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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양 Jan 24. 2024

산대장 아빠, 천국을 등반하다

산대장 아빠의 암투병기 




이제 드디어 아빠의 이야기를 끝맺음할 시간이 왔다. 사실 브런치에 아빠의 이야기를 쓴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우리 아빠가 이렇게 암과 열심히 싸웠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었고 그 정신력과 마음가짐을 많은 암환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비록 아빠는 암에게 졌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열심히 싸웠다고, 그래서 분명 기쁜 순간도 있었다고,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이다. 두 번째는 나의 아빠, 최진영이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을 두고두고 남겨놓고 싶었다. 이 글을 쓰면서 2022년 10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아빠가 항암 투병했던 기록을 다시금 되짚어 보게 되었고 다시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울기도 많이 울었다. 


글을 쓴다는 건, 그때의 감정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이기에 아빠의 항암 투병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매번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시작한 이야기의 끝맺음을 짓기 위해 아빠의 마지막 가는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는 임종방이 따로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잠시 후, 간호사와 엄마가 아빠를 실은 침대를 끌고 임종방으로 들어왔다. 아빠는 며칠 전 아산병원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말랐고 거의 뼈만 남은 상태였다. 아빠의 정신은 온전치 못했고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자식들이 왔으니 정신 차리라고 아빠를 불렀지만 아빠의 눈동자는 너무나 공허했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영혼이 이미 빠져나간 사람처럼 공허하디 공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우리의 목소리를 듣자 서서히 정신을 차리셨다. 제대로 말은 못 하셨지만 '아빠, 저 왔어요' 하고 부르는 내 목소리에 아빠는 반갑게 아는 척을 하며 내 얼굴을 어루만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빠는 정신을 계속 잃고 뒤로 고꾸라졌다. 뼈마디 밖에 안 남은 아빠를 어떻게든 앉혀보려고 했지만 아빠는 계속 뒤로 고꾸라지려고 했다. 처음에는 아빠를 불러보다가, 그다음에는 울면서 가지 말라고 애원을 해보다가, 마지막에는 사랑한다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엄마는 아빠에게 울면서 '가지 말라고, 당신이 가면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하며 소리쳤지만 그렇게 소리친다 한들 이미 아빠의 영혼은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호스피드 병동에 도착한 오늘 아침부터 아빠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었을지도 모른다.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서 그런지 아빠는 자꾸만 거뭇한 액체를 토해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암환자가 피를 토하던데, 진짜 암세포가 심각하게 퍼지면 검은색의 액체가, 도저히 사람 몸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액체가  나오는구나 싶었다. 마치 온몸의 장기가 썩어서 썩은 물이 나오는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말했다. 아빠에게 좋은 말만 해주라고, 자꾸 가지 말라고 붙잡으면 환자가 편히 못 간다고 말이다. 그래서 아빠보고 잘 가라고, 사랑한다고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아빠의 눈동자가 감길 때마다 눈물이 복받쳐 올라서 '가지 마세요, 아빠. 제발 가지 마세요' 라며 다시금 붙잡았다. 


그렇게 1시간 30분이 흘렀을까, 우리 가족은 끝내 아빠를 보내주기로 했다. 우리가 보내주기로 결심을 하자마자,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버티고 있던 정신의 끈을 놓았다. 아빠를 눕히고 산소호흡기를 떼자 거짓말처럼 아빠의 생명이 꺼져갔다. 정말 돌아가신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소리 없이, 서서히 눈을 감았다. 2022년 6월 1일 오후 8시경,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아빠의 삶이 그렇게 끝났다. 


입관식 날. 아빠의 얼굴이 참으로 평온해 보였다. 아빠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실감 나는 순간이었지만 암세포의 고통에서 벗어나, 수액으로 퉁퉁 부은 두 다리를 내 던지고 하늘로 훨훨 날아갔을 모습을 상상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했다. 장례가 끝나고 아빠의 시신을 화장했는데, 그때 정말 오랜만에 속이 후련했다. 아빠를 괴롭히던 암세포 놈들이 활활 타서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씻은 듯이 속이 후련했고 이제는 아빠가 정말로 암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우리는 아빠를 수목원에 모시기로 했다. 평소 자연을 좋아하는 분이기도 하고 아빠가 살아생전에 '내가 죽으면 나무에 묻어줘'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났기 때문에 아빠가 태어나고 자란 전주 수목원에 아빠를 모셨다. 


그렇게 아빠와 함께했던 지난 세월이 땅속으로 묻혔다. 나의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내내 출근길에 나를 태워서 학교까지 바래다줬던 우리 아빠. 수능 시험을 망쳐서 속상함에 울음이 터졌을 때 뒤에서 같이 눈물을 흘렸던 우리 아빠. 여자 혼자서 위험한 해외배낭여행을 세 번이나 가겠다고 고집 피웠을 때 결국 내 편을 들어주고 응원해 줬던 우리 아빠. 모아 놓은 돈 한 푼 없이 결혼하겠다는 무모한 딸을 묵묵히 지원해 줬던 우리 아빠. 결혼식 날 딸의 화장이 묻을까 봐 안아주지도 못하고 뒷걸음질 쳤던 우리 아빠. 서울에서 진해까지 내려가는 날엔 늦은 밤이든 이른 아침이든 늘 딸을 데리러 왔던 우리 아빠.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늘 아낌없이 지원해 줬던 우리 아빠. 평소엔 호랑이처럼 엄하고 무섭지만 나한테 만큼은 '딸 바보'라고 불리며 순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던 우리 아빠. 


남들은 나에게 '아버지가 아플 때 이렇게 잘해주는 딸이 어디 있니, 넌 정말 효녀다'라곤 하지만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것이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빠는 나에게 모든 것을 내어줬다. 그러니 나는 효녀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아빠가 나에게 해준 것의 반의 반도 갚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곧 다시 만날 것이기에, 그날이 분명히 올 것이기에 나는 은혜를 되갚을 그날을 기다린다. 예전에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막연하고 나와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의 죽음을 겪고 난 이후로 '죽음'이라는 단어가 한결 편안해졌다. 아빠는 먼저 가서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나의 죽음 끝엔 아빠가 있을 것이기에 '죽음'은 막연하고 두렵지 않아졌다. 


산대장 아빠는 이제 천국의 온갖 산을 다니며 성성한 몸으로 산대장의 면모를 뽐내며 산능성이를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계실 것이다. 그러다 만난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또 다른 산 친구들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무슨 사연으로 이곳에 왔냐, 나는 살아생전 췌장암 때문에 참 고생을 많이 했다' 라며 아팠던 그 시절을 무용담처럼 웃으며 회상할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암과 싸우는 분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보호자분들. 이 글을 보시고 '아, 언젠가 저렇게 죽는구나'라고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모든 일은 결과가 증명한다곤 하지만 결과까지 가는 그 과정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치열하게 싸웠기에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고 가족이 다 함께 웃었던 순간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서로가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고 아빠가 떠난 삶도 거뜬히 살아낼 수 있었다. 정말 최선을 다한다면, 오늘 하루를 정말 아낌없이 살아낸다면 그 순간이 모이고 모여서 언젠가 여러분의 삶을 지탱해 주는 대들보가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악착같이 버티며 살아온 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고 정말 잘하고 계시다고 손을 꼭 맞잡고 위로해 드리고 응원해드리고 싶다. 여러분의 치열한 싸움 끝에는 완치라는 기적이 있기를. 우리 아빠가 누리지 못한 기적이 누군가에게 안착해 희망의 꽃을 피워내길.


암환자 모두가 완치라는 산을 등반하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소원한다. 




아빠가 돌아가실 거라 생각하지 못하고 영정사진을 찍어두지 못했다. 그래서 아빠 핸드폰에서 가장 밝게 웃고 있는 사진을 골랐는데 고르다 보니 항암 투병 중에 등산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에선 유독 빛이 났다. 마치 '아빤 괜찮아. 아빤 이제 편해졌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빠를 모신 수목원. 다행히 아빠를 모신 자리는 언덕 위에 위치해 수목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였다. 자연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하는 아빠는 자연의 품에 안겼다. 아빠는 비로소 편안함에 이르렀다


아빠는 내 삶에 늘 함께였다. 그리고 지금도 내 마음속에 함께 계신다. '우리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기다리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아빠가 그토록 기다리던 내일이고, 나는 그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서 언젠가 아빠를 만났을 때 이것저것 이야기할 거리들을 잔뜩 만들어갈 것이다. 


아빠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먼저 저만큼 가서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남은 삶을 뚜벅뚜벅, 흐트러짐없이 걸어 갈 것이다. 

묵묵히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 낼 것이다.


산대장 아빠, 최진영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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