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아버지 날 (Father's day)은 6월 20일이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을 별도로 기념하며, 상대적으로 큰 행사인 5월의 어머니 날과 달리 아버지 날은 조용히 지나가는 편이다. 당장 TV와 인터넷에 나오는 광고부터 매우 다른데, 보석, 멋진 옷, 장신구 등을 연신 보여주며 어머니 (혹은 아내)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어머니날 광고와 잔디 깎는 기계를 포함한 정원 관리 장비, 가전제품, 페인팅 용구 등을 보여주는 아버지날 광고를 비교하면 상당한 온도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
애초에 한국 있을 때부터 기념일을 챙기는데 (혹은 챙김 받는데) 큰 감흥이 없는 나는 아버지 날이고 뭐고 주말에 야구만 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선물이었다. 주초부터 있었던 비 예보가 일요일 아침 거짓말같이 사라졌고,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야구장으로 향했다. 운동장에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있는데 와이프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아빠한테 선물 사주고 싶대서 갑니다. 파티를 해야 한다고 하네요"
집에 도착하니 거대한 초코 생크림 케이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어두운 색이 싫어서 초콜릿은 입에도 대지 않던 애가 스스로 이런 걸 사 왔다고?
와이프의 말에 따르면 내가 야구를 하러 나간 후 갑자기 태민이가 '아빠에게 파티를 해줘야 한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제과점에 가서도 메뉴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더니 '초콜릿 스트로베리 케이크'를 사자고 했다고. 그래서 와이프가 "직원분에게 말해봐"라고 농담처럼 말했더니, 아이는 직원의 눈을 똑바로 보고 이렇게 말했다.
태민이가 골라온 첫 아버지날 선물은 최고의 맛이었다. 아니, 맛이야 아무려면 어떠랴? 태민이가 하고 싶은걸 구체적으로 말하고,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먹고 싶은 케이크를 고르고, 심지어 부모나 치료사가 아닌 제삼자의 눈을 쳐다보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날은 나에게 최고의 Father's day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