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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Aug 08. 2023

전철은 꼭 마음 같더라

평생을 대중교통과 함께 살아왔다. 내가 기억하는 첫 대중교통은 기차였다. 다섯 살 무렵이었나. 여름만 되면 전라도에 계시는 외할머니 집에 가는 것이 우리 가족의 연중행사였다. 그때 이후로 한 번쯤은 집에 차가 생길 법도 한데 아쉽게도 우리 집은 아직까지 차가 없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차에 큰 필요를 느끼시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직 한글도 떼지 못했던 내가 어디를 가야 할 때면 꼭 이용해야 했던 대중교통.


ktx도 없던 시절의 기차는 이랬다. 외관은 빨간색. 승강장으로 들어올 때면 귀를 찢는 경적. 내부는 꽤나 시끌벅적한 시장통. 의자는 파란색의 폭신하고 먼지 나는 의자. 그리고, 일정한 기간을 두고 승객들이 앉아있는 의자 사이를 오가는 간식 차. 이 간식 차 덕분에 전라도까지 가는 지루했던 길을 버틸 수 있었다. 뚜벅뚜벅. 마침, 저 멀리서 빨간 유니폼을 입고 호두과자 박스가 올라가 있는 간식 차를 끌고 한 아주머니가 들어오신다.


호두과자 있어요”


그때 당시에도 이상했던 빨간 유니폼을 입고 들어오시는 아주머니. 어찌나 반갑던지. 혹시라도 앞쪽 아저씨들한테 호두과자를 뺏길까 봐 아까부터 엄마에게 삼천 원을 받아냈었다. 주먹 바깥으로 튀어나온 지폐와 함께 아주머니께 달려간다. 그 앞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통통 뛰며 건네는 한 마디.


빨간 아주머니 호두과자 하나 주세요.”


.....


나는 여전히 대중교통과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성인이 되면 면허를 꼭 따자 했던 다짐 덕분에 취득까지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차는 없다. 하루는 전철을 타고 일하러 가는 길이었다. 촬영할 때면 언제나 들고 다니는 장비를 가지고 의자 한쪽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인천에서 의정부까지 가야 하는 먼 길.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전철로 이동하며 수없이 열고 닫히는 문. 그 문을 보며 전철의 비밀을 한가지 발견할 수 있었다. 지하철에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사람 마음이 오가는 것 같더라.


한 정거장에서는 많은 사람이 내리지만 그에 비해 적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어떤 곳에서는 적은 사람들이 내리지만 되려 넘치도록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아 내가 넘치도록 준 것에 비해 모자란 마음을 받을 때가 있다. 어떨 때는 내가 준 마음은 너무 부족하지만 되려 넘치도록 과분한 마음을 받을 때가 있다.


한편, 나를 생각하지 않은 과분한 마음은 나를 어지럽게 만들기도 한다. 가령,


내가 너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내가 진짜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세상 누구도 나만큼 네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수용인원 이상의 사람들로 가득 찬 전철은 한 발조차 서 있기 힘들다. 불편한 환경에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비명. 그 비명에 찡그려지는 얼굴들. 그때는 꼭 여유마저 사라져 정말 '속 좁은' 사람이 되기 마련. 나는 종종 과식 때문에 갑자기 배가 아파올 때면 화장실을 찾기 위해 걸음이 빨라진다. 이처럼 전철도 속이 더 어지러워지기 전에 속을 비워내야 한다.


반대로, 전철에 수용인원만큼 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리는 승객만큼 그대로 들어오는 것처럼. 세 명이 내리면 그대로 세 명이 타는. ‘아아, 생각해 보니 그건 더 끔찍해.’ 아무도 내리지 않으면 타지 못하는 상황이 마치 넌 마음을 준 게 없으니 받을 자격 없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아 싫다.


그러니 타협해야 한다. 내 마음이 어지러워지기 전에 비워내야 한다. 나를 고려하지 않은 말들도 잘 뱉어낼 줄 알아야 한다는 뜻. 그래서 호두과자 아주머니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은 꼭 비워놓기로 했다. 내 경우에는 누군가에게 받은 소중한 마음을 열심히 나누는 것. 먼저 사과도 해보고, 먼저 칭찬도 해보고, 먼저 감사도 해보는 것. 그러다 보면 내 안에 행복한 순간들로 가득 차 더 멋있는 마음 전철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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