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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Oct 17. 2023

결국, 사랑이 우리를 구원한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 장으로 잘 알려진 신약성경 고린도 전서 13장의 결론이다. 또한 이 글의 큰 제목을 따 온 출처이기도 하다.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하면서 성경을 인용한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모든 종류의 사랑을 포괄하는 것이라고 믿어 1부의 마지막을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고린도 전서는 사도 바울이 분열과 무질서에 빠져 있던 고린도 교회를 위한 권면의 내용을 담은 편지이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무질서한 모습에는 우상 숭배와 함께 성적인 타락상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반드시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교회의 본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고린도 교회와 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은 기독교의 최고 가치인 사랑의 회복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주는 고언은 지금도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이는 기원후 54년 경의 고린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관계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특히 물질 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소외는 타인과의 단절된 관계를 가져온다.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적 경향이 이 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혼의 증가 또한 여권의 신장에 따른 의식의 변화나 개개인의 성격 차이 등이 원인일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부부 사이의 관계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균열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관계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예는 구약성경의 창세기, 아담과 하와의 낙원 추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뱀의 꾐에 선악과를 따먹은 인류의 조상은 조물주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 창조 섭리에서의 분리와 함께 금기를 어긴 결과로 눈뜬 자아는 자신과 타인의 분리를 느끼게 하고, 이런 분리감은 자신의 존재와 타인과 맺는 관계를 불안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상품화되고 분업화되는 데에서 소외의 원인을 찾았듯이, 그리고 에리히 프롬이 언급했듯이 우리의 영혼은 존재의 시작과 함께 낙원에서 쫓겨나 소외를 앞서 경험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 소유욕과 독점욕과 같이 성을 억압하는 요인을 농경사회 이래로 고착화된 제도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측면에는 영혼의 소외라는 불안한 상황에서 그 요인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태생적인 남녀의 분리가 사랑에 있어 소외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와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2장에 나오는, 예수가 계명을 묻는 율법학자에게 직접 한 말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계명일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이 말은 사랑이야말로 창조 섭리로부터, 그리고 사람들 서로가 분리된 불안, 즉 소외라는 현상을 극복할 길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웃이라는 말은 함께 살아가는 타인 전부를 지칭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사랑하듯이 타인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자신과 타인의 분리감을 극복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할 것이다. 남녀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끝으로 유명한 고린도 전서 13장의 일부를 옮기면서 이 글을 끝내고자 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리고 사랑 장의 끝을 이 글의 첫머리 인용 글로 마무리한다. 믿음과 소망은 올바르게 사랑을 하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한마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이성적인 사랑인 것이다. 타인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이나 모든 것을 참고 바라고 믿으며 견디라는 사도 바울의 사랑 모두가 지성에 의하여 경도되는 이성적 사랑을 일깨우는 것이다. 남녀의 사랑도 마찬가지, 사랑의 해답은 감정이 아니라 싹트는 감정에서 시작하여 이성으로 나아가는 것에 있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라고 성경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성경이 복음이듯이 결국, 사랑이 불안한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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