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올 Nov 05. 2024

100-2 "당신 웃기는 짬뽕이야!"

-재치 있거나 다정한 말 한마디의 힘(건망증은 슬퍼요)


 재치가 있거나 다정한 말 한마디는 큰 힘을 가진다.     

“당신, 웃기는 짬뽕이야.”     

나는 매우 산만한 편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도 등교할 때면 한 번에 가는 법이 없었더라고 까지 하면 너무 과장이지만 신발주머니, 미술 준비물 등을 종종 빼놓고 가기 일쑤여서 가던 하나 길을 돌아가야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네가 오늘 웬일로 한 번에 그냥 했다. “

하시며 웃으셨다. 




항상 물건을 쓰고 제자리에 두면 찾을 일이 없으니 그렇게 하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래서였는지 아님. 아직 뇌가 비교적 싱싱해서였는지 어릴 적엔 그나마 물건을 찾아 헤매는 일은 드물었다. 대부분 물건이 제자리에 있었으므로.     




  결혼 후 살림을 하면서 나는 물건을 찾아 헤매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폐물로 받은 세트도 너무 잘 숨겨둬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부엌에 뭔가를 가지러 갔는데 생각이 안 나서 방으로 다시 들어가면 생각이 났다. 그래도 이렇게 정신이 없으면서도 아이 셋을 키우면서 천 기저귀를 삶아 썼는데 한 번도 태운 적이 없다. 자수하자면 행주는 태운 적이 있다. 첫애를 키울 때 점심으로 먹으려고 미역국을 올려놓고 잠이 들어 난리가 난 적이 한 번 있었다. 연기가 베란다 밖으로 새어 나가 동네 분들이 119에 신고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극 사건은 건망증이라기보단 육아의 피곤함이니 성격이 좀 다르긴 하다.      


  나의 건망증이 가장 미워질 때는 외출을 하려고 열쇠를 찾아야 할 때였다. 특히나 더운 여름에 열쇠를 찾아 헤매 대보면 출발하기 전에 진이 다 빠졌다. 지금은 시골에 사는지 보니 아예 잠금장치를 안 하고 살아서 그냥 문만 닫고 다닌다. 그래서 집 열쇠를 찾아 헤매는 일은 없다. 도시에 살 때 그렇게 열쇠 찾아 삼마리 끝에 결국 나는 번호키로 바꿨다. 물론 그 이후로 열쇠와의 전쟁은 사라졌다. 


  자동차키 역시 수시로 찾아야 했고 차 안에 키를 두고 잠구는 일도 예사였다. 열쇠 따는 서비스는 늘 5회를 꽉 채웠다. 나는 세탁소 옷걸이로 아반떼와 EF소나타의 문을 여는 도사가 되었다. 몇 번인 가는 다른 사람의 잠긴 문을 열어준 적도 있다. 자동차 열쇠에 얽힌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볼일 보러 다녀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물건 몇 가지를 사가지고 집에 온 다음날이었다. 외출을 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아무리 찾아도 카 열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 지금은 수동 열쇠 대신 자동키를 쓰지만 나는 여전히 열쇠 찾아 삼만리이다.


  사단은 항상 규칙을 어겼을 때 일어난다. 하도 정신이 없는 편이라 정해진 장소는 아니라도 대충 몇 군데 잘 두는 곳이 정해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곳저곳 다 찾아봐도 없었다. 기억을 되돌려보았지만 차를 타고 왔으니 분명히 열쇠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 

주차장에 가서 유리창에 머리를 바짝 대고 차 안을 봐도 열쇠가 없었다. 진짜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 뛸일이었다. 결국 그날 외출은 못하고 말았다. 다음날 열쇠를 찾았다. 어디서? 냉장고 안에서. 슈퍼에서 물건을 사가지고 와 봉투채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그 안에 열쇠가 들어있었다. 

그때가 막 마흔을 넘긴 나이였다. 어이가 없었다. 냉장고 안에서 TV리모컨이랑 전화기를 넣어 뒀다는 이야기는 들었더도 차키를 냉장고에 넣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는데. 한심했다.  


   

  지난 여름, 마닐라와 대마도를 다녀올 일이 있었다. 여권이 있어야 했다. 2년 전인가 여권 만기가 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갱신을 해두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집을 탈탈 털다시피 했는데 없다. 갱신이 만료된 여권을 얌전히 그 자리에 있는데 새 여권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결국 다시 여권을 만들어야 했다. 건망증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질경이다. 


  12월에  학교에서 베트남을 간다고 여권을 보내라 했다. 미치겠다. 또 없다. 옷장 서랍. 책꽂이 사이사이, 가방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흘렀을까 딴 물건을 찾다가 TV서랍장을 열었는데 거기 있었다. 찾았으니 다행이긴 했는데 나는 내가 또 한심했다. 얼른 꺼내 여권가방에 넣어두고 옷걸이에 걸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아예 깜깜할 정도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건을 두고 잊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 대충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나는 아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차 열쇠를 얼마나 잘 두었는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잘 보이라고 일부러 큰 인형까지 달아 놓았는데 소용이 없었다. 결굴 한 달 정도 신랑이 가지고 있는 예비키를 사용했다. 그러다 내 열쇠를 찾았다. 그런데 그날 바로 신랑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말 너무 슬프다. 자꾸 반복되는 이 현상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나는 웬만하면 열쇠를 차에 두고 내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마당에 차를 주차하니 잠그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에 그렇게 한다.   

  

  며칠 전에 남편이 자기 키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당신 키요? 나 모르는데요.”

“당신이 썼잖아.”

“......”     

만약 남편이 정신을 어디에 두고 사냐. 정신 좀 차려라. 얼른 찾아내라. 이랬다면 나는 또 슬펐을 것이다. 그리고 열쇠를 찾는다고 또 집안을 다 뒤져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나에게 말했다.




“당신, 웃기는 짬뽕이야.”

이 말 한마디로 내 마음은 편해졌다. 물론 다음날 열쇠의 행방은 알 수 있었다.     

그날 남편의 저 한마디가 나를 슬프지 않게 했고 같이 웃게 했다.

화를 내거나 짜증 내지 않고 저렇게 말해준 남편이 너무 고마웠다.


  여보 나는 앞으로도 내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늘 건망증에 시달릴 거예요. 그럴 때 너무 화내지 말고 저렇게 웃으며 말해주면 좋겠어요.

내가 당신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는 거 알지요?     

“당신, 웃기는 짬뽕이야.”

나를 살린 한마디.  앞으로도 부탁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