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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레터 Dec 12. 2019

왜 살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언젠가 부터 삶의 생기가 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닫지 조차 못하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죽기 전까지 시간때우기로 살고 있다는 느낌. 

‘이렇게 살다 죽는 거지 뭐.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 어딨어.’ 하고 나 스스로를 더욱 차갑게 얼려버렸다.

그러다보니 일상의 모든 것들이 하찮은 것이 되어버렸다.


‘화장 해봤자 뭐해? 남자 꼬실 것도 아닌데.’

‘옷 예쁘게 입어봤자 뭐해? 취준생 주제에.’

‘여행 가봤자 뭐해? 어자피 거기가 다 거긴데.’

‘연애? 사랑을 해봤자 뭐해? 어자피 다 헤어질텐데.’

‘취직? 해봤자 똑같겠지 뭐. 그냥 월급쟁이 되는거지.’

‘운동?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친구? 쟤도 어자피 몇년뒤면 연락도 안하게 되겠지’

‘가족? 어자피 엄마아빠는 대화도 안 통해. 인생은 혼자 사는거야’


그러다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 왜 살아? ...어자피 죽을 건데.’

참지 못하고 눈물이 흘렀다. 미친듯이.

그렇게 울어보는 건 몇년만이었다.


이렇게 사는 건 잘못된 거라고,

내 온몸이 격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추억도 만들지 않는 삶.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삶.

이 길의 끝엔 뭐가 있을까? 생각했을 때

‘아무것도 없다’ 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상처와 아픔을 막기 위한 방어기제였다.

나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선을 긋고

울타리를 세우고

타인을, 낯선이를 사랑하지 않으려 온갖 애를 썼다.

그런데 그런 삶이 행복했냐고?

아니. 미치도록 외로웠다.

내 안의 모든 인류애가 증발한 느낌.


인생은 참 짧다.

우린 모두 오늘 당장 죽을 수도 있다.

사고가 나서 눈을, 다리를 잃을 수도 있다.


인생은 참 소중한건데.

실패하고 다치고 아프더라도,

몸을 던져보고 뜨겁게 사랑해보는 것.

그게 인생인데.

지난 몇년 간 그걸 몰랐던 내가

사무치게 불쌍했다.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언니가 불쌍해요.”

.

“아무도 언니에게 사랑이 뭔지 알려준 사람이 없어.”



이제는 더 이상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아무리 어린시절 가족과 친구, 남자친구에게 상처를 받았어도, 그들을 탓하기만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들은 이미 내게 상처준 것도 잊은 채(어쩌면 모른채) 행복하게 살아갈텐데. 

나만 왜 그걸 붙잡고 괴로워 하고 있었나.


오늘부터, 낯선 이를 사랑하는 것 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지나가다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행복하게 웃어주어야지.

설령 그 사람이 ‘뭐야?’ 하는 표정을 짓고 지나가버리더라도.


지나가다 낯선 사람이 헤메고 있으면 

먼저 가서 도와주어야지.

설사 내가 바쁘더라도.


내 하루의 1분1초도 게을리 쓰지 않아야지.

매초 매초를 생생하게 살아있어야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사랑하고. 

그렇게.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혹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롭고 외로워한다.

그 소중한 사람들을 다 사랑해주고 싶다.

그들은 모르는 거다.

‘진짜 사랑이 뭔지 알려준 사람이 없어서.’


내가 힘들다고 하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다 그렇지. 그냥 참고 사는거야. 넌 왜 생각이 많니?"

처음엔 상처를 받았고 조금은 원망도 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깨달았다. 엄마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던 거다.


어쩌면 엄마의 젊은 시절은, 먹고 살기 바빠서

'삶의 의미' ,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딸의 그러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던 거다. 

엄마 조차 몰랐을 테니까.


모르는 건 잘못된 게 아니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알려준 사람이 없었을 뿐이었다.

 

상대방이 나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주어도 원망하지 않겠다.

원망하기 보단, '저 사람도 모를 뿐이구나' 하고 따듯하게 안아줄 것이다. 

내가 도와주고 알려줄 것이다. 


나는 부족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이다. 

진짜 사랑이 뭔지, 행복한 삶이란게 뭔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많은 순간 불안했고 아팠고 우울했다.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어린아이가 철없는 마음에 실수를 해도,

버려진 강아지가 인간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짖어도,

미워하지 않으리.

'몰라서 그런 것 이구나' 하고 사랑하리.


꿈이 생겼다.

사랑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는 것. 

죽는 그 순간 까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동물을 사랑하는 것.

설사 왜 사는 지 모르겠더라도, 하루하루 매초매초를 생생히 느끼고 즐겨 보는 것.


내일 죽어서 모든게 끝난다 하더라도

오늘은 누군가를 사랑해야겠다. 

실패하고 무너지고 찢기더라도, 온 몸을 다해 모든 순간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아, 꼭 거창한 것이 삶의 목표가 될 필요 없었다!

예쁘게 화장하는 재미가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10분동안 연습실에서 재밌게 춤을 추는 것이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정성들여 요리를 하고 친하지 않은 셰어하우스 사람에게 한 조각 나눠주는 것이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아침엔 맛있는 아침밥을 먹기 위해 살고

점심엔 고귀한 노동을 성실히 행하기 위해 살고

저녁엔 가족과 전화 한통 하기 위해 살아야지.


이제부터는 그것이 내 삶의 이유가 될 것이다. 


.

.

.

모든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각자 자신의 일을 염려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안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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