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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巳年 새해소망

by 승환

어찌어찌하고 이래저래 마음과 몸이 고달팠던 2024년이 지나갔습니다,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이리 어찌 똑 떨어지게 맞는지 그런 지난 일 년을 지나고 새해를 맞이하고 보니 설마 작년보다는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근거 없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냉철히 생각하면 작년의 마무리되지 않은 많은 일들이 봉합되지도 해결되지도 않았고 그 후폭풍을 맨몸으로 다 받아내야 할지 모릅니다.

정치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에 아슬하게 서있는 듯 위태롭습니다.

재난과 전쟁같이 폭발물이 터지듯 그렇게 일순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고 추락과 위험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있던 것이 없어져 아무 일도 아닌 것같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저 숫자하나 바뀌는 일같이 그냥 무덤덤하였다가 매해 점점 무덤덤해져 가는 감성은 올해는 좀 남다른 것 같습니다.

다시금 어려운 시절을 지나면서 생각이 많아집니다. 보이던 것을 다시 보게 만들었고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던 많은 것들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속상한 일들 후회되는 일들도 많았고 반성하고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별생각 없이 그냥저냥 살아도 되는 편한 세상은 어디에도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 하나의 안위와 행복만을 좇아서 살아가는 게 현명하고 지혜롭다고 생각을 버리지 못했는데 개인의 행복과 안녕이라는 것이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나만 잘나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우리가 누려왔던 평범하고 무탈한 일상이라는 것이 그냥 저절로 다 익은 감이 떨어지 듯 우리 앞에 똑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게 확실합니다.

50여 년을 살아오면서 별에 별일이 많았고 겪어 왔으면서도 운이 좋게도 저는 그 어려움과 위험을 피해 용케도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연말에 어마어마한 일들을 연달아 겪고 나면서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니 전에는 참으로 철이 없었구나 싶습니다.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까지 혼자 싱글일 때와 일가를 이루고 나서 무엇인가 지켜야 할 것들이 나 말고도 누군가 대상이 있다는 것을 새삼 무겁게 느껴집니다.

평화롭고 안정적인 시절에는 세상이 무료하고 지루하다는 철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고 뉴스에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이나 재미난 영상이 올라와 사람들을 잠시 웃게 만들던 그런 시절도 있었구나 요즘의 무섭고 두렵고 혐오스러운 일들만 뉴스로 넘쳐나는 시대를 비교하니 그 당시에 그것이 평화고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어린 시절 6시만 되면 국기하강식에 애국가가 나오면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를 향에 가슴을 올리던 기억, 박통이 총에 맞고 계엄과 신군부가 등장하였을 때도 으레 장군들이 대통령도 할 수 있나 보다 아무런 감흥도 없었고 교복자율화나 프로야구가 생기고 사소한 것들에 더 관심이 집중되고 칼라티브이가 너무 좋았던 기억, 광주에서 올라온 동창이 5.18 동영상과 자료를 보여주며 의분에 차 이야길 하던 것을 별 관심 없이 의심하던 어린 시절, 공산당이 진짜 있을지도 모른다는 오해와 편견 의심, 전라도 사람들은 배신하고 깡패들이 많다는 편견들, 민주화 운동이니 시위를 대학생이면 으레 하려는 것이니 하고 마지못해 따라나갔던 시절, imf가 터지고 재벌이라고 영원할 수도 없고 부정한 짓을 했으니 당연지사 결말이려니 하는 생각, 졸업하고 취업이 안되어도 그러려니 다들 그런가 보지 하던 한심한 생각들 금융위기가 와도 나랑은 큰 상관이 없네 환율이 뛰면 기회라는 얄팍한 생각들 집값이 천정부지 올라도 그게 무슨 문제이고 어려움이 될지 나만 괜찮으면 되지 않을까 하던 이기심들...

제가 살아오면서 잘못 생각하고 처신하고 후회하는 못난 모습들입니다.

길거리에는 소매치기 강도가, 골목을 들어서면 불량학생들과 깡패들에게 돈을 뺏기고 얻어맞고 그래도 세상이 의례 그런 거라 내가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건을 사도 바가지를 써도 훔쳐도 뺏겨도 사회라는 것 세상이란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 생각했고 학교든 가정이든 폭력이 난무해도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바른 학생 바른 시민이고 사람이 다 그렇다 믿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들 시선으로 후진국이니 민도가 떨어진다는 어느 나라에 비해 나은 것 하나 없던 그런 모습에서 우리는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국가와 국민이 되었습니다.

이루기 어렵고 지켜내기 어려운 우리의 이런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정치가 이름값을 못할 때 사람들이 사상과 생각이 보편적이고 인본적인 모습을 잃어갈 때 우리는 신정국가 왕정국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겪어왔던 그 많은 고통과 혼란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는데 50대 60대 어른들은 다시 우리 후세들에게 그 시절로 되돌아가 살아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사람을 믿지 않는 대통령과 신들의 말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과 사람보다 돈을 따르는 정치인 관료들 사회지도층들이 난무하는 세상이 싫습니다.

사람이 너무 싫고 한심해도 그래도 사람을 안고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본이 선 나라에 살고 싶습니다.

평화라는 것이 영원할 수는 없지만 새해에는 사랑과 평화, 안녕이라는 소원을 빌어봅니다.

한 번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잘못된 가치들을 떨어내는 시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생채기를 내려 안달하지 말고 조금씩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예쁘게 싸우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고 이기고를 떠나서 스스로 감복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가득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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