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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이로운 Jul 27. 2020

사랑은 샹송을 남기고

벌써 19년 전이다.

당시 팝 음악계와 힙합계를 주름잡던 네 명의 가수(릴 킴, 핑크, 마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모여 끈적끈적하고, 섹시한 노래 한 곡을 발표했다. 제목은 <Lady Marmalade>.


당시 초딩이었던 나는 지금은 사라진 MTV 채널에서 그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볼 때마다 가슴을 졸이고, 방 안에 있는 가족들이 거실로 나올까 노심초사했다. 뮤직비디오 속 의상도 너무 노출이 심했고, 특히 가슴과 은밀한 부분을 만지작거리는 안무가 어렸던 내가 보기엔 굉장히 야하고 파격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노래는 1974년, 미국 흑인 여성그룹 LaBelle(라벨)이 발표한 곡으로 발매 당시에 빌보드 1위를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2001년 리메이크된 <Lady Marmalade> 역시 전 세계 음악 차트를 휩쓸며 그 해를 대표하는 팝송으로 남아있다.


나 역시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한글 발음을 제멋대로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춘부가 처음 본 남자에게 '나랑 오늘 한 번 할래?'라고 제안하는 내용이라 충격받긴 했지만ㅜㅜ


https://www.youtube.com/watch?v=RQa7SvVCdZk

Christina Aguilera, Lil' Kim, Mya, Pink - Lady Marmalade


가사 속 매춘부와 남자가 처음 만난 곳은 물랑루즈, 이곳은 실제로 존재하는 곳으로 프랑스 파리의 카바레 이름이다. 1889년에 개장해 지금까지 운영될 정도로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데 노래 속 남녀가 물랑루즈에서 만나 뜨밤을 보낸 것처럼 실제 여기에서 만나 뜨거운 사랑을 한 여인이 있다. 샹송의 대명사, 샹송의 여왕, 프랑스 최고의 샹송 가수 등 온갖 좋은 타이틀은 지 혼자 모두 독차지한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다.


프랑스 샹송은 11세기부터 시작되어 때로는 음유시인들에 의해 불려지기도 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교회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고 인기를 얻게 된 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에디트 피아프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부터다.


https://www.youtube.com/watch?v=vXSObLlk70U

에디트 피아프의 대표곡 <빠담 빠담>


150cm도 되지 않은 작은 키에 여리여리한 몸매를 가졌던 에디트 피아프는 무대에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꾀꼬리 같이 청아하고 아름다운 음색은 아니지만 우렁차고 애절하고, 때로는 절규하는 듯한 그녀만의 창법과 목소리는 당시 전쟁으로 지쳐있던 군인들과 시민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첫 술에 배부 룰 순 없다지만 그녀는 첫 음반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지금으로 치면 겁나 핫플이었던 파리 물랑루즈에서 공연도 한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남친도 만들었다. 물랑루즈에 오디션을 보러 온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인데 이브 몽탕이라는 명품틱한 이름을 가진 이 남자는 188cm의 명품 같은 키에, 얼굴도 명품 같았다. 게다가 나이도 6살이나 어렸다. (부럽다..ㅠㅠ)


이브 몽탕 젊은 시절


당대 최고의 샹송 가수였던 에디트 피아프는 남친을 위해 무대에서 필요한 노래 스킬, 쇼맨쉽 등을 가르쳐주었고, 이브 몽탕은 잘 나가는 여친의 가르침과 인맥 덕에 가수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특히 에디트 피아프는 아는 영화감독을 찾아가 영화배우로 데뷔까지 시키는데 이를 발판으로 이브 몽탕은 1991년 사망할 때까지 가수뿐 아니라 영화배우로서 이름을 날렸다. 사랑은 영감의 원천이라는 말이 있듯 에디트 피아프도 이브 몽탕 덕에 샹송 역사를 장식할 노래를 만들게 된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곡, 'La Vie En Rose(라비앙로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zeLynj1GYM

Edith Piaf - La vie en rose


아마 에디트 피아프를 모르는 사람도 음악을 들으면 '아~ 이 노래구나!' 할 정도로 유명한 곡인데 15분 만에 쓴 노래치고는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아 '샹송'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이 되었다. 광고, 드라마, 영화 등에 수도 없이 삽입된 건 물론이고, 루이 암스트롱이 재즈 버전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fNWAboguJQ

Louis Armstrong - La Vie En Rose


에디트 피아프 덕에 가수는 물론 영화배우로 이름을 날린 이브 몽탕. 그리고 이브 몽탕 덕에 'La Vie En Rose(라비앙로즈)'라는 명곡을 남긴 에디트 피아프.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쉽게도 둘은 오래가지 못했다. 함께 영화를 찍은 후, 헤어졌다고 하는데 누군가는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이브 몽탕이 에디트 피아프를 버렸다고 하고 반대로 이브 몽탕은 연인 사이 다툼이 이별로까지 이어졌다고 인터뷰했다.


이후,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을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브 몽탕은 수많은 여자들과 사랑하며 영화배우로서 행복한 삶을 살다 떠났지만 에디트 피아프는 늘 고단한 사랑을 하다 47세의 나이에 일찍 세상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마지막 사랑은 프랑스 복싱 챔피언, 마르셀 세르당이었다. 자식이 셋이나 있고 에디트 피아프보다 나이도 한참 어려 주변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두 사람은 꿋꿋이 사랑을 이어나갔다. 허나 결국 그 사랑도 파국을 맞게 된다. 뉴욕에 있는 에디트 피아프를 보러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던 마르셀 세르당이 추락사고로 죽게 된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2SnvSoPJzlU

Edith Piaf - Hymne A L'amour(사랑의 찬가)


'Hymne A L'amour(사랑의 찬가)'라는 노래는 에디트 피아프가 연인을 떠나보낸 후 만든 곡으로 이 노래가 발표되고 정확히 13년 후, 그녀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 여가수로 살아온 것에 비하면 그녀의 마지막은 초라하고, 보잘것 없었다. 특히 에디트 피아프는 마지막까지 비행기 사고로 잃은 연인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신은 그녀에게 음악이란 재능을 주는 대신, 사랑을 빼앗아간 게 아닐까? 남들한테 쉽기만 한 사랑이 왜 그토록 그녀에겐 어렵기만 했는지 안타깝다. 만약 그녀가 행복한 사랑만 했다면 우리가 지금 듣는 샹송도 분위기가 훨씬 더 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https://brunch.co.kr/@missko94/73


https://brunch.co.kr/@missko9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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