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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Dec 04. 2024

내가 하는 일이란 것에 대하여

간호사로 거듭나기


 나는 간호사인 것이 너무 좋다. 고 3 시절 대학을 선택할 당시에는 눈도 돌리지 않았던 과였다. 나는 국문학과와 유아교육과를 희망했었다. 아빠는 안목이 있었나 보다. 미래를 위해 전문성을 살릴 수 있고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다는 부분을 강조하며 나를 설득하였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던 딸은 아빠의 희망대로 간호학과에 지원하게 되었다.


 별로 내키지 않고 나랑 맞지 않은 일이라 여기던 학과를 최종 선택하게 되면서 닥치는 것에서 어려움은 커졌다. 그 당시 문과인 나에게 생명을 다루는 이과 계열의 수업 내용은 너무 벅찼다.

 대학교 1학년 때는 학기 중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도 집중하지 않아 성적이 저조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열심히 하지 않은 딸을 보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에 이르러 너무 죄송스러운 맘이 크다. 하지만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그저 공부가 어렵고 힘들다고 느끼기만 했으니까.


 2학년 때부터 공부에 매진하여 학점을 올리니 점차 흥미가 생기고 자신감도 붙어 점차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국가고시 시험에 합격하던 순간을 가장 기뻤던 하루로 기억한다. 전화 ARS를 통해 들리는 합격이라는 소리는 환호성을 내지르게 하던 짜릿함이었다.     


 간호사 일은 생각보다 힘들다. 3교대 업무에 환자와 보호자, 선배의 눈치를 받아내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화장실도 못 간다. 밥을 먹는 것은 복이다. 여기에 익숙해지기까지 고난도 업무를 감당해야 하는 시간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 같았다.


 누구 하나 대신 책임지어줄 수 없는 현실 안에서 적응해 나가고 간호를 올바로 수행하고,  제대로 해내기 위한 과정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환자 상태와 간호는 나로 인해 시작이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시간이 지나 경험이 쌓이니 나의 지식과 기술이 곱으로 높아져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더군다나 힘든 과정 안에 보람을 느끼는 일들이 생기니 점차 내가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힘든 과정 안에 피어난 꽃은 아주 혹독할 때 더 잘 피어난다. 로제트 식물인 민들레와 냉이의 경우 추위와 바람을 견디기 위해 따뜻한 땅의 온기 쪽에 숨을 불어넣어 땅에 철썩 붙어 지낸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혹한을 버티어가면 이른 봄 활짝 핀 잎과 꽃잎은 세상을 향해 당당히 펼쳐진다.       

 간호 일을 하면서 온갖 궂은일 속에서 내가 내민 손길로 정성을 다한 마음이 전해질 때마다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힘든 경험일수록 후에 느끼어 간 뿌듯한 자부심은 사랑으로 피어났다. 내가 마치 로제트 식물인 것 같다. 체구도 작고 마음도 여리지만 단단함으로 뭉쳐질 수 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25년 차 간호사로 지금까지 임상을 지켜오며 수술실, 주사실, 병동, 코로나 전담 병원 업무, 관리자로 자리를 지키며 두 손 두 발 걷어 부쳐 모든 부서 할 것 없이 나서서 솔선수범으로 임하는 동안 지금까지 나는 간호사인 것이 자랑스럽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듯 어려움 안에 또 다른 길이 있었다. 단지 피하지 않고 묵묵히 버티어 낸 것이 나를 있게 한 것이다. 좀 더 잘하기 위해 지속해서 배워감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하는 마음, 중용을 지키려 한다. 간호를 행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저버리지 않는 마음은 비록 거친 손이지만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다. 내가 한 행동은 내가 가장 먼저 보게 되고 듣게 된다.     

간호사 일을 시작하고 10년쯤 지난 어느 날 아빠께 “아빠 덕분에 저는 뿌듯한 일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씀드렸었다. 그때 아빠의 얼굴은 뭔지 모를 응원 같은 웃음으로 빛이 났다.


나로 인해 기쁨을 전할 수 있고, 내가 필요한 곳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은 충만한 마음으로 영글게 한다. 2년 전 하늘나라로 가신 아빠의 선택은 옳았다. 딸이 이렇게 잘 해내리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 지금도 나를 굽어보며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의 선택이지만 그것을 내 일이라 여기며 구슬을 잘 엮어내듯 한 땀 한 땀 이룬 선택은 나의 몫이다.


 지금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으로 하루를 맞이하고 있다. 날마다 일어나는 일들은 잘 넘어서는 순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찬 뿌듯함의 경험을 남긴다. 그 숙제는 내가 이겨낼 수 있을 만 하기에 내게 오는 것이다. 차근차근 해결해 가는 과정이 너무 소중하다. 그리하여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해결해야 할 일들에서 부딪히는 감정과 에너지의 소진은 단점이 된다. 매일 좋은 순간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내가 해결하고 나아가는 순간 나의 경험으로 쌓여 점차 녹아들고 이것은 곧 장점으로 승화된다. 부정 안에 긍정이 놓이는 순간이다.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인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같은 방향을 보고 함께 가는 동료와, 나의 최종 목적인 환자를 향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역시 간호는 이과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어.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침착함을 유지하고 세상을 예쁘게 보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무장하여 오늘도 힘차게 나의 일을 다해 본다.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는 것으로 생각을 바로 잡는 일들은 나의 소신이다. 긍정의 힘으로 좋은 것은 좋은 대로 나쁜 것은 나쁜 대로 고쳐서 나아가면 되니 그 또한 나에게는 귀한 경험이 된다. 살아가면서 이렇게 느끼기까지 나는 지금도 하루하루 배워가는 중이다.    


일단 나는 내가 간호사인 것이 너무 좋다.



로제트 식물처럼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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