 보인다. 꼭 글자만이 아니라 몸으로 행하고 말하고 느끼면서 배워가는 것이 있다.
갑자기 놀이가 또 바뀌었다. 조그만 티니핑 인형 4개를 보물처럼 내가 숨긴 것이다. 보물 찾기가 곧바로 시작되었다. 낙엽 아래에 하나, 앉은뱅이 나무 사이에 하나, 나무와 나무 사이 벌어진 틈 사이에 몰래 끼워 놓고, 널찍한 바위 위에 각각 놓인 인형들이 각자의 주인을 찾는다. 이제 준비 땅! 보물 찾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자기가 먼저 찾으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하나를 찾으면 모두 환호하는데 찾은 기쁨에 환호성이 들리니 아이들 자신도 뿌듯한가 보다. 몇 번의 숨기기와 찾기는 계속되고 있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낙엽 사이를 뒤지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아이들은 오늘처럼 뛰어놀아야 한다. 땅을 딛고 호흡하고 하늘을 향해 웃으면서 커야 한다. 땀 흘리고 바람을 맞으며 여러 계절의 과정을 맛보아야 한다. 요새는 특히 땅을 밟을 일이 없으니 그나마 있는 놀이터 주변의 온기를 가져갈 수 있어 다행이다.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지는 것도 재미있다. 얼싸안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다음 주 토요일에 또 보자며 자기들끼리 약속을 한다. 토요일에 또 약속을 잡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