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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Aug 08. 2022

신목비화(神木悲話) -1-

신지의 유년시절

  할매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을 중심에 있는 성황당 팽나무 앞으로 나아가 지극 정성 기도를 드렸다. 거대한 이 팽나무에는 빨강, 노랑, 파랑, 초록, 검정, 오방색의 천들이 가지마다 둘러져 있었고, 줄기의 몸통 부분에는 금색 새끼줄이 둘러져 있었다. 사뭇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이 거대한 나무에 천과 새끼줄이 둘러져 있는 모습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허수아비를 연상시켰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와 잎이 흔들리면서 더욱 허수아비가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허수아비는 원래 벼 이삭을 도둑질하는 참새들을 내쫓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팽나무는 무엇을 쫓기 위해 이 자리에 존재하는 것일까. 어린 나의 머릿속에는 거대한 새를 쫓아내는 팽나무가 떠올랐다. 아무리 봐도 무섭고 두려운 광경이었다. 그만큼 큰 새가 존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팽나무가 큰 새를 쫓기 위해 가지와 잎을 움직인다니,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려왔다.

  그런 팽나무를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기도를 드리는 할매의 모습은 마치 염불을 외우는 것처럼 보였다. 할매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여러 번 위아래로 비비고는 나무에 절을 드리고 다시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방식을 반복했다. 절을 드리는 할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결연했고, 진지해 보였다. 마치 전쟁에 징집되어 막 전투에 임하는 어느 장군의 모습이랄까. 할매는 전쟁터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이렇게 비장할 수가 있을까. 나이 어린 나는 이 광경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한 한 시간 가량이 지났을까. 할매가 예배를 마치고 뒤를 돌아 나를 바라봤다. 돌처럼 굳어 있던 할매의 표정이 주름살 가득하고 인자한 미소로 바뀌어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환웅께서 '환국'이라는 나라를 세우신 증거가 바로 신단수란다. 신단수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성스러운 나무, 즉 신목이지. 이 신목은 작게는 마을을, 크게는 나라를 수호하는 영이 깃든 나무란다. 우리 마을에도 이 거대한 팽나무가 있어 우리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것이야."


  할매는 매번 예배가 끝날 때마다 이 말씀을 내게 주입하듯 반복하셨다. 할매에게 있어 환웅이, 신단수가, 신목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귀가 닳도록 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나로서는 지루하고 식상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할매, 할매는 왜 맨날 여기 와서 절해요?"

  "그거야 할매가 무당이라 그렇지."


  그랬다. 우리 할매는 무당이었다. 할매의 말에 따르면, 집안이 대대로 태백산에서 살아오면서 무당 일을 해와서 할매도 어머니이자, 신어머니의 뒤를 이어 무당이 되었다고 했다. 집안이 대대로 무당의 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여 왔기에 할매도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운명으로 받아들였다고. 이제 할매의 남은 숙제는 숙명인 무당의 업을 자신의 외손녀인 나에게 물려주는 것이었다. 매일 할매가 성황당 팽나무에 와서 기도를 드릴 때마다 나를 데려오는 것도, 마을 사람들의 점사를 봐줄 때마다 나를 동행시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나는 할매의 그런 고귀한 뜻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나이가 한참 어렸다. 당시 7살밖에 되지 않았던 나로서는 나를 업어서 길러준, 정이 든 할매 곁을 떠나기 싫었을 뿐, 무당 일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 단지 동네 아이들과 함께 성황당 팽나무 아래서 뛰어놀기 좋아하는 치기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보통 이맘때의 나이라면 해가 뜨면 집을 나와 해가 질 때까지 놀기 좋아할 나이지 않은가. 나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산으로, 들로, 냇가로 마실을 나가서 청개구리를 잡고, 들꽃으로 반지를 만들고, 예쁜 조약돌을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할매는 그런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며 못마땅해하면서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 특히 성황당 팽나무 아래서 노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신목이 노여워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럴수록 청개구리처럼 아이들을 팽나무 아래로 모아서 나무를 타면서 놀았다. 그 당시에는 신목이든, 무당이든 아무래도 좋았다. 아이들이 나를 피하기 전까지는.


  내가 8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동네에서 함께 어울리던 아이들은 점차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같은 반이 된 친구들은 나를 이상한 벌레 보듯 대하며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동네에서 가장 친한 영식이네 집으로 놀러 갔는데,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영식이 엄마가 나와 "집으로 돌아가렴. 우리는 너같이 이상한 집 애가 우리 영식이랑 어울리게 둘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잘 어울리던 영식이를 갑자기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영식이 엄마에게 당돌하게 물었다.


  "왜죠? 왜 영식이랑 만나면 안 돼요?"

  "그거야 네가 무당 집 아이니까 그렇지."


  무당 집 아이니까 그렇지. 무당 집 아이니까 그렇지. 영식이의 집에서 할매 집으로 돌아오면서 영식이 엄마의 말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무당 집 아이면 친구와 놀지도 못하는 건가. 어째서? 내가 무당 집 아이인 것과 영식이와 놀지 못하는 것 사이의 인과관계를 나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할매를 붙잡고 물었다.


  "할매, 무당 집 아이면 왜 친구랑 못 놀아요?"


  할매는 나의 말을 듣자, 조금 슬픈 듯 눈가가 촉촉이 젖으며 말했다.


  "무당은 고귀한 일을 하지만, 사람들은 무당을 두려워한단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기 때문이지."


  나는 할매의 말을 듣고서 할매 뒤에 차려진 신당을 바라봤다. 창을 든 장군 신이 험악한 인상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 옆에는 칠성 신이 초연한 얼굴로, 또 그 옆에는 귀여운 외모의 동자 신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어릴 때부터 봐 왔던 친숙한 얼굴들이었지만, 다시 보니, 다른 아이들의 집에는 없는 것들이었다. 신상들을 바라보자, 순간 남들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자신이 싫어졌고, 무당인 할매가 원망스러워졌다.


  "할매, 할매 때문이에요. 할매 때문에 내가 친구들하고 못 노는 거잖아요."


  나는 대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산길을 달리고 달려 성황당 팽나무 아래에 도착했다. 저 거대한 팽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떠올랐다. 누가 더 높이 팽나무 위로 오르는지 내기했던 것도, 팽나무 가지 위에 앉아서 균형을 잡으려 했던 것도 생각이 났다. 그러다가 팽나무 위로 가장 높이 오른 자신을 제외하곤 팽나무를 제일 잘 올라오던 영식이 생각이 났다. 그러나 이제는 영식이와 그렇게 재밌게 놀 수가 없었다. 무당의 손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이제 성황당 팽나무마저 원망스러워졌다. 무당인 할매가 그리 정성을 들여 기도를 드리는 대상인 이 팽나무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졌다.

  나는 팽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팽나무에 걸쳐져 있는 오방색의 천들을 하나씩, 하나씩 찢어나갔다. 찢어진 천들은 공중으로 나부끼다가 이윽고 땅으로 떨어졌다. 나는 팽나무를 두르고 있던 금줄을 힘주어 잡아당겼다. 새끼줄은 은근히 단단해 끊어지지 않았다. 땅에서 돌을 주워 새끼줄에 대고 사정없이 긁었다. 새끼줄은 돌의 마찰을 받아 점차 얇아지더니, 이음새가 끊어졌다. 새끼줄을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팽나무 앞에 쌓인 돌들을 무너뜨렸다.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려져 있던 돌들은 느닷없이 밀어대는 힘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나는 악에 받쳐서 팽나무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한동안 땅에 떨어진 천과 금줄, 돌들을 밟고 차고 짓이겨댔다.

  그렇게 광기에 사로잡혀 할매의 제단을 엉망으로 만들고 나니, 나도 모르게 힘이 스르륵 빠졌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아까는 분명히 할매가 원망스럽고, 이 팽나무의 제단이 죽기보다 싫었는데, 이제는 매일 할매와의 추억이 깃든 이곳을 엉망으로 만든 내가 너무나 싫어졌다. 소리 내어 울다가 무릎을 감싸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신지야."


  할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할매의 목소리가 분명했으나, 어느 때보다도 힘없이 떨리고 가냘픈 목소리였다. 나는 얼굴 가득 눈물자국이 난 채로 고개를 들어 할매를 바라봤다. 할매는 바닥에 널린 천, 금줄, 돌들을 하나씩 줍고 있었다. 마치 자기 자식이 다친 것처럼 아픈 표정을 하고서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주워서 한 곳에 모으고 있었다. 그 동작은 너무나도 조심스러워서 할매가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할매..."


  나는 이제 바닥에 널브러진 것들을 다 모은 뒤 그 앞에 앉아 망연자실해하고 있는 할매를 부르며 다가갔다. 할매는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고 품 안에 나를 안았다.


  "미안하구나, 신지야."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할매의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툭 흘러나왔다.


  "할매... 죄송해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나는 할매가 그토록 아끼던 신목을 망쳐놓은 것이 일을 벌여 놓은 이제 와서 후회가 되고, 죄스러웠다. 나는 할매의 품 안에 안겨 또다시 사죄의 눈물을 흘렸다. 할매는 내가 울자, 내 등을 손으로 두드리며 나를 달래주었다.


  "아니다, 아니야. 이 할미가 다 잘못했다."


  그날, 그렇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할매의 품에 안겨 나는 하염없이 울어댔다.


  그 뒤로 팽나무는 다시 제단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할매는 나에게 같이 기도하러 가자고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할매의 신당에 점사를 보러 왔을 때도 그 자리에 있지 못하도록 했다. 할매는 이제 나에게 무당의 일에 대해서, 신단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할매의, 아니 무당 집안의 일을 물려받지 않아도 된 것이었다. 나는 할매의 새로운 뜻에 알맞게 자라나갔다. 초등학교에서 비록 친구는 생기지 않았지만,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를 하고 책을 읽었다. 공부가 체질에 맞았는지 나는 곧잘 좋은 성적을 받아와 할매를 기쁘게 했다. 할매가 기뻐할수록 나는 눈에 불을 켜고서 공부에 매진했다.

  비록 친구들과 그 부모들에게는 무당의 손녀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나였지만, 학교 선생님들은 나를 모범생이라고 인정해 주었다. 특히, 담임 선생님은 놀기 좋아하는 장난꾸러기에서 성숙해지고 학업에 최선을 다하는 나를 기특해했다. 하루는 담임 선생님이 종례가 끝나고 나를 불렀다.


  "신지야,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선생님은 참 보기 좋아."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런데, 중학교를 시내에 있는 사립중학교로 다니면 어떻겠니?"

  "사립중학교요?"

  "그래. 거기는 신지 같은 모범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곳이야. 그곳으로 가면 신지의 학업에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런가요?"

  "그래. 그 대신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해. 할머니와 떨어져 살 수 있겠니?"

  "할머니와... 떨어져서?"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껏 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오신 할매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자식처럼 나를 길러주신 할매를 두고 도시로 나가서 살 수 있을까. 차마 할매를 혼자 두고 도시로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요즘 들어 눈도 침침해지고, 허리가 굽은 것이, 연세가 드신 게 부쩍 티가 많이 나는 할매였다. 그러면서 할매의 용했던 점사도 점차 신통력을 잃어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매해 할매에게 성황당 팽나무 앞에서 굿을 하도록 부탁했던 동네 어른들은 이제 다른 무당에게 점사를 보러 가고, 굿을 부탁했다. 할매는 천이 찢기고, 금줄이 끊기고, 돌이 무너진 성황당의 제단의 그때처럼 한없이 초라하고 약해져 있었다.


  "할매, 학교 다녀왔어요."

  "이리 좀 와 보렴."


  할매가 나를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불렀다. 할매는 한복을 입은 채로 신당에 앉아 있었다. 제단의 초가 흔들리면서 할매가 앉아 있는 형상이 조금 흔들리는 듯 보였다. 향이 코끝을 간질였지만, 여느 때처럼 맡아왔던 향 냄새기에 대수롭지 않았다. 할매는 내가 상 맞은편에 앉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지야,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하셨다. 도시에 있는 사립 중학교에 가면 네가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어."

  "네..."

  "신지야, 도시에서 학교 다녀라. 할미는 혼자서도 괜찮다. 할미 걱정 말고 도시서 살아라."

  "아니에요, 할매. 저는 할매랑 살 거예요!"

  "아니야,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도시에 가서 공부해야 한다."


  할매는 말을 마치자, 상 서랍에서 통장을 꺼내서 상 위에 올려놓았다.


  "할미가 그동안 무당 일 하면서 모은 돈이란다. 네가 대학 갈 때까지 학비로 쓰려고 모아둔 돈이야. 이제 너한테 주려고 한다."

  "할매..."

  "그러니 도시 사립중학교로 가거라. 알겠니?"

  "할매, 그렇지만..."

  "이 할미 네가 걱정할 만큼 그렇게 약하지 않다."

  "할매..."


  나는 코끝이 간질하다 못해 참을 수 없이 시큰거렸다. 향 냄새가 그리 독한 것도 아닌데, 그날따라 코끝이 시린 듯이 찡해왔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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