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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Nov 01. 2020

어느 멋진 날


ⓒ 바람풀


선유동 계곡을 지나 제비소까지 S와 함께 길을 걸었어.

제비소 맑은 물에 발을 담근 채 우린 함께 동요를 불렀지. 


“낮에 놀다 두우고 온 나뭇잎 배는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


아무도 없는 제비소 주위는 물과 벌레, 새소리만이 가득했어. 풀벌레 소리가 압도적이었지. 마치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벌레 뱃속에 있는 앉아 있는 기분이었어. 신령이 깃들어 있을 것만 같은 은행나무 옆에서 줄에 묶인 늙은 개 한 마리가 몸을 말고 잠들어 있었어. 그 개를 보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지. 작년 시월에도 S와 함께 이곳에 왔었거든. 노란 은행잎이 몽땅 떨어진 나무 아래 은행이 수북이 쌓여있었지. 그때 우리는 맹렬히 짖어대는 저 개도, 꼬리 꼬리 한 은행 냄새도 아랑곳하지 않고 은행 알을 주워 담았어. 보름 정도 밖에 매달아 두었다가 우유갑에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된다고 해서 한 봉지 주워왔지. 그다음 해 봄에야 꼬릿한 냄새가 진동하는 까만 봉지를 발견하고는 ‘웩’ 하고 몽땅 버렸어. 


한 해를 보내고 또다시 이곳에 왔네. 이번엔 둘 다 은행을 줍지 않았어. 목소리가 고운 S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을  불러주었어. 노랫말처럼 '바람 한 점에도' 햇살 한 줌에도 사랑은 가득하구나. 


 

물 속에서 오로라를 보았어. 

빛과 물이 만나 너울너울 춤을 추는 것 같았지. 

수면위로 어룽지던 물결, 다시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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