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싹지기 Mar 11. 2024

삶을 그윽하게 만드는 향기 같은...

Schubert의 Arpeggione Sonata


지금은 없는 무언가는 항상 동경의 대상이 된다. 지금은 없는 무언가는 그리움의 실체이기도 하다. 없음으로 해서 그리움도 생겨나고 동경도 하게 된다. 




아르페지오네,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


슈베르트의 유명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플레이어에 걸면, 난 잠시 '아르페지오네'란 악기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들게 된다. 생긴 모습도 제대로 모르던 악기, 현실에서는 사라져 버린 악기에 대한 감상에 젖어들도록 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현실적이면서도 추상적인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곡에서 내가 느끼는 가장 아름다운 감흥이기도 하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막연한 동경, 그리고 현실에서는 사라져 버려 실체를 느끼기 힘든 악기에 대한 쓸쓸한 느낌...


이런 느낌을 주는 아르페지오네라는 악기는 원래 1823년 빈에서 슈타우퍼 (G. Staufer)가 발명하였는데, 그가 부른 이 악기의 정식 명칭은 <기타 첼로>(Guitarre-Violoncell) 또는 <사랑의 기타>(Guitarre d'amour)였다. 기타처럼 8 자 모양의 생김새로 6개의 현이 있는 기타와 비슷하지만 기타를 활로 그어 소리 내 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악기였다. 연주는 무릎 사이에 놓고 활로 켜는 방식으로 하였고 그래서 '기타 비올론'이나 '활로 켜는 기타'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려졌다. 


기타와 같은 6줄(개방현 조율도 기타와 똑같은 E, A, D, G, B, E로 했다)로 이루어진 현악기이며, 24개의 지판(fret)도 있었다. 여러 개의 줄을 한꺼번에 누르기에 용이하여 화음을 울리기가 쉬웠고 소리가 기타처럼 부드럽고 친근했다고 한다. 활로 켜는 악기에 현이 6줄이라는 것과 지판이 있다는 것은 상당한 결점이 될 수밖에 없는데, 현의 장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지판이 찰현악기 특유의 비브라토 연주에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라는데...

기타와 첼로의 장점을 갖추어 한때 인기가 있었던 악기지만 그러한 점이 결국에는 결정적인 취약점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지 몇 년 안 되어 사라졌다. 그 이후에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란 작품명만으로 겨우 그 이름을 전하고 있다. 이 곡이 이 악기 이름을 가진 유일한 곡이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슈베르트를 일생 동안 괴롭힌 것은 20대 전후로 추정되는 매독 감염이었다. 26세가 되던 1823년에 그는 매독으로 인한 합병증과 그로 인한 우울증 같은 것을 앓을 정도로 건강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 해에 긴 병원생활을 했고, 치료도 고통스러웠다. 


아르페지오네가 발명된 이듬해인 1824년, 슈베르트의 나이는 27세였다. 그 해 5월부터 10월 초까지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지 백작 저택에 초대되어 머물렀다. 여기서 헝가리의 정취를 느끼면서, 백작의 딸과 사랑도 느끼면서 쾌적하게 생활하면서 정신적인 건강을 다소 회복하였다. 헝가리로부터 빈으로 돌아온 11월에 아르페지오네를 위해 3악장으로 구성된 소나타를 만들었다. 


이 곡의 악보가 정식으로 출판된 것은 그의 사후인 1871년이다. 그 당시부터 이미 아르페지오네는 자취를 감추고 있었기에 바이올린과 첼로 파트 악보가 같이 딸려 나왔다. 1886년에 슈베르트 전집이 처음 발간되면서 비로소 '피아노와 아르페지오네 혹은 첼로를 위한 소나타'라는 정식 제목을 달았다. 연주는 이미 첼로가 아르페지오네를 대신하게 된다. 하지만 원래 아르페지오네는 첼로보다 높은 음역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소나타에는 높은음을 풍성하게 쓰고 있어다. 그래서 오늘날의 첼로로 연주하려면 매우 높은 기교가 요구된다.

작품 전체에 낭만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우수의 정감과 함께 슈베르트의 작품에서 흔히 드러나는 비장함이 곳곳에 배어 있다. 삶의 특질을 기쁨이라는 기본 정서에 두고 누구에게난 찾아오는 그런 류의 우울한 정서를 교차시키는 양면적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기쁨의 감정이든 슬픔의 감정이든 이 곡에서 느낄 수 있는 공통의 정서는 서정적이고 따뜻한 느낌에 그윽한 삶의 향기가 풍겨지는 아름다움이다.


제1 악장
소나타 형식의 알레그로 모데라토이다. 피아노에 이어 곧 첼로가 우수를 머금은 제1주제를 노래하기 시작한다. 낭랑하게 울리는 첼로라는 저음악기의 독특한 음색이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그런 아름다움을 펼쳐준다. 제2주제는 좀 밝으며 전개부에서 자주 사용되지만 그러나 제1주제의 인상이 지배적이다. 코다는 미끄러지듯이 유연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픔을 간직한 첼로의 노래로 끝난다. 

제2 악장
아다지오는 첼로가 연주하는 칸타빌레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변주 형식의 부분이 전개된다. 마음껏 첼로의 저음으로 연주되는 이 가요 악장은 진주의 눈물방울로 5 선지에 적어 넣은 듯 눈부시게 영롱하다. 첼로뿐만 아니라 피아노도 그렇다. 슈베르트가 쓴 곡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제3 악장
알레그레토이며 론도 형식이다. 쾌활함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만 끝에서 다시 우수 속에 잠기는 첼로의 탄식은 깊은 인상을 아로새겨 준다.  



소장하면서 자주 듣는 명반들



Leonard Rose & Leonid Hambro

20세기 최고의 음악교육자이자 음악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던 레너드 로즈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연주를 담은 이 음반은, 이 곡을 가끔 접하면서도 약간은 무신경하게 스쳐 지나가기도 했던 내게는 혜성과도 같은 존재였다. 1955년에 LP로 발매되었던 음반이 Sony Classic이 2001년에 CD로 발매된 음반이다.


이 음반에 실린 그의 연주는 유달리 독특한 감성을 느끼게 하는 서정성이 존재한다. 특별한 서사적인 느낌이 없는 곡이고 진행이 비교적 빠른 연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에서는 슬픔의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격정적인 느낌 때문인지, 선 굵은 그의 연주 때문인지는 아직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고, 연주가 뛰어나니 마느니 하는 류의 음악적인 평은 뒤로 물려두고서라도 그의 연주는 수십 번을 들어도 심장을 뛰게 하는 신비로움이 묻어있다. 마치 비 오는 날 소주 생각이 나듯이...




Mstislav Rostropovich & Benjamin Britten


관현악에서 카라얀의 연주를 가장 평이하고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접하는 연주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내게는 있다. 그 고정관념은 곧 그 연주를 항상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버릇을 만든다. 첼로에 있어서는 로스크로포비치가 그 역할을 한다. 어쩌면 그 기준을 너무 높게 잡아서 때로는 불편한 구석도 만들지만, 그럼에도 기준을 높이 잡아두는 것은 때로 필요하다. 


감상자에게 연주를 평가하는 기준을 제공하는 역할은 그의 연주를 세월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는 안점감을 느끼게 한다. 언제나 세월의 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의 연주로 듣는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언제나 깊은 맛과 윤기 나는 현의 질감을 함께 느끼게 해 준다. 이 곡의 최고 명반으로 꼽힌다.




Guitar Version : John Williams & Australian Chamber Orchestra


항상 첼로로만 듣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의 기타 연주 버전은 전설로만 남은 악기 '아르페지오네'의 모습을 비록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상상하는 데에는  작은 도움을 주는 듯한 느낌이다. 다른 어떤 악기로의 편곡보다 기타 편곡은 이 곡에 잘 어울리면서도 색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역으로 이 곡이 기타의 맛을 느끼게 하는 데에 훌륭한 곡이라는 느낌까지 같이 드는 것을 보면 아르페지오네가 첼로와 기타의 중간쯤 되는 악기라는 설명이 실감이 나게 된다.




Viola Version : Richard Yongjae O'Neill & Jong Ho Park 

리처드 용재 오닐의 선 굵은 비올라 연주를 통해 처음 접한 비올라 버전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이다. 




Flute Version : Peter-Lukas Graf & Konrad Ragossnig

플루트로도 참 잘 어울린다. 플루트의 맑은 음색과 이 곡이 가장 잘 어울리는 점은 곡의 전반에서 풍겨 나오는 우아함이다. 플루트의 음색으로 이 곡을 들으면 참 편안하면서 우아한 느낌을 준다. 마치 윤기 나는 삶에 윤기를 더해주는 화룡점정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선 굵은 연주로 가슴 지릿하게 듣고 싶으면 역시 첼로 연주로 듣는 것이 잔잔하면서도 벅찬 감동을 주지만, 플루트 연주로 들으면 삶의 풍미가 더해지는 느낌이다. 같은 곡이지만 익숙해지면 각각의 버전이 주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함께 들어봅시다.



Mstislav Rostropovich & Benjamin Britten


Leonard Rose & Leonid Hambro (I. Allegro moderato)
Leonard Rose & Leonid Hambro (II. Adagio)
Leonard Rose & Leonid Hambro (III. Allegretto)



Peter-Lukas Graf & Konrad Ragossnig (I. Allegro moderato)
Peter-Lukas Graf & Konrad Ragossnig (II. Adagio)
Peter-Lukas Graf & Konrad Ragossnig (III. Allegretto)



John Williams & Australian Chamber Orchestra  (I. Allegro moderato)
John Williams & Australian Chamber Orchestra  (II. Adagio)
John Williams & Australian Chamber Orchestra (III. Allegretto)



Richard Yongjae O'Neill & DITTO Chamber Orchestra (MBC TV예술무대)


마지막으로... Arpeggione로 연주한 버전

Martin Jantzen & Flóra Fábri (2021. 6. 13)

* The Arpeggione is an original instrument from 1847 made by Georg Tiefenbruner in Munic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