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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으로 보이는 삶이더라도 나는 내 삶을 완수하고 싶다

카미유 클로델

by 김현비

하늘이 준 재능은 모두 그녀의 불행을 위해 쓰였다


“누나는 천재였습니다. 그러나 그 천재성이 그녀를 무너뜨렸어요.”


무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신병원에 누나를 강제 입원시킨 폴 클로델의 한숨 섞인 말속에는 누나에 대한 원망, 안타까움, 무망한 정념들이 섞여 있다.


“누나의 작품 속 인물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어요. 진흙 덩어리는 그녀의 손끝에서 생명을 얻었습니다.”


손끝에서 피어나는 예술적 재능과 잠재된 열정은 쉽게 꺼지지 않았고 그 열기는 결국 그녀의 삶을 통째로 태워 재로 만들었다. 그런 시대였다. 여성이 쉽사리 비운의 천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 주저 없이 삶과 젊음, 재능을 받쳐 사랑했던 연인이자 스승, 아니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이었던 로댕에게 버림받은 후 시작된 히스테리 증상을 가족들은 감당할 수 없었다.


로댕과의 지저분한 스캔들을 떠들썩하게 일으키더니 결국엔 자신의 작품을 로댕이 훔쳐 갔다고 발작을 일으키는 도저히 통제가 불가한 불같던 가문의 수치, 카미유를 정신 병동에 가둔 가족들은 동생 폴을 제외하고는 30년간 그녀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면회 한 번 가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그녀의 삶은 홀로 불태우다 홀로 재로 사라졌다.


“하늘이 그녀에게 준 재능은 모두 그녀의 불행을 위해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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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능력은 재능이 아니라 재앙이야


1864년 12월 8일, 프랑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카미유 클로델은 빌뇌브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작고 조용한, 기름진 흙이 많던 마을에서 카미유는 동생들과 진흙을 자주 만지고 놀았다. 사내아이였던 첫아이를 보름만에 잃고 15개월 뒤 태어난 카미유는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독 어머니의 외면과 냉대를 받아야 했다. 우울하고 불안한 엄마의 냉대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진흙을 만지고 다듬는 시간은 어린아이에게 풍성한 감정을 다듬는 촉감과 몰입, 위로의 시간이었다.


데생이나 조각 수업을 한 번도 받지 않았지만 그녀의 재능은 점점 두각을 드러냈고, 마침내 알프레드 부셰라는 조각가의 눈에 들었다. 예술적 재능을 지닌 딸과 아들들에게 최대한의 기회를 주고 싶던 아버지와 부셰의 설득에 따라 카미유의 가족은 파리행을 결정한다.


마지막까지 반대했던 것은 어머니였다. 여자가, 그것도 벌거벗은 사람을 조각하는 일을 하는 남사스러운 천한 직업을 내 딸이 한다니. 어머니 입장에서 못 미덥고 애착도 거의 없는 딸의 능력은 재능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결국 그녀의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온기 어린 손을 내밀지 않았다.


“예술적 소명이 우리 가족 중에 나타나, 끔찍한 불행을 가져올까 봐 두려웠다.”

폴 클로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02.jpg 카미유 클로델, <로댕 흉상>, 1886~1888년, 청동, 40x24.6x28cm, 로댕 미술관
01.jpg 카미유 클로델, <애원하는 여인>, 1898년, 청동, 27.9 × 36.8 × 21.3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녀의 재능은 나를 두렵게 했다


카미유는 스승 부셰의 소개로 에콜 데 보자르 교장을 만나 자신의 작품을 보여준다. 고작 십 대 후반의 여자아이가 작업한 습작을 보자마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교장은 로댕에게 배웠냐는 질문을 한다. 로댕, 그는 누구일까? 카미유는 로댕의 이름을 그날 처음 들었다. 머지않아 그 이름의 주인공은 카미유의 운명 전체를 틈입한다.


스승인 부셰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면서 로댕에게 자신의 제자들을 부탁했고, 그중에 카미유가 있었다. 운명의 시작이었다. 마흔두 살의 로댕은 열여덟의 카미유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더욱이 그녀의 재능은 그에게 두려움과 환희를 동시에 일으켰다.


“나의 연인, 내게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뜨거운 환희를 안겨주는 그대. 너의 곁에 있으면 내 영혼은 힘을 얻고, 너의 존경이야말로 그 사랑의 격정 속에서 언제나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필사적이고 애절한 로댕의 편지와 구애 속에서 두 사람은 곧 연인이 되었다. 까탈스럽고 변덕스러운 로댕의 요구를 맞춰가며 자신의 재능과 사랑, 젊음을 열정적으로 불태웠다. 나의 스승, 나의 사랑, 나의 삶, 나의 로댕 그리고 나의 조각. 카미유에게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로댕과 조각 단 두 가지뿐이었다. 그 외에는 어떤 것도 돌아보지 않았다. 불꽃같이 화려하게 타오른 운명은 서서히 사위어가고 있었다.


03.jpg 카미유 클로델, <성숙의 시대>, 1899년, 청동, 121×181.2×73㎝, 로댕 미술관


이것은 로댕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로댕에게는 오래된 충직한 연인이 있었다. 로즈 뵈레, 로댕이 가난하고 힘든 시절부터 로댕의 모델이자 내조를 해왔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도 있었다. 로댕은 카미유를 만나면서도 로즈와의 관계는 정리하지 않았다. 로즈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에게로 와달라는 요구와 애원도 로댕은 애써 모른척하곤 했으며 결국엔 로즈에게로 돌아갔다.


상실과 배신 사이에서 애원하고 무릎을 꿇고 구걸하고 있는 여성, 외면하는 남성, 남성을 끌어안고 가는 늙은 여성, 누가 보아도 로댕과 카미유, 로즈의 모습을 형상화한 <성숙의 시대>를 조각하여 세상에 내놓자 로댕은 분개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카미유의 작품은 이미 비평가들에게 찬사를 받고 있었지만, 로댕의 뮤즈, 로댕의 제자라는 꼬리표와 여성이 너무나 대범한 작품을 작업한다는 이유 등으로 사회에서 배척당했다.


“이것은 로댕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녀는 자주 말했지만 로댕의 그늘을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미 로댕은 예술계의 거장으로 그 영향력이 컸기에 카미유의 작품은 항상 로댕의 이름으로 짓눌리고 거절당했다. 운명의 사랑을 잃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참아가며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돌을 깎고 또 깎고 오로지 깎는 것뿐이었다.


04.jpg 카미유 클로델, <페르세우스와 고르곤>, 1905년, 대리석, 91x80.6x41.8cm, 로댕 미술관


내 안에는 언제나 나를 괴롭히는 빈자리가 있나 보다


모든 것은 무너지고, 젊음과 사랑은 시들었다. 술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울부짖다 탈진하고 분노로 욕설을 내뱉으며 오물을 담아 로댕에게 편지를 보냈다. 모든 슬픔과 분노, 외로움은 결국엔 그녀 자신에게로 향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재난이자 전염병인 것 같다. 나는 은총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존재일까. 언제나 견뎌낸 고통보다 더한 것이 기다리고 있는데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없다. 내 안에는 언제나 나를 괴롭히는 빈자리가 있나 보다.”


사는 것은 지옥이었다. 몸과 영혼이 망가지기 시작하자, 카미유는 로댕이 자신의 영감을 훔치고 표절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피해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의 작품을 하나둘 부수기 시작했고 편집증적인 증세는 점점 더 그녀를 광기로 몰아넣었다. 내면의 고통은 점점 더 증폭되며 그녀 자신이 되었다.


결국 가족들은 그런 그녀를 정신병원에 감금했다. 더 이상 삶에서 몰릴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미치지 않음을 주장하고 퇴원을 요구하며 면회를 와달라고 애원하는 편지를 썼지만 그녀에게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특히 어머니에게 와주길 편지하며 매일 기다렸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끝끝내 오지도 편지에 답장을 하지도 않았으며, 병원 원장에게 카미유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없도록 조치해달라고만 여러 번 편지했을 뿐이었다.


05.jpg 카미유 클로델, <왈츠>, 1893년, 청동, 43.2x23x34.2cm, 로댕미술관


시간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


병원의 No. 2307로 존재하던 카미유는 1943년 10월 19일 홀로 쓸쓸히 병실에서 생을 마감했다.동생 폴조차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자의 죽음, 공동묘지의 자리가 부족해지자 시신은 다른 곳으로 옮겨져 그녀의 흔적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사람처럼 사라졌다.


처음 흙을 만지며 어머니의 냉대를 견디던 다섯 살의 소녀, 젊음과 야망을 한 사람에게 바친 열여덟의 청춘으로 빛나던 여인, 걷잡을 수 없던 예술에 대한 열망과 원망으로 스스로 불이 돼버린 광기의 여성. 비극으로 보이는 삶이라도 삶을 완수하고 싶다는 그녀의 마지막 편지의 내용에 따라 내면의 불을 조각하던 그녀는 그렇게 산 채로 사위어가고 완수되며 시대가 변하고 나서야 재평가되고 있다.


조각가이자 오롯이 한 사람의 여인이기만을 바랐던 그녀의 삶은 그대로 작품 속에 남아있다. 삶에 애원하고, 사랑과 욕망에 휘감기고, 절망하고 고통으로 부서지는 얼굴들은 그녀의 비구한 인생과 함께 전달된다.


“당신은 결국 ‘당신 자신’이었습니다. 로댕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 솜씨에서뿐 아니라 상상력의 영역에서도 위대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입니다.” -외젠 블러-


KakaoTalk_20250205_115559911.jpg 오르세 미술관에서,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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