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TV를 보다 말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요즘 아이가 좀 달라진 것 같다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화가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가끔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내가 던진 농담에 피식 웃기도 하고, 문이 살짝 열려 있는 날도 많아졌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듯, 이제는 사춘기도 끝난 걸까?
그러나 그런 기대는 오래가지 않는다. 어제까지 잘 이야기하던 아이가, 오늘은 또 대답 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퇴근 후 저녁을 먹으며, “오늘 학교에서 뭐 재미있는 일 없었어?”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딱 한 마디다. “그냥.”
그냥. 이 짧은 단어 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감정,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 혹은 설명하기 어려운 혼란. 나는 안다. 사춘기는 끝난 게 아니라, 그저 잠시 소강상태였을 뿐이라는 것을.
사춘기, 절대 한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부모들은 흔히 사춘기를 하나의 단계로 생각한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과정.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사춘기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그리며, 때로는 후퇴하고 때로는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 날은 감정이 차분해 보이다가도, 다시 예민한 날이 찾아온다. 어른스럽게 행동하다가도, 다시 철없는 모습으로 돌아간다. 마치 끝난 듯 보이다가도, 다시 사소한 일로 문을 닫아걸고, “내버려 둬.”라고 말한다.
부모는 착각한다. “이제 괜찮아졌구나.” “다 지나갔구나.”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여전히 마음속에서는 많은 감정이 들끓고 있고, 아직도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 중에 있다.
부모의 조급함이 아이를 더 멀어지게 한다
어느 날 아이가 차분해지고, 대화도 늘어나면 부모는 안도한다. “이제 다 컸네.” 하지만 그런 말을 듣는 순간, 아이는 다시 마음의 문을 닫는다. 기대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제 괜찮겠지?”라는 부모의 기대는, 아이에게는 또 다른 압박이 된다. “이제는 더 이상 흔들리면 안 돼.”라는 부담감.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흔들린다.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혼란스럽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은 부모에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 스스로도 왜 그런지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어느 날은 “엄마, 나도 모르겠어.”라고 할 수도 있다. 어제까지 밝았던 아이가, 오늘은 방에서 나오지도 않을 수도 있다. 사춘기는 그런 것이다. 일정한 패턴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흐름을 가지고 있다.
사춘기의 끝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함께 지나가야 한다
부모는 기다린다. 언제쯤 아이가 예전처럼 돌아올까. 언제쯤 사춘기가 끝날까. 하지만 사춘기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사춘기가 끝났다고 단정 짓는 순간, 부모는 관심을 놓아버린다. “다 컸으니까 이제 혼자 잘 할 거야.” 하지만 사춘기가 끝난 이후에도, 아이는 여전히 불안할 수 있고, 고민이 많을 수 있다. 다만 표현 방식이 달라질 뿐이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이제 괜찮겠지”라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이 와도 나는 네 편이야.”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사춘기는 한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마치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과정처럼, 어느 날 갑자기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기온이 올라가며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사춘기가 끝나길 기다리기보다, 아이가 천천히 성장해 가는 그 시간을 함께 지나가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말할 것이다. “그때는 나도 참 힘들었어.”
그 말을 들을 때까지, 부모는 그저 묵묵히 옆에 있어 주면 된다. 그것이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가는 길을 함께 걷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