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썰매, 방패연
윗동네, 아랫동네 할 것 없이 초가지붕의 볏짚은 죄다 할아버지께서 엮으셨고
세월이 흘러 지붕의 형태가 기와로 바뀔 때도 마을 집들의 상당수 기와는 할아버지께서 올리셨다.
요즘은 보기 드물지만 마을에서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풍물 소리가 온 동네를 가득 채웠는데, 거기서 빼놓을 수 없는 징과 꽹과리도 할아버지가 직접 만드셨다.
아버지를 통해 전해 들은 나의 할아버지는 이렇게 손재주가 많으신 분이셨다.
할아버지는 내 나이 6살 무렵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그리 많지 않지만, 추운 겨울이면 지금도 선연히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어느 겨울날 할아버지와 양지바른 마당에서 얼음썰매를 함께 만들었던 기억이다.
할아버지가 만드는 썰매의 기본 틀은 당시 과일 상자로 쓰이던 나무합판이었다. 나무합판 3~4장을 얹고 썰매 아래쪽에는 2개의 각목을 가로질러 못으로 고정시켰다. 썰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날 부분은 굵은 철사를 대신 이용했다. 얼음을 지칠 때 필요한 양손 스틱 역시 원형의 나무를 기본으로 하고 끝에는 못 머리를 잘라낸 후 뜨거운 불에 달궈 나무에 깊이 고정시켜 만들었다.
끈까지 매단 할아버지표 얼음썰매를 어깨에 메고 집 밖을 나설 때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 보다 씩씩했다.
나의 어릴 적 살던 집 뒤는 온통 대나무였다. 지금은 마을 개발로 대나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죽전(竹田/대나무밭)이라는 동네 이름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할아버지는 집 뒤에 곧게 뻗은 대나무 한 대를 잘라 오셨다. 곧 날카로운 낫으로 대나무를 길게 쪼개니 금세 낭창낭창한 대나무살이 만들어졌다. 이어 창호나 벽에 붙이고 남은 직사각형의 화선지 정 가운데는 밥그릇을 이용해 원을 그린 후 오려냈다. 대나무 연살과 화선지를 쌀풀로 붙이고, 굵은 실을 묶어 휨새 좋은 방패연을 금세 만드셨다.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방패연은 좌, 우의 대칭이 잘 맞아 어느 한쪽 회전하는 법이 없었다. 넓은 들판에 나가 할아버지 직접 만들어 주신 연 날리며 추운 줄도 모르고 놀았다.
지난겨울 주말 마을에서 운영하는 축제로 유명한 청양의 알프스 겨울왕국 축제장 찾았다.
아들, 딸이 타는 얼음 썰매를 뒤에서 밀어주는 와중에 할아버지와 함께 만들었던 그 얼음썰매와 방패연이 불현듯 떠올랐다.
내가 그러하듯 훗날 내 자녀들도 나와 함께 보냈던 시간을 추억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