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대장 아빠의 암투병기
1년 9개월 동안 투병하는 아빠의 곁을 지키면 보호자로서 참 느끼는 점이 많았다.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암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걱정과 위로, 응원을 하게 된다. 분명 좋은 마음에 한 말과 행동이겠지만 삶과 죽음의 생사에 있는 암환자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건넨 걱정과 위로, 응원 속에 담긴 선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그동안 아빠 곁을 지키면서 내가 느꼈던, 아빠가 가장 상처받고 힘들어했던 말과 행동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1. 잘 될 거야라는 말
사실 이 말은 암환자뿐만 아니라 위기를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한 번쯤은 건네봤을 위로이다. 처음에는 아빠도 주변 사람들에게 투병 사실을 알렸을 땐 '잘 될 거야, 요즘 기술이 얼마나 좋은데! 꼭 완치할 거야'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고 정말 많은 힘을 얻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아빠의 몸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희망이 점점 사라져 갈 때쯤,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아빠에게 '잘 될 거야'라고 말했다. 1차 항암제에 내성이 생기고, 2차 항암제에 내성이 생기고, 3차 항암제에 내성이 생기고 더 이상 받은 항암이 없을 때도 사람들은 아빠에게 '잘 될 거야'라고 했다. 이제 그 말은 아빠에게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혀버렸다. 왜냐면 아빠의 감정과 힘듦에 공감해주지 않고 그저 먼발치에서 '잘 될 거야'라고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미웠고 나중에는 얄밉기까지 했다고 한다.
'본인들이 암에 걸렸으면 저 말을 할 수 있을까? 본인의 가족이 암에 걸렸다면 나한테 대뜸 연락 와서 잘 될 거야~ 한 마디 툭 내뱉을 수 있을까?'라고 했다. 나도 처음에는 아빠에게 '잘 될 거예요'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는데 어느 날 아빠에게 나에게 그랬다.
"잘 될 거야라는 그런 헛된 희망 좀 주지 마, 아빠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데 아무것도 되는 게 없잖아. 너라도 아빠한테 그 소리는 하지 마. 그냥 아빠 얘기를 들어줘. 아빠가 힘들다고 하면 힘들구나, 아빠가 오늘 기분이 좋다 하면 좋구나 하고 그냥 아빠 말에 귀를 기울여줘. 아빠는 그거면 돼"
그 말을 듣고 정말 정신이 번뜩 깨었다. 내가 입버릇처럼 해왔던 '잘 될 거야'가 아빠의 마음속에 쌓여 커다란 돌덩이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는 그냥 묵묵히 열심히 싸우고 있고 그걸 가족들이 알아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내가 뭐라고 아빠의 투쟁에 한 마디씩 얹었을까, 아빠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래서 나는 말해주고 싶다. 암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잘 될 거야'라는 말은 희망을 줄 수도 있지만 가끔은 경청하는 것이 최고의 응원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들은 힘듦을 토로할 누군가가 필요하고 '왜 하필 내가 암이야'라는 하소연을 들어준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러니, 괜한 첨언은 하지 말고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2. 아플까 봐 연락 안 하는 행동
물론, 주변에 누군가가 암에 걸렸거나 큰 병에 걸렸으면 아플까 봐 상대방을 배려해서 연락을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닌 이상은, 연락을 꼭 한 번 했으면 좋겠다. 전화를 안 받고 문자에 답을 안 할지언정, 이 세상에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을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꼭 알렸으면 좋겠다.
우리 아빠는 췌장암 4기였지만 처음엔 이겨낼 수 있다는 투지가 가득했기에 주변 사람들한테 암 투병 사실을 알리면서 꼭 이겨내고 오겠습니다!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변 사람들한테 연락이 많이 왔고 아빠도 연락을 곧잘 받았다. 하지만 항암제가 몸에 쌓여가고 암이 점점 퍼져가면서 아빠는 투지를 잃었고 사람들은 아빠가 전화를 안 받고 문자를 안 받으니 연락을 점차 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에게 연락이 왔다. 친인척들을 비롯하여 아빠의 회사 동료까지 나에게 '아빠가 요즘 상태가 어떻니, 몸이 안 좋을까 봐 연락을 못하겠다' 라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빠가 아프고 나서 하루에 매일 한 번씩 전화를 했다. 전화해서 아빠의 오늘 하루는 어땠냐, 오늘 식사를 뭘 하셨나 물어보면 아빠는 곧잘 대답했다. 아빠는 내가 가족이어서 매번 걸려오는 전화를 받은 건 아닐 것이다. 매일같이 똑같은 삶을 반복하며 하루하루 의미가 없다고 생각될 때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게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대신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직접 연락해 보시라고, 아빠는 충분히 전화를 받을 수 있고 연락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연락을 회피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선 후회 하더라. 그러니 절대 아플까 봐, 신경 쓰일까 봐 연락 못하겠다고 하지 말고 그 사람을 정말 위한다면 그냥 연락을 했으면 좋겠다. 분명 누군가는 그 연락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3. 어디 어디 병원이 좋더라, 어디 어디 의사가 좋더라는 말
사실 이 말은 보호자들이 가장 상처받는 말이다. 보호자는 암환자의 가족이다. 누구보다 암환자를 살리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찾아보지도 않고 병원을 가고 주치의를 찾았을 것 같은가? 나는 아산병원을 다니면서 정말 놀랐던 게 췌장암 환자와 보호자들이 있는 단톡방이 있는데 그 방에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50~60대 어르신들도 카톡을 하고 각종 의학 기사와 논문을 뒤져서 정보를 정리해서 공유를 한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교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고 아마 아산병원의 췌장암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암환자와 보호자들 역시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피 터지게 공부하고 찾아봤을 것이다.
그러니 인터넷 검색 몇 번 한 거 가지고 암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어디 어디 병원이 좋은데 왜 거길 갔냐, 다른 병원도 가봐라' '어디 어디 의사가 좋다던데 왜 그 의사한테 진료 안 받았냐'라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게다. 정말 진심을 다해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면 직접 병원에 예약을 하고 그 의사한테 진료 예약을 한 다음에 가보라고 하던가, 몇 번 찾아본 정보로 '왜 이렇게 치료받고 있냐,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참견은 정말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기에 보태서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 보니까 이걸 하면 암이 낫더라~ 이걸 먹으면 암이 낫더라~라는 얘기도 진짜 많이 해주셨는데 나는 그분들에게 '직접 해주실 거 아니면 얘기하지 마세요. 직접 사주실 거 아니면 얘기하지 마세요. 저희도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암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큰 병이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큰 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조금 더 진중하고 배려가 넘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