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딸은, 오랫동안 참은 딸이다
얼마 전, MBC 카운슬링 예능 '도망쳐' 4화에서 나르시시스트 엄마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사연자는 누나와 자신 모두 해외의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여 부모님의 자랑거리였다. 특히 그의 누나는 부모님과도 무척 살갑게 지내며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대기업에 취업해 직장 생활도 뚝딱 잘 해내고 있는, 그야말로 엄친딸의 표본 같은 사람이었다.
문제가 생긴 건, 그런 누나가 결혼을 하겠다고 함께 온 남자 때문이었다.
누나가 데려온 남자는 학벌이 좋지 않은 데다, 아버지의 세탁소를 함께 운영하는 등 경제적 능력이 좋지 않았고 아이까지 있는 홀아비인 남자였다. 이혼을 한 것인지, 미혼부가 된 것인지는 나오지 않았다. 뭐, 솔직히 타인인 내가 봐도 옳다구나 하고 허락할 결혼상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당연히 사연자의 부모도 반대했고, 누나는 그 남자와 꼭 결혼을 하겠다며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거세게 반항했다.
그전까지 누나는 단 한 번도 부모님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는 딸이었다고 한다.
부모님 중에서도 어머니가 특히 분노하며 그런 딸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불쾌해했다. 급기야 그 남자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세탁소에 찾아가 자신의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는지, 당신의 급 떨어지는 아들에게 내 딸을 절대 줄 수 없으니 포기하라고 인격적인 무시를 해가며 결혼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누나는 계속해서 그 사람이랑 못 헤어진다고, 포기 못 한다고 맞섰다. 부모님은 엄마 아빠 죽는 꼴 보고 싶냐,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러느냐, 이럴 거면 키워준 값, 유학 보낸 값 다 토해내라며 정신 차리라고 소리 지르며 반대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누나와 남자친구는 갈등이 깊어지다가 결국 헤어지고 만다.
그 과정에서 가족에게 크게 배신감을 느낀 누나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어머니와 다투다 집을 나갔고, 2년째 부모님과 연락을 하지 않고 절연한 상태라고 했다.
나는 그 사연을 들으면서 그 누나라는 사람이 사실은 이 가족 구성 내에서 연기를 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부모님의 의견이나 가이드가 마음에 안 들어도 착한 딸이고자, 두 분을 만족시켜드리고 싶어서 많이 참고 참은 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
만약 살아오면서 부모님의 모든 것이 다 좋고 괜찮았다면 결혼상대를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칼같이 연을 끊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의 결혼 반대는, 이때까지 참고 참았던 그녀의 인내심을 폭발하게 만든 행동이었을 것이다.
사건 전, 사연자의 어머니는 가족 미래 계획서를 세웠다며 온 가족이 모인 날, 읊기 시작한다.
1. 인아, 인호에게 알맞은 배우자 찾기
2. 향후 미래 가족 구성원 손자교육을 위한 주거지 설정
3. 가족 결속력을 위한 가족 모임 필수 참석
별 관심이 없어하는 아들인 사연자에게 부모님은 말한다.
누나 반만 닮으라고. 누나가 엄마 아빠 옆에서 챙기는 거 보고 드는 생각 없냐고.
사연자도 말한다. 자신은 부모님과 가끔 삐걱댈 때도 있었지만 자신과 달리 누나는 항상 부모님께 살가웠다고.
과연 사연자의 누나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매 순간 만족스럽고 행복했을까? 부모님들은 자신들이 자식을 만족스럽게 잘 키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녀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진로나 취업을 결정하는 과정, 뭐가 됐든 중요한 어떤 지점들에서 자신이 납득하기 힘든 부모님의 어떤 결정들을 말없이 수용해 드렸을 것이다.
착한 딸이고 싶어서. 부모님의 만족하는 모습이 내 행복 같기도 해서.
반발하고 싶던 적도 있었겠지만 참고 참았을 것이다. 내가 참고 배려한 만큼, 언젠가 부모님도 나에게 배려를 해주실 거라 믿고. 내 노력이 보상받을 거라 믿고.
하지만 그녀가 틀렸다.
부모님께 양보할수록, 부모님은 더 까다롭게 굴었을 것이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수단을 통해 집과, 가족과 멀어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누나가 부모님과 절연을 하고 나서, 사연자에게 집착하는 엄마의 연락은 시도 때도 없이 온다. 홈쇼핑에 뭐가 나왔으니 니가 대신 주문해달라거나, 갑자기 전화와서는 오늘 점심은 나와 먹어달라거나. 강황이 눈에 좋다는데 지금 좀 주문해달라거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마의 요구는 끝이 없다. 업무 시간에도, 전호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수십 통의 연락이 오는 날도 있다. 엄마의 막무가내 행동으로 난처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일하는 도중에 이렇게 막무가내로 굴면 어쩌냐는 말에, 엄마가 그 정도도 요구하면 안 되냐고 닦달한다.
과연, 사연자의 엄마가 사연자에게만, 갑자기 그렇게 했을까? 사연자가 겪은 일은 장녀였던 그의 누나가 그동안 다 감당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하소연한다고 해도 이 일을 해결해 줄 사람이 없으니 그냥 감내했을 것이다. 이게 막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이 아닌데, 그걸 내가 일일이 해주자면 그 번거로움이 끝도 없는 일이다.
나 역시 사연자의 누나처럼, 절연 전 온갖 잡다한 부탁을 들어드리던 장녀였고, 거절하자니 나쁜 딸, 냉정한 딸이 되는 것 같아서 저런 홈쇼핑 주문 부탁이나 온라인 쇼핑 주문 등을 일일이 대신해주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별 거 아닌데 참 귀찮다.
또 어떤 어머니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내가 키워준 게 있는데 별 것도 아닌 걸 귀찮아한다고. 그런데 그걸 꼭, 내가 일하고 있을 때인 걸 모르지 않으면서 자신이 까먹을지 모르니 얼른 주문해 달라고 아이처럼 징징거리는 게 과연 별 것이 아닐까?
이게 매일매일 쌓이면 나는 그만큼 업무 집중력이나 속도에서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나는데 나는 그걸 어떻게 벌충할 수 있을까.
솔직히 <도망쳐> 사연자의 누나가 데려온 남자는 어느 집안 부모님이든 반대할 조건의 남자였다. 전문대에 홀아비. 취업이 아닌, 부모님의 일을 돕는 정도의 경제력.
넉넉하기나 하면 모르겠다. 그다지 넉넉하지도 않은 집안에서, 많은 부분을 부모님의 상황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경제력을 가진 남자를, 딸 가진 어느 부모가 "내 딸이 좋아한다니 이 결혼 허락함세."하고 대뜸 좋아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누나가 이 남자를 붙잡고 싶고, 결혼하고 싶은 이유가 있긴 있었을 것이다. 부모님도 이해하기 힘들고, 어쩌면 우리도 들었을 때 납득하기 어려울 장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내가 힘들 때 잘 위로해 줘, 정도의.
하지만 그녀는 당신들(부모님)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을 수없이 참고 수용하면서, 대신 언젠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할 때 당신들도 나를 지지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어쩌면 이 남자와 결혼으로, 부모님과의 족쇄 같은 관계와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족과 멀어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고통스럽다면 심리학자들은 불편한 마음을 감수하고 멀어지길 충고한다.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지만 항상 뭔가 성취해야만 인정받는 무척 엄격한 집안의 분위기에서 성장한 그녀는 가난하지만 꼭 무언갈 성취할 필요가 없는 행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남자친구와 가족을 꾸리고 싶었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자신의 가족과 전혀 다른 새로 분위기의 가족을.
비록 가정을 꾸리지는 못했지만, 결국 그녀는 가족과 멀어졌다.
나는 사연자의 누나가 가족과 멀어진 지금, 가족과 함께 했던 순간보다 훨씬 행복할 것(이 행복이 막 ‘우와! 행복해!’ 이런 수위의 행복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편안한 상태를 이야기한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왜냐하면 장녀는 항상 집안 내에서 뭔가 행복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쓸데없는 부분까지 부모님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일분일초 매 순간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기 때문이다)이라 믿는다. 완벽한 장녀 노릇을 하며 고갈되는 것을 느끼던 30대 초반의 내 모습보다, 더 이상 가족과 연락을 주고받지 않고 때론 불편한 감정(실존세)을 느끼며 홀로 지내는 지금이 훨씬 더 아늑하니까. 다시는 완벽한 딸 노릇을 하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당시 남들 보기엔 완벽한 딸이었을지 몰라도,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으니까. 반대로, 지금 나는 평균의 딸 노릇조차 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나 자신으로 사는 것에 너무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