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침묵, 사춘기일까? 도움을 구하는 신호일까?

by 성준

거실에 앉아 아이가 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원래라면 “엄마, 오늘 학교에서 완전 웃긴 일이 있었는데!” 하면서 달려와야 할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문이 닫히고, 대화가 사라졌다. 문을 두드려볼까 하다가, 그냥 돌아선다. 별일 없겠지. 사춘기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면서도 어딘가 불안하다.


한때 가장 좋아하던 가수의 신곡이 나와도 반응이 없다. “별로야.” 그 말 한마디가 전부다. 예전엔 저녁마다 방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부르던 아이였다. 그런데 요즘은 이어폰을 끼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휴대폰을 손에 쥔 채 한참을 가만히 있다. 이따금 한숨도 쉰다.


처음엔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나도록 아이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어딘가 예민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낸다. “밥 먹으러 와”라는 말에도 “나중에”라고 대답하는 날이 많아졌다. 어떤 날은 아예 나오지 않는다. 아침에 깨우면 피곤한 눈으로 한참을 누워 있다. 아이가 변했다. 나는 그 변화를 눈치채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사춘기 우울과 불안, 부모가 눈치챌 수 있을까?


이건 단순한 기분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달 이상 지속된다면, 그건 사춘기의 감정 기복이 아니라 아이가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말이 줄어든다. 사소한 일에도 “아, 몰라.” “됐어.”라며 대화를 끊어버린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다. 예전엔 좋아했던 것들을 더 이상 즐기지 않는다. 작은 일에도 자책을 한다. “다 내 잘못이야.” 같은 말이 부쩍 늘어난다. 가끔은 “그냥 다 끝났으면 좋겠다.” 같은 위험한 말이 흘러나온다. 부모가 이 신호를 놓쳐선 안 된다.


"사춘기니까 다 그래?" 그 말이 아이를 더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부모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다들 그래.” “지나가면 괜찮아.” “나도 그랬어.”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말을 듣고 더 깊이 웅크린다. 내 마음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는 그냥 흔한 성장 과정 같아 보여도, 아이에게는 이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버거울 수도 있다. 부모는 한때 사춘기를 지나왔고, 그 감정의 파도를 견뎌봤지만, 아이들에게는 지금이 처음 맞닥뜨리는 혼란스러운 순간이다. 이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 언제 끝나는지조차 알 수 없어 막막할 수밖에 없다. 그걸 알아채지 못한 채 “넌 왜 그렇게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니?”라고 묻는다면, 아이는 더 깊숙이 숨을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다그칠 필요가 없다. 대신, 이렇게 말해보자.


“네가 요즘 힘들어 보이는데,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요즘 기분이 어떤지 듣고 싶어.” “엄마(아빠)는 네가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릴 거야.”


아이는 즉시 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됐어.” “괜찮아.” 하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을 계속해서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이 아이에게는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어릴 때는 부모가 매 순간 옆에 있어 주는 것이 당연했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을 거부하는 듯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 밀어낸다고 해서 마음까지 닫힌 것은 아니다. 그저 표현 방식이 달라졌을 뿐, 여전히 부모가 자신을 신경 써 주길 바라고 있다. 관심이 부담이 아닌 지지로 느껴질 수 있도록, 아이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말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때로는 조용히 옆에 앉아 함께 밥을 먹고, 가볍게 산책을 나가자고 권해보자. 억지로 끌어내려 하지 말고, 아이가 나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강요하면 아이는 더 숨고 싶어진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부모가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때때로 아이에게는 부모가 아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아이가 극단적인 표현을 자주 하거나, 감정이 너무 메말라 있다면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아이에게 상담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낫다. “네가 힘들다면, 우리가 함께 도움을 찾아볼 수도 있어.” 상담은 벌이 아니라, 아이를 위한 배려가 될 수 있다.


부모가 아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함께 있어줄 수는 있다.


때로는 해결책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존재 자체다. 부모가 해결사가 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가장 필요로 하는 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버팀목이다. 하지만 부모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부모의 한계를 인정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다. 아이가 극단적인 감정을 자주 표현하거나, 감정이 무뎌지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라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자. 아이에게 "네가 힘들다면, 우리가 함께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어."라고 이야기해 보자. 부모가 모든 답을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다만, 아이가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기다릴게. 너를 믿어.” 그 한마디가, 아이를 가장 크게 지켜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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