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에 깨진 감정의 그릇이 많다는 것은
엄마와 손절을 한 시기가 코로나 시작 전 초가을 쯤이었으니 4년 정도 되었다.
다른 자잘한 이유들도 있지만 가장 큰 계기는 남동생이 밀린 카드값, 사고쳐서 갚아야 할 돈이 있는데 그걸 나에게 갚으라고 한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한 태도로, 너에게 그럴 의무가 있다는 듯이.
여기서 내가 겪었던 자질구레한 우리 가족간의 돈 이야기를 다 쓸 수는 없지만, 한가지만 짚자면 나는 이미 그 전에 동생에게 몇 백 정도 도와준 상태였다. 동생 말로는 빌려달라고 한 거였지만 솔직히 나로서는 못 받는다 생각하고, 가족이니까 도와준다 생각하고 돈을 보냈다. 내 예상이 틀렸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동생은 빌려달라고 했던 돈을 약속한 날짜에 갚지 않았고 나는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금액을 넘어선 순간부터 돈 빌려달라는 동생의 연락을 싹 무시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엄마한테 연락이 온 것이다. 니 동생 빚 좀 니가 대신 갚으라고. 동생이 엄마한테 뭐라 찡찡거려서 엄마가 나에게 이러는 것인지, 그냥 동생이 돈 때문에 답답해서 이야기만 했는데 엄마가 나서서 이러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걔랑 연년생인 내가, 고작 1살 많은 내가, 30대 중반인 동생의 돈을 나서서 갚아주라는 엄마의 말이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처음 엄마와의 연락을 끊고 나서 깨달은 것이, 딱 엄마와만 연락을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른 가족들과는 인연을 이어가보려 했었다, 처음엔.
그러나 아빠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다시 엄마 이야기가 나왔고, 동생과 연락을 주고 받다가 다시 엄마 얘기가 나왔고, 그래도 가족인데 엄마와 이야기를 잘 좀 해보라는 말에 나름 단단히 마음을 먹고 엄마와 통화를 하다 보면, 결국 딸인 내가 나쁜 년이라서 상황이 이렇다는 것이라는 걸로 모든 문제가 귀결되고 말았다.
너만 참으면 되는데, 왜 유난이야.
나는 뭐, 니가 겪은 거 안 겪은 줄 알아?.
다들 그러고 살아, 힘든 티 좀 그만 내.
결국 모든 가족들과 연락을 끊게 되고 말았다. 나를 가장 불행하게 하는 건 엄마였지만, '엄마만 딱 집어내서' 연락을 끊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원가족들과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말이, 엄마의 "다들 그러고 산다." 였다. 그 말은, 다들 불행하게 살고 있으니, 아니 불행해도 꾹 참고 살고 있으니 너도 행복해지려고 유난 떨지 말아라, 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아주 막 거대한 행복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냥 눈 앞의 작은 불행들을 조금씩 소거해보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예를 들면 화장실을 더럽게 쓰는 남동생에게 볼일을 보면, 변기에 잔여물이 안 튀게 하던가, 물을 뿌리라는 그런 사소한. 아빠에게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지 말라거나, 제발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지 말아달라고 하는 기본적인.
가족이라도 말라붙은, 잘 지워지지 않는 남의 분비물을 닦는 건 불쾌한 일이었으니까.
가족이라도 길에서 함부로 담배를 뻑뻑 피우는 사람과 함께 걷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으니까.
엄마는 내가 남동생이나 아빠에게 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위생에 관한 지적마저도 "다들 이러고 산다, 좀 참아라."며 예민한 사람 취급을 했다. 남동생이나 아빠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나는 지칠 때도 있었지만 계속 그걸 지적했고.
그럴 때마다 남동생이나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나를 꾸짖었다.
그러다 보니 주요 갈등은 엄마와 나 사이에 많이 발생했다. 사실 진짜 문제는 남동생과 아빠에게 있었는데도. 그러면 어이없게도, 아빠나 남동생이 나에게 "엄마랑 그만 좀 싸워라." 하고 웃으며 중재를 하는 것처럼 말할 때가 있었다. 왜 그렇게 두 사람은 맨날 싸우냐면서.
혈압이 차올랐다.
아빠가 길에서 담배를 안 피우셨으면, 베란다에서 담배를 안 피우셨으면, 제가 이럴 일이 없었을 텐데요. OO이, 니가 오줌 누고 샤워기로 물 한번만 뿌렸어도 내가 이럴 일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아빠와 남동생을 무조건적으로 보호하는 엄마 때문에 나는 날이 설 수밖에 없었고, 우리의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쨍그랑!"
내가 보기에, 내 남자친구는 1년에 그릇을 10개 이상 깨뜨리는 것 같았다. 요리하다가 깨뜨린 경우도 있었고, 어느날 보니 싱크대에 깨진 컵이 놓여 있는 것도 꽤 여러 번 보았다.
놀라지 마시라(아무도 안 놀라겠지만), 나는 10년 넘게 자취 하면서 그릇이나 컵을 깬 것이 3개도 안 될 것이다.
남자친구도 자취한 기간이 나와 비슷한데, 거칠게 각자가 깨뜨린 그릇의 수를 데이터 내보자면 남자친구가 100개 쯤, 나는 3개 정도 될 것이다. 10년 자취하면서 그릇 3개 깨뜨린 내가 잘했다는 게 아니다.
내가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 것이, 그릇을 많이 안 깨뜨린 비결이다. 밀키트를 후라이팬에 볶거나, 밀키트를 다 때려넣고 끓이는 정도, 계란 후라이와 라면을 끓이는 정도가 내 요리의 전부다. 그것도 자주 안 한다. 그에 비해 남자친구는 밥과 요리를 자주 해 먹는 사람이다. 내가 깨뜨린 그릇이 얼마 없는 이유는 요리를 그만큼 거의 안 했기 때문이다. 내 남자친구가 나에 비해 깨뜨린 그릇의 수가 월등히 많은 이유는, 나보다 더 요리와 가까웠고 애썼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엄마와 내가 주고 받은 상처가 많은 것이 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리를 하다 보면 많은 그릇들이 나오게 되고, 많은 설거지가 나오게 되고, 치우고 어쩌고 하다 보면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리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쓰다 보면 깨지는 그릇 수도 그만큼 많아지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마치 요리를 자주 하다 보면 그릇을 자주 깨뜨리게 되는 것처럼, 내가 엄마에게 기대하고 노력한 시간과 에너지가 많았던 만큼 내 기대감이 깨지고 부서지면서 분노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내가 아빠와 남동생에게 한 잔소리와 대립의 순간들조차 단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엄마를 위한 것일 때가 많았으니까.
내가 아빠나 남동생에게 덜 분노하고 엄마에게 더 분노하는 것, 그리고 엄마가 아빠나 남동생을 감싸고 나에게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것. 아마도 가족 안에서 엄마와 내가 서로에게 더 원하는 것이 많아서였던 것 같다. 나는 엄마가 가정 내에서 희생하시는 게 많은 만큼, 남동생과 아빠에게 좀 더 당당하길 바랐고, 엄마는 내가 전통적 가치관의 여성답게 남동생과 아빠에게 좀 더 고분고분하길 바랐다. 서로 아주 간절히, 아주 자주.
더 가까운 것 같고, 더 기대하는 게 많으니 날이 서고, 대립하고, 그렇게 우리 사이에 놓인 100개의 그릇들이 깨진 것 같다.
아마도 아빠와 나 사이, 그리고 동생과 나 사이에 꺠진 그릇은 3개 정도겠지.
아마 엄마와 더이상 연락을 주고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깨진 감정의 그릇이 많다는 것, 감정의 골이 깊다는 것, 그건 결국 우리가 뜨겁게 노력했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지금 이 상태에서 더는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