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높은 아이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by 성준

주말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거실에는 따뜻한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졌고, 창밖에서는 이따금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딸이 방에서 나와 거실 거울 앞에 섰다. 새로 산 옷을 입고 몸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손끝으로 치맛자락을 살짝 잡아 당겨 보기도 하고, 고개를 기울여 옆모습을 살핀다. 어깨를 펴고, 한쪽 다리를 살짝 앞으로 내밀어 보기도 하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낯선 듯, 기대와 어색함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점점 그 얼굴이 굳어갔다. 미간이 살짝 좁혀지고, 입술을 꾹 다문 채 가만히 거울을 응시했다.


“이거 이상해?”

나는 신문을 넘기다 말고 딸을 올려다봤다. 밝은 파스텔톤의 셔츠와 플리츠스커트. 평소보다 조금 화려한 스타일이었다.


“음, 그냥 네가 원래 입던 게 더 낫지 않을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딸의 얼굴이 살짝 흔들렸다. 눈길이 순간 거울에서 바닥으로 향했다. 거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순식간에 식어갔다. 나는 그 변화를 놓쳤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조용한 집 안에 부드럽게 울렸다.

잠시 후, 딸은 다시 나왔다. 익숙한 검은 맨투맨과 넉넉한 청바지, 언제나 입던 그 모습이었다. 마치 방금 전의 설렘은 없었던 일처럼. 어깨를 조금 더 움츠리고, 발걸음도 가벼웠던 아까와는 달리 조용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방금 내 말이 딸의 거울을 깨버렸다는 것을.


부모의 말 한마디가 아이의 자존감을 결정한다

부모는 가끔,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이 아이의 머릿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메아리치는지 모른다. 나는 단순한 의견을 말한 것이었지만, 딸은 그것을 **“나는 안 예쁜가?”**라고 해석했을 것이다.

이건 단순한 옷차림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평가를 자신에 대한 기준으로 삼는다. 엄마, 아빠가 좋다고 하면 좋은 것이 되고, 애매하다고 하면 자신도 애매하게 받아들인다. 그 작은 차이가 반복될수록, 아이는 점점 자신의 선택을 믿지 못하게 된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던 건 틀린 걸까?”**라는 의심이 머릿속에 남는다.


처음엔 단순한 망설임이었지만, 점점 반복되면 아이는 도전을 주저한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물어보고, 결국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르게 된다. 자신만의 개성을 찾기보다는, 실패할 위험이 없는 익숙한 것만 선택하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쌓이면, 무난하고 안전한 길만을 걷는 아이가 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선택하지 못하고, **“이게 맞을까? 엄마, 아빠는 뭐라고 할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아이는 점점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자기 자신을 믿는 법을 잃어버린다.


부모의 태도가 바뀌면, 아이의 자존감이 바뀐다

나는 과거를 떠올려 봤다. 어릴 적, 발표를 앞두고 고민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 나 내일 반에서 발표해야 하는데…”

그때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기대를 저버렸다.


“너 원래 그런 거 못 하잖아.”

그 말이 내 기억 속에 깊이 박혀 있다. 부모는 가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단정 짓는다. 그리고 그 말들은 아이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나는 발표를 못하는 사람, 나는 말주변이 없는 사람, 나는 새로운 걸 시도하면 실패하는 사람. 부모가 무심코 던진 말들이 아이를 규정하고,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반대로, 부모의 말이 아이를 열어줄 수도 있다.


“발표 준비하느라 힘들었겠다. 네가 준비한 만큼 하면 충분해.”

“와, 이번 스타일은 좀 색다르네! 네가 좋아하면 그게 제일 중요하지.”

부모의 기준이 아니라, 아이의 기준을 존중해주는 태도.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시작이다.


부모가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줄 때,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구나’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처음에는 작은 것들부터 시작된다. 옷을 고를 때, 음식을 선택할 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할 때. 그리고 이 경험들이 쌓이면, 아이는 점점 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운다. ‘엄마, 아빠가 인정해줬던 것처럼, 나도 내 의견을 존중해야겠어.’ 이런 작은 확신들이 모여 아이를 단단하게 만든다.


결국 아이의 자존감은 부모의 말과 태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부모는 그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존감을 키우는 법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씩씩거리며 가방을 던진다.


“아빠, 나 오늘 애들이 내 신발 촌스럽대.”

나는 잠시 멈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딸의 머릿속에 또 다른 ‘틀’이 생길 것이다.


“그래? 너는 어떻게 생각해?”

딸이 나를 올려다본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머뭇거린다.


“…그냥, 난 편해서 좋은데.”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됐지 뭐. 네가 좋은 게 제일 중요하지.”

모두에게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네 스타일을 좋아할 순 없지만, 네가 좋아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마라. 이 말을 듣고 딸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켜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이 말이 떠오를 수도 있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 vs. 낮은 아이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실수를 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아, 이거 좀 이상하네! 다음엔 다르게 해볼까?”**라며 웃어넘긴다. 실패를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한 번의 실수가 자신을 규정짓지 않음을 안다. 그들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 익숙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어제보다 나은 자신을 만드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아이는 실수할까 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가정이 꼬리를 문다. “이걸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혹시 틀리면 창피하지 않을까?”, “엄마, 아빠도 실망하겠지?”. 결국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둔다.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간다. 실패를 두려워하며,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만을 선택하는 삶. 그렇게 점점 자기 자신이 사라진다.**


결국, 부모가 아이의 거울이다

우리는 종종, 아이가 강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세상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정작 부모의 말이 가장 먼저 아이를 흔든다는 걸 잊곤 한다.


부모가 던진 한 마디가 아이의 가슴속 깊이 새겨질 때가 있다. 어릴 적 들었던 말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뇌리에 남아, 선택의 순간마다 귓가를 맴돈다. ‘나는 원래 발표를 못하는 애였지.’, ‘나는 예쁘지 않았어.’, ‘나는 남들 앞에서 나서는 게 어색했어.’ 그런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아이는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데 망설이게 된다.


강한 아이가 되길 바랐지만, 정작 부모의 말이 아이를 가장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반대로, 부모가 따뜻한 눈빛으로 “너는 충분해.”라고 말해준다면, 아이는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부모의 말 한 마디가 아이의 마음속 거울이 되어, 평생을 비춰주는 법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 속에서 자신을 본다. 그 거울이 언제나 차갑고 날카로울 필요는 없다. 때로는 따뜻하고 흐릿하게 비춰줄 수도 있다. “넌 충분히 괜찮아.”, “너는 네가 좋아하는 걸 해도 돼.” 그런 말들이 결국, 아이가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힘을 만들어준다.


나는 다시 주말 아침을 떠올린다. 딸이 거울 앞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내가 조금 더 다른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와,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했네! 너랑 정말 잘 어울려.” 그랬다면 딸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나는 그때의 선택을 바꿀 순 없지만, 앞으로의 말 한마디는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언젠가 내 딸이 세상을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는 힘이 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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