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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Oct 21. 2023

무덤 앞이라 괜찮다.

개운해.

지금의 남편이 결혼을 앞두고 아빠한테 인사를 가자고 제안해 주었다.

그러고 싶었던 찰나에 그런 제안을 받으니 내심 고마웠다.


마트에 들러 과일과 정종을 사고 일회용 접시와 종이컵도 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이 없이 새로운 가족이 될 사람과 준비해 보는 시간이었다.

평소처럼 무심하게 다녀오고 싶었다.

사실 직장인이 되고 정말 오랜만에 아빠한테 가는 날이었다.

동행인이 있으니 조금은 명랑하게 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때마침 하늘은 높고 파랗고 선명했다.

내가 간다고 해서 아빠가 신이 난 걸까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생각을 했다.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로 눈이 부시게 맑은 날이라 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리라..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가슴이 뭉근해졌다.

간질간질 거리는 마음이 이상해서 시끄러운 음악을 틀었다.

자꾸만 흐릿흐릿해지는 시야가 어색해서 창문을 열었다.

바람 사이로 애먼 손만 흔들거렸다.

아빠와는 애틋한 사이가 될 수 없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이별이라 그렇게 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니 크게 사무칠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요란스럽게 굴지 않아야 하는 게 합당한 것이라고 설득했다.



도착하자마자 터져버린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아빠의 무덤 앞에서 울어본 기억이 없던 터라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었다.

밑도 끝도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거두어야 하는데 방향을 잃은 채였다.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이었다.

정제되지 못한 채 흐트러지는 나를 붙잡기에는 이미 늦은 듯했다.

왜 수십 년간 잠잠했던 눈물댐이 하필이면 오늘 열렸을까.

왜 오늘 같은 날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걸까.

사정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나조차도 어색해서 참아 보려 하니 꺼이꺼이 소리만 커질 뿐이었다.

그저 주저앉아 눈물을 받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내어 놓지 못한 말들이 두서없이 흘러내렸다.

이고 지고 살던 무거운 마음들이 단숨에 툭하고 내려앉았다.

무언지도 모른 채 갖고 있던 것들이라 뭐라고 정의내릴 수도 없었다.

하아-

터져 나오는 숨에 고개가 숙여졌다.



등이 따뜻해졌다.

햇빛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뜨거운 포옹처럼 느껴졌다.

사는 동안 닿지 않던 아빠였지만 많이 의지하며 살았던 것 같다.

어디에도 없었지만 어디서나 나를 지켜주고 있던 존재로 늘 살고 계셨던 모양이다.

긴 포옹에 한참을 울고 나니 세수한 듯 개운해졌다.

아빠 앞이라 모든게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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