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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Mar 19. 2023

현존하기

오후. 불현듯 우울감이 몰려왔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냥 기분이 그러하다는, 우울감이 느껴진다는 설명이 맞겠다. 다행인 건 이 감정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 


우울감이 몰려올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내버려두는 일, 받아들이기. 수용하기. 그러다 이거 안되겠는 걸.싶을 땐 곧장 조치를 취한다. 


머리를 질끈 묶고 찬물로 세수를 한다. 정신이 번뜩이는 효과가 있다. 리프레쉬 된다. 일단 밖으로 나간다. 지갑을 챙겨 집 근처 카페로 갔다. 요거트 스무디를 주문해 마신다. 기분이 조금씩 나아짐을 확연히 느낀다. 


그러곤, "음, 또 반복됐군... 이젠 일상이 돼버린 걸. 금세 왔다 금방 가버렸네." 순식간에 우울의 늪에 빠뜨리는 이 실체없는 감정에 이토록 무심하게 되었다. 


짧게는 몇십분 길게는 몇 시간 정도 머물러 갈 뿐이다. 이젠 며칠을 혹은 그 이상을 이런 감정들이 날 휘둘리게 놔두지 않는다는 게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점이다. 이럴때 보면 내가 이 우울이라는 녀석보다 더 강력해진게 아닐까.싶다.  


일시적이다. 순간적일 뿐이다. 

평온한 주말 오후. 이런 감정과 마주하는 일이 이젠 일상이 돼 버린듯하다. 늘 행복한 기분 일수만은 없다. 그저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수용하면 된다. 


요거트 스무디 한 잔이 뭐일까 싶지만. 내 마음은 한결 나아졌고 차가운 텍스처에 내 몸이 살짝 추워진 듯하면서 내 몸의 감각이 더 구체적으로 느껴졌고 동시에 내 머리도 다시 명료해져갔다. 


집에 돌아와서는,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비우기를 반복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도 않았고 이렇게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현재의 나.만이 존재할 뿐이다. 과거도 더 이상 실체가 없고 지나간 내 기억들일 뿐이라는 생각이 날 위로하곤 한다. 아직 오지도 않은, 예측할 수도 없는 미래도 지금의 내겐 중요하지 않다. 딱히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현존하기. 지금 여기에 내 몸과 마음이 머무를 것. 이것 뿐이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 그리고 축복이라는 사실을 오늘도 나는 잊지 않는다. 


인생, 생각보다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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