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비워둔 무더위 속의 여름 텃밭, 그 끝에는...
너무 더웠던 지난여름에 텃밭 근처에도 가기 싫었던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사실 텃밭 소식뿐만 아니라 다른 글을 쓰는 의욕까지 꺾어 버린 것에 더위도 한몫을 했지만 그 와중에 찾아온 우울감도 한몫을 했다. 아직도 그 우울감의 원인을 정의하지는 못했다. 중년기에 으레 올만한 우울감인지 혹은 이른 퇴직을 하고서 지금의 일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 혼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인지를 단순히 내 머릿속의 생각만으로는 확인이 쉽지 않다. 쉬이 그 정체가 머릿속에서는 잡히지를 않는다.
하여튼 그 우울감과 올여름의 극악했던 더위는 비닐하우스뿐만 아니라 텃밭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게 했다. 사실 텃밭으로 가는 발길을 완전히 끊었던 것은 아니었다. 텃밭이 사무실 코앞에 있으니 웬만하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내려가 보게 된다. 그래도 텃밭에서 일을 할 의욕은 생기질 않았다. 지난여름의 더위는 그렇게 징했다. 지난 더위의 끝 무렵, 텃밭으로 가는 발길조차 며칠 동안을 끊은 후에 오랜만에 텃밭에 내려가보니 그 며칠 사이에 텃밭은 풀로 뒤덮여 버렸다. 그 더위로 인해 올해는 예초기로 잡초를 정리하는 작업을 작년보다는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추가되었던 것 같은데, 여전히 텃밭은 풀로 뒤덮여 황폐해진 느낌이다.
예년 같으면 8월 말부터 슬슬 가을 텃밭을 준비해야 되는데, 이 놈의 더위는 9월 말이 되도록 일을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할 만큼 맹렬했다. 9월 말이 되어서야 겨우 무성해진 잡초들을 예초기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치 밀림 속의 정글을 헤쳐 나가는 기분이었다.
올여름의 그 더위 속에서 그나마 텃밭에서 나를 끌어당긴 것 하나가 있다면 참외였다. 올여름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참외에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예상치 않았던 참외싹들이 무성하게 올라오는 바람에 참외를 두 박스는 따 먹었던 것 같다. 덕분에 여름에 참외 하나만은 식탁에서 끊이지를 않았다.
이제 참외는 가지가 말라서 마지막 수확을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정리해 보면 참외는 7월 초부터 수확을 시작해서 9월 중순까지 거의 세 달 동안 수확물을 안겨 주었다. 아직도 냉장고에는 참외가 몇 개 남아서 아침 식탁에 올라온다.
역시 올해도 알이 작다. 흙이 제대로 밭흙으로 자리 잡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친환경 토양살충제를 넣었는데도 땅강아지가 올해는 감자를 파먹었다. 작년에는 없던 현상이다.
어쨌든 누군가와 나눠 먹는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땅강아지는 파먹기만 할 뿐 남은 것을 먹는 데에 찝찝한 기분이 들게 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 상황은 본격적인 더위가 오기 전인 7월 초의 상황이다.
애호박 모양이 이상해
아마도, 추측컨대, 이 애호박은 어릴 때 따냈어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오이든 호박이든 아래에 나기 시작하는 것들은 몇 개 정도는 따 주라고 하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면 그냥 두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애호박은 적절한 위치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만 계속 뚱뚱하게 커지고 위의 것들은 성장이 더딘 느낌이다. 일찍 따냈으면 위의 것이라도 모양새가 좋게, 좀 더 빨리 성장을 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튼 좀 더 경험이 필요하다. 사실 농사의 고수라는 분들, 직업 농부인 분들도 처음에는 이런 시행착오를 겪고서 오랫동안 쌓인 경험이 그분들을 고수로 만들었을 것이다. 농사는 쉬운 일은 아니다. 텃밭은 결국 아마추어의 영역인지라 어쩌면 좀 더 긴 시간 동안의 경험이 축적되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모든 호박은 그냥 두면 노랗게 늙은 호박의 색과 질감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리가 흔히 아는 맷돌호박의 모양과는 거리가 멀고 맛도 살짝 다르지만 모양이 뚱뚱해서 그냥 줄기에 남겨둔 애호박의 늙은 모습은 게으른 농부나 확인할 수 있는 광경이다.
여름상추 모종은 발아율이 낮네...^^;; 결국 여름상추는 망했다.
대략 난감이다. 상추모종은 발아율이 너무 좋아서 걱정이었는데 여름 상추는 발아율이 과히 좋지는 않다. 아니 이번에 너무 상추씨앗을 조금 뿌렸나 싶기도 하다. 실제로는 발아율이 이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상추씨앗을 너무 세세히 숫자를 헤아려서 뿌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넉넉하게 뿌리고 솎아내는 것이 맞는 일일런지도 몰랐다. 다음번에 그렇게 해봐야겠다. 어쨌든 여름 상추는 완전 실패였다. 맛도 못 봤다.
옥수수를 추가로 심기는 했는데, 글쎄...
밭 상태가 영 시원찮다. 적절한 공간이 없어서 지금 흙을 채우고 있는 틀밭 옆에 옥수수 모종을 심었다. 거름을 많이 섞어 넣기는 했지만 잘 자랄지는 하늘에 맡긴다. 그냥 한번 해본다. 큰 기대 없이... 옥수수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무 땅에나 잘 자라는 것은 없다. 이미 그 땅에는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오래전부터 가득하게 있었을 것이다. 식물이 좋아하는 그 무언가가... 하지만 논으로 사용했던 땅은 대략 난감이다. 그동안 비료와 농약 듬뿍 주면서 벼를 키웠을 것이니 땅에는 아직 충분한 토심이 충전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필요한 땅이다. 그래서 열매를 주든 안 주든 간에 이것저것 심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옥수수는 결국 하나도 못 따고 다 성장을 마치기 전에 죽어 버렸다. 아마도 단단한 논 땀에서 뿌리가 썩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섣부른 추측이다. 비가 적당히 왔으면 오히려 더 잘 자랐을 수도 있는데 올여름엔 비가 제법 온 편이어서 땅이 단단한 텃밭 주변에는 늘 물이 흥건했다. 그 덕에 뿌리가 썩어 나간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공심채의 엄청난 생장력을 확인하다.
공심채는 적당히 자라면 잘라먹고서 일주일 만에 다시 수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엄청난 생장력에 따라갈 만큼 공심채를 맛있게 요리할 수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동남아를 자주 다니던 여행 마니아들은 공심채가 맛있는 채소라고 기억을 하는데, 나는 현지에서 먹어본 기억이 없다. 주로 내가 먹어보고 기억에 남는 음식들은 집에 와서 다시 재현해 보곤 하는 욕심이 내겐 있는데, 공심채는 경험조차 없으니 소문만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운 채소였다. 일단은 잘 자란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며칠 버려두었던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가 보고는 깜짝 놀랐다. 공심채가 엄청나게 자라서 밭 주변을 덮어나가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내가 여기를 몇 주 못 들어왔었나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공심채는 그 정도로 엄청난, 무서운 생장을 한다. 꽃이 필 때까지 놔두어 볼까나...
조금 늦었지만 다시 여름 상추에 도전한다.
원래 봄에 파종해야 되는 아스파라거스이지만 가을에도 파종한다기에 비어 있는 밭 하나에 씨앗을 뿌려 놓았다. 가을에 올라오려나, 아니면 내년 봄에나 올라오려나 모르겠다. 작년에 모종으로 사서 옆에 심어놓은 아스파라거스는 올해 새싹을 수확하지 않고 두어서 뿌리가 제법 성장했다. 아마도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수확을 할 수 있을 것이니 지금 뿌린 이 아스파라거스는 아마도 두 해 후에나 봄을 기대해야 될 것이다.
무는 파종 시기가 조금 늦었지만(어차피 다른 것도 파종 시기는 맞지 않다.), 그래도 한번 뿌려 보았다. 김장철까지 제대로 자라지는 않겠지만 그냥 자란 만큼만 수확을 하면 될 것이다. 무는 싹이 참 잘 난다. 심은 지 사흘 만에 벌써 싹이 보이기 시작한다.
풀이 자라고 있는 농지의 나머지 부분을 정리하고 성토를 했다. 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빈 농지는 전체의 2/3 정도 되는 넓이이다. 밭흙으로 성토를 하고 텃밭 확장과 나무 심을 자리를 만든다는 생각은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생각이었지만 최근에 흙값이 워낙 비싸서 엄두를 내지를 못했다. 오랜만에 밭흙으로 쓰기에 적당한 흙이 주위에서 나왔다. 1년을 넘게 기다린 것 같다. 그래도 제값에 흙이 나오기는 하는구나 싶어서 급히 작업 일정을 잡았다. 덕분에 올 겨울은 깔끔한 상태의 농지를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내년 봄이 와서 다시 풀이 올라오기 전에 무언가를 계획하고 그려 넣어야 될 텐데, 혹은 늦어도 내년 여름이 오기 전에 절반 이상의 땅을 풀을 관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된다. 그게 올 가을과 겨울의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