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로 태어났는데 우선순위가 아닌 존재들
넷플릭스 드라마 <너의 시간 속으로>의 1998년에 사는 여주인공 민주는 이제 겨우 18살. 그리고 이혼한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사는 장녀이다.
그녀의 루틴은 이렇다.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 알람이 울리고 있는 동생 방으로 가, 동생을 깨운다. 하지만 동생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짜증을 내며 나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학교 갈 준비를 하고 거실로 나가니 술장사를 하는 엄마가 먹고 난 술상이 어지럽게 놓여 있고, 엄마는 소파에서 자고 있다. 민주는 술상을 치우다가 이불도 제대로 덮지 않고 곤히 자고 있는 엄마를 본다.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 이불을 목까지 덮어드리자 엄마가 민주에게 말한다.
엄마 : 도훈이 꼭 아침 먹여서 학교 보내. 안 먹는다 그래도 꼭 먹여서 보내라(너 꼭 아침 먹고 가란 말은 하지 않는다).
민주는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동생에게 먹일 국과 밥을 푼다. 하지만 다급하게 내려온 남동생은 니탓(=누나탓)을 하며 왜 안 깨웠냐고 짜증을 내고 밥도 안 먹고 나간다. 그 와중에, 지각하면 ‘니 때문’이라고 (가스라이팅)하면서.
(아오) 그게 왜 민주 탓인가. 민주는 자신의 노력이 하나하나 무시되는 상황을 견디고(혹은 버티고) 밥을 먹는다.
그 날 밤, 민주의 부모는 서로 도훈이를 데려가겠다고 다툰다. 자기 방에 있다가 싸움 소리에 나온 민주는 서러움에 눈물이 난다. 아빠는 목소리를 높이며 도훈이 불러다가 물어보라고 하고 엄마는 더 목소리를 높이며 그거 좋다며 도훈이한테 물어보겠다고 한다.
민주가 그만 좀 하시라고 말을 걸지만 아무도 민주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듯 계속 싸운다. 민주가 소리친다.
민주 : 다들 그만 좀 하시라구요!
두 분 다 도훈이만 데려갈 생각하시는 거 보니까 저는 어디로 가든 상관 없는 거네요.
엄마가 그럴 리가 있냐고 부정하고, 그 와중에 아빠는 딱히 부정하지도 않는다.
엄마 : 그.. 그냥 도훈이는 아직 어리니까...
민주 : 저도 아직 어려요! 저도 아직 미성년자(민주는 고2, 동생은 고1)고 저도 아직 상처받는다고요.
왜 맨날 저만 뒤로 밀려나야 되는 건데요?
두 분 다 좀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네?
라고 소리지른다.
같이 보고 있던 남자친구가 말한다. <장녀해방일지> 한 권 줘야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장녀 민주의 설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며칠 뒤 민주의 생일날, 집에 돌아오니 엉망진창으로 뒤진 흔적이 있고, 엄마와 남동생은 집에 없다.
문득 엄마가 아빠와 싸우다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도훈이 데리고 숨어버리겠다고 한 말을 들은 기억이 난 민주는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도망갔다고 생각하고 찾으러 뛰쳐나가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입원해서 누워있는 민주.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어 엄마를 찾는다. 그러자 병문안 온 친구가 아까 잠시 집에 가신다고 나가셨다고 말해준다. 민주가 기가 차서 말한다.
민주 : 딸래미가 병원에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는데 집에 갔다 온다고? 보나마나 또 도훈이 그 자식 때문이겠지.
민주는 열이 뻗쳐서 환자복 차림으로 그대로 집으로 간다. 택시비를 빌려서. 정신을 잃고 입원한 딸이 깨어나는 것보다, 멀쩡한 아들 밥 한 끼 굶는 게 신경쓰이는 엄마가 너무한 것 같아서. 속상해서.
한편 집에서 동생은 게임 중이고 거실 전화가 올리자 동생은 게임을 끊기 싫어 엄마를 부른다. 하지만 엄마가 오자 그 사이 전화는 끊긴다. 부엌에서 전화하는 엄마를 꼭 불러야 겠냐고 하면서 누나가 사고 나서 병원에 누워있는데 게임이 하고 싶냐고 타막을 하며 "으이구. 이 놈의 게임기 싹 다 불질러 버리든가 해야지" 라고 하자 게임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한다.
도훈 : 그러기만 해. 집 나갈 거야.
엄마가 자식이 아니라 상전이지. 상전, 하며 다시 부엌으로 가려는 찰나 환자복에 머리에 붕대를 감은 민주가 나타난다.
민주 : 와, 아니 좀 해도해도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엄마, 지금 도훈이 밥 차려주겠다고 여기 와 있는
거야?
엄마 : 니 동생 혼자 두면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 먹을
줄도 모르잖니.
민주 : 어~ 그럼 좀 굶으라고 해. 한끼쯤 굶어도 안
죽어.
엄마, 엄마는 병원에 누워 있는 딸이 걱정도 안
돼? 어?
그리고 어떻게, 어떻게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갈
수가 있어?
엄마가 민망한 듯 웃으며 말한다. 그거 도훈이가 그런 거라고. 도훈이가 돈 훔쳐서 집 나간 줄 알고 잡으러 나간 거라고. 그러자 머리에 붕대를 감고 뛰어들어온 누나 안부조차 묻지 않고, 마치 지구가 멸망해도 마지막 게임을 할 마지막 인류처럼 게임을 하고 있던 도훈은 자기 앞담화에 짜증이 난듯, 혹은 그만 말하라는 듯 짜증을 내며 말한다. 당연히, 게임을 하는 TV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도훈 : 진짜, 시끄러워 죽겠네! 게임에 집중 안 되게!
(아마 이쯤에서 성장기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 K-장녀들은 PTSD가 올 것이다.)
민주는 게임기를 발로 차버리고 동생의 머리통을 때린다. 도훈이 뒷통수를 잡고 벌떡 일어난다.
도훈 : 야, 뭐야?
민주 : 야? 어따 대고 야야? 내가 니 동생이야?
어? 아주 엄마 믿고 기어올라라? 확! 자진모리
장단으로 쳐맞는 수가 있어?
엄마. 얘가 이렇게 싸가지가 없는 건,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맨날 도훈이만 오냐오냐
받아주니까.
나보고는 맨날 참으라고만 하고.
아니, 나는, 나는 어디서 주워온 자식이야?
머리를 다친 민주가 혈압이 올라 어지러운 듯 머리를 붙잡고 비틀거리자 삼촌과 엄마가 달려와 부축하며 이 상황은 일단 일단락된다.
근데 꼭 이런 것 뿐만이 아니라 장녀가 힘든 지점은 따로 있다(장녀로 사는 기쁨과 슬픔 - 2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