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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Apr 14. 2024

99번의 환생.

22화. 사랑과 집착 사이.

'우우우웅... 우우우웅.'

동방삭의 스마트폰 진동음이 울렸다.  수련이라고 표시된 화면을 본 그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떻게든 통화를 할 기회만 노렸던 그였지만 그녀가 먼저 전화를 해오자 손가락이 떨렸다.  

심호흡을 한 그가 버튼을 밀고선 스마트폰을 귀에 댔다.


-"네.  수련 씨."


"저녁은 드셨어요?"


-"아.... 저는 아직인데요."


혹시나 저녁을 함께 먹자는 얘기일까 가슴이 설레는 동방삭의 기대와는 달리 수련은 그의 대답에도 침묵이

길었다.  한참 뜸을 들인 후에야 수련 입을 열었다.  


"실은 어려운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 있나요?"


"우리 작품에 표절 제기가 있었데요.  편집장님이 일을 수습하겠지만 더 이상 우리의 협업은 불가한다네요."


그녀의 말을 듣는 동방삭은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와 동시에 그에게서 그녀를 빼앗아 가마에 태우고 말을 탄 채 신행에 올랐던 최장군의 서늘했던 눈빛이 떠올라 그는 심장이 쪼개지는

고통을 느꼈다.  귀에서 아득히 멀리 '여보세요.. 저기.... 제말 들리세요?'라고 외치는 수련의 목소리가

울려왔지만 그의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했다.


-'다시 또 시작되었구나.'






강원도 동강 인근에 위치한 최 씨 고택은 고려말 마지막 왕인 공민왕의 고모인 수련공주가 살던 곳이었다.  

고려말 위화도 회군으로 돌아온 이성계를 만나 집으로 돌아가던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이성계의 문객인

조영규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은 그날, 배재학은 군사를 이끌고 최장군의 자택을 급습했다.  그날 최장군의

저택은 불에 타버렸지만 살아남았던 그의 후손 중 크게 성공해서 대기업 총수가 된 최이재에 의해 고택은

복원되었고 자신의 혈통을 과시하고 싶었던 최 회장은 고택을 일반인에게 공개하여 고려말 충신인 최장군을 알리는데 열심이었다.  


최 회장은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해서 자신의 위에 소수만이 보이기 시작하자 넘치는 재물 더불어 그에

걸맞은 명예를 갖고자 했고 그런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비서실장은 정말 운 좋게도 그가 고려말 최장군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민간을 떠돌던 최 씨 고택의 설계도까지 입수하게 되자 최장군 복원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자신이 살던 곳인걸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부지만 만평에 가깝게 조성된 최 씨 고택의 입구를 들어설 때부터 탄성을 내지르는 수련을 보는 동방삭은

마음이 복잡했다.  


-'이곳에서 버려진 여인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던 자신을 알게 된다면.......'


마음이 심란한 동방삭과는 달리 수련은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쏘다니라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수련이 가만히 서있는 동방삭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자료조사하러 와놓고 제가 이렇네요.  하도 쏘다녔더니 목이 말라요.  우리 저기 카페로 가요.  예?"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 옆에 고택의 분위기를 연장해 놓은 찻집이 있었다.  수련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선 그의 옷소매를 잡고 그를 끌듯이 찻집으로 데려갔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켠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동방삭은 그녀가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 시선을 다급히 아래로 향했다.


"속이 다 시원하네요.  이제 우리 본업으로 돌아가볼까요?

그래서 수련공주는 최장군과 결혼한 뒤에 어떻게 살았나요?"


눈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수련의 눈동자에서 살아도 산 사람 같지 않게 날이 갈수록 생기를 잃어갔던

수련공주의 모습이 비춰보였다.


-'아......... 그렇게 십 수번을 거듭하고도 어찌 그리도 같았을까?'


창밖에 아름답게 피어 있는 저 연꽃들 사이로 연못가에 앉아서 눈물짓던 수련공주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최장군과 혼인한 수련공주는 장군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에게 그녀는 동방삭이 갖지 못하도록 그에게서 빼앗아 온 전리품에 불과했다.  그는 왜 자신이 그녀를 갖도록 은 애를 써야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막상 그녀를 얻은 뒤에는 그녀가 불편했다.  그녀를 정실부인으로 예의를 갖춰 대했지만 그녀가 살갑게 다가올 때마다 그는 매몰차 그녀를 쳐내곤 했다.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마음과는 다르게 그녀를 볼 때면 꿈속에서 보았던 그 남자의 눈빛이 떠올라 거부감이 들고 말았다.  


동방삭에게서 수련공주와 최장군의 이야기를 듣는 수련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휴.... 이건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거네요.

 동방삭은 그녀를 가질 수 없어서 불행하고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불행하고

 또 최장군은 사랑을 할 수 없어서 불행하네요.

 그런데 동방삭과 최장군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을 하는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동방삭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집착이요?"


"예.  제가 보기에 이건 사랑이 아니에요.  물론 제가 사랑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수련공주는 최장군을 사랑한 게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동방삭은 정말 그녀를 사랑해서 함께 하고 싶었던 걸까요?

제가 이 작품을 연재하면서 회를 거듭할 때마다 저는 그런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데 작중인물에게 그걸 직접 물어볼 수없잖아요."


그녀의 입에서 '집착'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동방삭은 그 오랜 시간을 그녀의 환생을 쫓았지만 그녀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단 한번도 그녀도 자신과 같은 생각인지를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순간 그는 혼란스러웠다.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이 정말 나의 일방적인 집착이 아닌

사랑이었을까?'

'와 함께 한다면 그녀는 행복할까?,

'내가 사랑하니까 그녀도 나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던건 아닐까?'


그는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수련을 바라보았다. 그순간

그의 앞에는 그 오랜시간 동안 그가 그토록 함께 하고 싶어했던 연계휼의 부인이던 수련도 서라벌의 연화공주도 그리고 고려말의 수련공주와 또 다른 시대를 살았던 수련들이 그를 마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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