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내 마음 몰라? (아빠도 몰라…)

by 성준

주말 저녁, 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신발을 벗는 소리도 거칠었고, 가방을 내려놓는 소리도 무겁게 들렸다. 뭔가 있었구나.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빠의 감은 그런 순간에만 기가 막히게 발동한다.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오늘 뭔 일 있었나?”

아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딸의 방문 앞에 섰다. 문을 두드리려다 멈칫했다. 사춘기 아이의 방문은 신성한 구역이다. 허락 없이 열었다간 전쟁이 난다. 나는 문을 사이에 두고 조심스레 물었다.


“딸, 무슨 일 있어?”

안에서 침묵. 그 정적이 오히려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한참 후, 단 한 마디만 돌아왔다.


“됐어.”

나는 방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나? 아니지. 그건 아니야. 나는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빠도 너만 할 때 친구 문제로 속상한 적 많았어.”

순간 안에서 무언가가 바닥에 털썩 던져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방문이 확 열리더니, 딸이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은 불타고 있었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아빠는 내 마음 몰라.”

나는 벙쪄 있었다. 나는 공감한다고 했는데, 왜 딸은 더 화를 내는 걸까? 나는 분명, 위로하려고 한 말이었는데.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라는 말이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

어른들은 흔히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경험담을 꺼낸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춘기 때 나도 같은 말을 들으면 짜증이 났었다.


“나 때도 그랬어.” “다 지나가.” “이런 건 별일 아니야.”

어릴 때 이 말을 들으면, 어땠더라? 위로가 됐던가? 아니다. 오히려 내 감정을 가볍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공감은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라고 하는 순간, 그 기능을 잃는다. 아이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느낀다. 그리고 부모에게 바라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냥 들어주는 것,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나는 딸이 뭐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빠도 그런 적 많았어.”라고 말할 게 아니라, 그냥 “힘들었겠다.”라고 했어야 했다.



부모의 공감은 아이에게 어떻게 전달될까?

사춘기 아이는 부모가 모든 걸 이해해 주길 바라는 게 아니다. 그냥 내 기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길 원할 뿐이다.

나는 며칠 후, 딸과 다시 마주 앉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르게 말했다.


“무슨 일 있었어?”

딸은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빠, 가끔은 그냥 내 말 들어주면 안 돼? 해결책 같은 거 말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했던 공감이 사실은 공감이 아니라 조언이었던 것을.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딸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들었다. 그게 내겐 조금 어려운 일이었다. 부모는 아이가 힘들어하면 무언가 해결해 주고 싶어하니까. 하지만 그날, 나는 딸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대신 딸은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마쳤고, 마치 홀가분해진 듯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감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것이다

공감한다고 해서 부모의 권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감할수록 아이는 부모를 더 신뢰하게 된다. 부모가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아이는 부모를 단순한 훈육자가 아닌 든든한 지원군으로 여기게 된다. 그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의 유대감은 더욱 단단해지고, 부모의 역할과 의지도 더 커진다. 아이는 부모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터놓게 되고, 그 신뢰 속에서 부모 역시 아이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100%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최소한,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춘기 아이에게 필요한 건 훈계가 아니다.


“네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난 네 편이야”라는 확신이다.


나는 딸의 방을 나서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혼자서 생각했다.

부모가 꼭 모든 걸 해결해 줘야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답을 주는 것보다 함께 고민해 주는 것이 더 큰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가끔은 조용히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때로는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부모가 해결사가 아닌 동반자로서 존재할 때, 아이는 더욱 자신을 믿고 성장할 수 있다.


사춘기 아이에게 필요한 건 해결사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지켜봐 주는 조용한 지지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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