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자화상을 그렸을 때,
내 손끝은 나를 닮지 못했다.
아무 감각도 없이 그어진 회색빛 선 두 줄.
그건 ‘나’라는 존재의 공백이었다.
그런데 지우고, 다시 그리고,
몰입한 끝에 도화지 위에 떠오른 나의 얼굴은
깊은 파랑의 물결 위에 황금빛이 번쩍이는 느낌이었다.
그건 색의 조합이 아니라
감각의 기억이자 정체성의 반짝임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 이게 나라는 사람의 색이구나.”
파랑은 깊이였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중심.
조용하지만 확실한 결.
삶을 오래 바라보며 가라앉은 감정들.
그리고 그 위에 떠오른
황금빛 노랑은 기쁨이었다.
가볍지만 진실한 감동,
내가 나를 알아볼 때 생기는 번쩍임.
그 두 색이 겹치면
청록이 된다.
청록은 나의 자기다움이다.
파랑은 내 안의 사유,
노랑은 내 안의 감각,
그리고 청록은
그 두 세계가 만나는 순간 피어나는
존재의 리듬이다.
자기다움이란
어떤 뚜렷한 모양이 아니다.
누구보다 화려하다거나,
누구보다 조용하다는 고정된 태도가 아니다.
그보다는
내 안의 깊이와 밝음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감각되는 한 가지 색.
청록은 한 사람의 삶이
‘내가 누구인지’를 넘어
‘어떻게 존재하고 싶은가’로 나아갈 때 비로소 완성되는 빛이다.
그건 찬란하지 않지만 분명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깊다.
조용히, 그리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자기답음의 색.
지금 내가 그리는 모든 선,
내가 입는 옷의 색,
내가 쓰는 말의 결,
심지어 내가 걸어가는 발걸음의 속도까지도
이 청록빛 감각을 닮고 싶다.
그건 내 안에 이미 존재하지만,
매일 다시 찾아야 하는 색.
바래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늘 되살릴 수 있는,
잊지 않아야 할 나의 본질.
자기다움은 청록빛 같다.
깊은 감정과 빛나는 감각이
조용히 공존하는 색.
내 안에 늘 있었고,
지금 이 순간 다시 떠오르는
나만의 색채 감각
청록의 나
정선미(미요)
깊은 감정 위로
빛나는 감각이 물결친다
나는 차분하지만
가볍지 않다
한 겹 한 겹
삶을 지나온 결이 있고
흔들려도
투명하게 남는 빛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청록으로 숨쉰다
그리고 그 색은 당신 안에서 어디쯤 살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