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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Dec 19. 2024

가을의 뒤안길에서

보라매 공원 산책

꽃이 자취를 감추는 시절, 꽃양배추가 화려한 옷을 입었다. 자연은 꼭 누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자신이 지닌 고유한 모습을 감추지 않고 자랑하지도 않고 당당히 산다. 누구처럼 살려고 아등바등하며 애쓰는 사람들이 힘들게 사는 이유다.

잎을 다 떨군 산수유가 메마른 시절을 빛낸다. 한해 애쓴 결실이 알차다. 새로운 해를 맞으면 누구나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끄트머리에는 대부분 아쉬움과 후회를 맛본다. 산수유의 치열하게 살아 온 뚜렷한 흔적이 아름답다. 너희도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한바탕 훈시를 들려주는 것 같다.

직박구리가 앉았다.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한 텃새다. 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잘 살고 있다는 뜻이다. 직박구리는 적응력이 뛰어난 새다. 새들이 먹이로 하는 것들은 물론 남들이 먹지 못하는 독 있는 열매들을 먹이로 삼는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일들을 거침없이 도전하고 넘어지면서 적응력을 키웠을 것이다. 그렇게 남과 다른 역량을 키움으로 살아가는 데 큰 무기를 지니게 된 것이다.

가을의 뒤안 길, 여전히 남아 가을을 들려주는 단풍의 노래의 여운이 깊다. 화려하던 원색이 점차 옅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고운 자태다. 나도 저들처럼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낙엽도 나무들이 치열하게 살아낸 흔적이자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희생이다. 끊임없는 노동으로 나무의 생명을 유지할 뿐 아니라 성장하는 주역이었지만 떠날 때 미련 없이 그 어떤 보상이나 명예를 탐하지 않고 흔연히 자신을 버린다. 정자 지붕 위에, 산자락에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이다.

숲에 백합나무가 군락을 이뤘다. 하나같이 자태가 똑 바르다. 딴 데 눈을 팔지 않고 오롯이 하늘을 향해 자란 까닭이다. 하늘을 마음껏 소유해서 남과 다툴 필요가 없다. 좋아하는 햇살도 누구보다 먼저 차지하기에 더 높은 자리에 오른다. 수피의 무늬도 아름답다. 빨리 자라는 나무는 무른 법인데 백합나무는 단단해서 좋은 재목으로 쓰인다. 백합나무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

#보라매공원 #가을 #산책 #백합나무 #직박구리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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