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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양 Oct 27. 2023

암환자를 살리는 밥상은?

산대장 아빠의 암투병기


암에 걸리면 가장 먼저 신경 쓰게 되는 것이 바로 '식단'이다. 몸 안에 암세포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몸 안의 다 뒤집어엎어서 암세포란 암세포는 모조리 싹싹 긁어내서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실제로는 그럴 수 없는 노릇이다. 항암제라는 의약품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데 그중에서도 환자가 직접 해낼 수 있는 노력이라는 것이 있다면 식단과 운동, 생활습관이 같은 것들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식단'이 가장 중요하다. 삼시세끼 어떤 음식을, 얼마큼 먹느냐에 따라 환자의 컨디션이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아빠가 항암투병을 하는 동안 식사를 잘 챙겨드셨고 그렇기에 하루라도 더 버텨내셨던 것 같다. 암환자의 식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단백질이다. 물론, 항암성분이 풍부하다고 알려진 부추, 브로콜리, 양배추, 마늘, 현미 등등 식재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단백질이다. 그 이유는 바로 호중구 때문이다. 


호중구란 쉽게 말해서 몸 안의 백혈구 군대다. 항암주사를 맞는 환자들은 '호중구 수치가 떨어졌다, 낮게 나왔다'는 말에 정말 민감하게 반응한다. 왜냐면 호중구 수치가 낮으면 항암주사를 맞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호중구 수치(절대 호중구 수)가 1000 이하로 나오면 몸의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항암주사를 맞게 되면 위험하다고 판단, 환자를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낸다.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환자들은 새벽부터 버스, 기차를 타고 와서 병원에서 2~3시간을 대기하고 진료를 보는데 호중구가 낮아서 항암주사를 못 맞게 된다? 이건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다. 만약 경과를 시켜보자고 해서 내일이나 내일모레 다시 방문하세요,라고 한다면 서울에서 머물 곳 없는 환자들은 급하게 주변 모텔이나 숙박이 가능한 곳을 알아보게 되는데 만약 내일 와서도 호중구 수치가 1000을 넘지 못하면 정말 앞이 깜깜해지는 거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의 식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호중구 수치를 올릴 수 있는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이다. 사실 암환자들은 먹으면 안 되는 게 많다. 당이 많은 음식도 안 되고 석쇠에 구운 고기도 안 되고 뭐도 안되고 등등... 누군가는 육류를 많이 섭취하는 것이 암세포를 키우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암병동에서 우리와 상담했던 영양사는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면 일단 가리지 말고 뭐든 드세요!'라고 하셨다. 항암주사를 맞게 되면 4~5일 정도, 심하게는 다음 항암주사를 맞는 기간까지도 속이 메스껍고 구역질이 나고 입맛이 없다. 그래서 영양실조가 올 수도 있기 때문에 항암밥상의 기본은  '일단 당기는 건 무조건 먹어라!'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단백질이 풍부한 육류, 생선, 콩 등을 많이 먹으면 백혈구 수치를 향상하고 이는 곧 호중구 증가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고단백식품으로 알려진 닭발을 푹 고아서 만든 닭발곰탕을 정말 많이들 드신다.(건강원에 부탁해서 보약처럼 만들어서 드시는 분들도 꽤 많다) 처음에 엄마와 항암밥상을 차리기 위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정말 많은 분들이 닭발곰탕을 드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도 당장에 닭발을 주문했다. 하지만 그냥 달여서 곰탕으로 드리니 아빠는 안 그래도 항암주사 때문에 속이 니글거리는데 기름기 많은 국물까지 먹으라고 하니 도저히 못 먹겠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새로운 레시피를 고안해 냈다. 이름하야 '콜라겐 바'되시겠다. 먼저, 닭발을 큰 냄비에 넣고 푹 삶아서 기름기를 최대한 뺀 다음 다시 푹 삶아준다. 이 과정을 2~3번 반복하면 닭발이 흐물흐물해지는데 이 상태에서 한 김 식힌 다음, 닭발을 손으로 다 으깨준다. 그리고 파프리카와 다진 채소를 넣고 함께 버무려서 네모난 형태로 굳힌다. 그러면 마치 곤약젤리처럼 탱글탱글한 촉감의 '콜라겐 바'가 탄생한다. 그렇게 엄마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콜라겐 바'를 아빠는 매일 하나씩 드셨다. 


엄마가 매일 차린 항암밥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인데 첫째, 단백질 필수! 둘째, 채소와 나물은 4~5가지 이상! 마지막 셋째 간은 무조건 싱겁게 하는 것이었다.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에게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은 좋지 않다고 해서 엄마는 맵지 않은 고춧가루를 사서 김치를 담갔고 간이 너무 밍밍하면 땡고추를 갈아 넣어서 살짝 칼칼한 맛을 냈다. 음식을 조리할 때 쓰는 간장도 직접 간장을 담그는 분을 찾아서 저나트륨으로 간장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해 짜지 않은 간장으로 조리를 했다. 음식에 소금 간을 거의 하지 않았고 싱겁고 슴슴한 간을 기본으로 했다.


밥상에 올라가는 채소와 반찬은 삶은 브로콜리, 데친 양배추, 데친 연근, 상추와 깻잎, 파프리카 등등 생채소든 익힌 채소 든 상관없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역량대로 채소를 기본으로 깔고 채소와 나물 반찬을 만들면 된다. 반찬은 예를 들면 고사리, 시금치, 도라지, 멸치볶음, 감자볶음, 두부조림, 도토리묵, 콩나물무침, 버섯볶음 등등이 있다. 밥은 현미밥이 좋다고 하는데 아빠는 치아가 불편해서 씹기 힘들어해서 주로 콩밥을 많이 했다. 고기나 생선류의 요리는 돼지고기 묵은지찜, 갈비찜, 소불고기, 갈치조림, 고등어조림, 낙지전골, 문어숙회, 보쌈, 샤부샤부, 족발 등의 단백질이 풍부한 육류와 생선을 아침, 저녁때마다 꼭 하나씩 드셨다. 간식은 삶은 계란, 고구마, 삶은 밤, 삶은 콩, 현미 누룽지, 부드러운 오징어, 말린 과일과 채소, 생오이와 당근 그리고 입맛이 없을 땐 식사대용으로 뉴케어(두유 같은 음료)를 드셨고 과일은 샤인머스캣과 배, 귤, 키위(항암주사를 맞고 나면 속이 느끼한 기분이 많이 드는데 달달하거나 새콤한 과일을 먹으면 좀 괜찮아진다고 하셨다)를 많이 드셨다. 




그런 엄마의 정성을 하늘이 알아준 걸까, 1년이 넘는 항암치료 여정 중에 단 한 번도 호중구 수치가 100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아빠가 항암주사를 맞으러 가는 날, 진해에서 밤 12시 버스 막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간다. 고속터미널에 새벽 4시 30분쯤 도착하는데 거기서 기다리다가 첫차를 타고 잠실나루 역으로 가서 아산병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채혈실에 직원들이 출근하자마자 피를 뽑고 (오전 6~7시에 가면 이미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들이 채혈실 앞에 줄을 서있다고 한다) 밥을 드시고 로비에서 한숨 주무신다. 그리고는 오전 8시~9시쯤 채혈 결과가 나오는데 그때 호중구 수치가 함께 나온다. 호중구 수치를 확인하는 그 심정이 마치 성적표를 확인하는 마음과 같다고 했다. 아빠는 원래도 호중구 수치가 낮았는데 (항암치료 시작 전에 2,800 정도 나왔다) 보통 컨디션이 좋으면 2천이 넘었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천을 간신히 넘겼다. 그렇게 매번 외줄 타기를 하는 마음으로 항암치료를 받았다. 



사실 매끼를 영양소가 풍부한 밥상으로 먹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암환자 본인이 밥상을 차려서 먹어야 한다면 더욱더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돈이 조금 들더라도 암환자 배달 식단이나 밀키트 같은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을 꼭 챙겨드시라고 권하고 싶다. 항암치료만큼이나 식단도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에 식사만큼은 정말 전력을 다해서 잘 드셔야 한다. 입이 메마르고 속이 메스껍고 구역질이 나더라도 '이걸 먹어야 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꼭꼭 씹어서 한 입씩 드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먹은 한 끼로 인해 하루를 더 버텨내고, 또 하루를 더 버텨낼 수 있다. 그리고 그 하루는 가족들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고 완치로 가는 작은 발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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