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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양 May 31. 2021

신혼집에서 물이 샌다?

참 안 맞는 부부






신혼집에서 물이 샌다? 



우리 부부의 신혼 생활 에피소드가 정말 많은데

그중에서 굵직한 에피소드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신혼집'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우리 부부는 돈 없이 결혼한 처지라

이것저것 가릴 형편이 되지 않았고 

서울에서 9천만 원 전셋집을 구하긴 했으나!

30년 넘도록 오래된 다주택 가구에 신혼살림을 장만하게 되었다. 




# 집이 아프기 시작하다


이사 첫날.

안방 문고리가 두둑 하는 소리를 내더니 떨어졌다.

그래, 그럴 수 있어! 오래 살다 보면 문고리 떨어질 수 있지~


이사 둘째 날.

화장실 스위치가 두둑 하는 소리를 내더니 떨어졌다. 

그래, 그럴 수 있어! 스위치는 철물점 가서 다시 사면되지!


그리고 그다음 날.

수건걸이가 와장창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화장실 찬장 받침대가 무너지고 

거실에 놔둔 물건이 자꾸 도르르 굴러가길래 이게 뭔가? 싶었더니

집 수평이 기울어져 있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는 아니, 그럴 수 없어!!! 의 절규로 바뀌었다.


이 집은 여름에도 외풍이 있다.

여름밤에 호덜덜 떨어본 적 있는가?

이 집에서 공포영화를 보면 그렇게 맛깔 날 수가 없다.


이 집은 겨울에 당연히 외풍이 있다. 

어느 정도냐면 벽에서 한기가 서려서 벽에 기대고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겨울에는 벽에 물기가 차서 벽지가 운다. 엉엉엉...

나도 같이 운다 엉엉엉...


오래된 집이다 보니 이 집으로 결정하기 전에

우리는 두 번이나 와서 심사숙고를 했다.

낮게 한 번, 밤에 한 번 와서 체크할만한 건 다 했지만

이렇게 집이 아플 거라고는 예상도 못했다. 


# "저기요! 천장에서 물이 새는데요?"


그중 가장 큰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아랫집 아줌마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저기요, 저희 집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데

이 집에서 물 새는 거 아니에요?"


오 마이 갓!

이것이 말로만 듣던 전셋집 누수 사건인가.

알고 보니 우리 집 화장실 타일 바닥에 금?이 가 있어서

화장실에서 쓰는 물이 아랫집으로 누수가 되는 듯했다.


우리는 그동안 집주인과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아서 

잔고장들은 알아서 다 처리했는데

누수는 큰 사건이기 때문에 당장 집주인을 불렀다.

집주인은 누수 업체 직원을 불렀다. 

직원분이 현장에 나와서 이리저리 보시더니 한 마디 하셨다.


"아마 화장실 바닥에 오래돼서 금이 가거나 그런 것 같은데요?

계속 물이 새면 화장실 바닥 다 뜯어야 합니다.

그러면 공사를 한 일주일 하겠네요"


"네? 누구 공사를 한다고요?

그러면 저희는 어디서 지내요?"


"알아서 지내셔야죠. 공사 시작되면 흙이랑 시멘트 다 들어오니까

이 집에서는 못 지냅니다"


와 진짜 청천벽력이었다.

심지어 그때 둘 다 한창 일하느라 바쁠 때라 

어디 갈 데를 알아볼 시간도 없었고

중요한 건 어디 갈 데도 없었다.


친정, 시댁이 다 지방에 있어서 

최악의 상황에는 우리 짐을 컨테이너에 맡기고 

우리는 모텔이나 에어앤비같은 숙소에 일주일 정도 머물러야 했다.

집주인도 멘붕, 우리도 멘붕이었다. 


"누수가 아닐 확률은 없나요?"


"음... 한 가지 의심 가는 부분이 있긴 한데..."


누수 업체 아저씨가 우리를 화장실로 부르더니 

변기 물 내림 버튼을 가리켰다.


"여기서 물이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데 

이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요. 우선 이것부터 교체해보세요"


우리는 아저씨의 솔루션대로 

변기 물 내림 버튼을 교체해보기로 했다.

남편은 유튜브를 보고 열심히 방법을 배운 뒤 철물점에 가서 장비를 사 왔다.

변기를 해체하고 물 내림 버튼을 빼려는데, 이게 아무리 해도 안 빠지는 거다.

유튜브에서는 조금만 힘을 주면 빠지던데 왜 안 빠지지? 하며 

한 시간을 넘는 씨름 끝에 겨우겨우 빠졌다.


그런데 와우, 비주얼이 와우, 진짜 와우... 

검은 때가 잔뜩 끼어서 완전... 휴... 그날 남편과 저녁은 패스했다.

변기 내림 버튼 연결 고리?라고 해야 하나

이 부분이 비위가 상할 만큼 정~~ 말 오래되었다. 

자세히 봤더니 버튼이 오래되어 녹이 슬고 부식되어서 

변기의 물 받침 통에 고인 물이 버튼 고리를 통해서 물이 계속 새는 거였던 것이다.

(이해가 안 가면 그냥 변기 내림 버튼이 오래되어서 물이 샜구나 정도로만 이해해주시길...

사진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한데 사진은 도저히.........)


새로운 버튼을 달자 물이 새는 현상은 일단 막았고

이대로 일주일 동안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아랫집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공사하신 거예요? 이제 물이 안 새네요~"


와~ 진짜 하늘에서 광명의 빛이 내려온 것만 같았다.

우리만큼이나 집주인도 기뻐했다.

만약 누수 공사를 했으면 견적이 40~50만 원은 나왔을 거란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했으나

그로부터 1년 뒤, 보일러가 고장 나서 

집주인은 40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새 보일러를 달아주었다.

그때 보일러 기사님이 이랬다.


"우와, 이 보일러 진짜 유물이네요.

진짜 보기 힘든 겁니다 이거"


하... 하하.... 그런가요?

오래된 집에 살다 보니 사람도 고장 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집을 탈출했다!!


이제 막 새롭게 출발하는 1년 차 신혼부부가

30년 넘은 오래된 집에서 살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웃프기도 하지만 

남편과 하하호호 웃으며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이 생겼다는 게

한 편으로는 참 즐겁기도 하다. 



ps. 우리는 그 집을 탈출해 새 집으로 이사 왔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또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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