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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누나 Jul 23. 2024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다는 것

무조건적 수용의 중요성

회피 경향은 본능적이면서도, 장기적인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적절한 처리와 대처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법, 학문, 그리고 열심히 사는 법에 대해 배운다. 하지만 성장하는 의무교육 과정에서 한 번도 제대로 쉬는 방법이나 나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AI시대의 사회적 이슈로 요즘 유치원과 초등교육 과정의 교육방식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야 한다고 배웠지만, 정작 '나는 누구고, 무엇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우리가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확실성에 불안을 겪는 모든 이유는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나는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주지 않는 문화와 환경 속에서 반항심이 있었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될 것인지, 나를 믿고 주체적으로 사는 통제불능의 유별난 애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나는 결국 전자를 선택했고, 그 결과 내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주체적인 삶이 아닌 누군가의 조언과 먹고살기 위해 꾸려간 나의 삶이 실패였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보기에 꽤 괜찮은 또는 나쁘지 않은 환경들을 가지고 있고, 그런 과정에서 이룬 것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했던 단 한 가지. 내가 그토록 찾고 싶었던 정작 '진짜 나'는 그 삶에 빠져있었다는 사실. 

그러니 어떤 성취를 이뤄도, 남들은 '너 정도면 괜찮은 삶인데 왜 그래'이라는 말들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의 내면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었다. 공허했다. 


이것을 나를 불안하게 했고 자꾸 사회적 욕구에 몰입된 삶을 살게 했다. 내가 이런 감정이 드는 이유가 처음에는 나라는 존재를 찾지 못해서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았을 때, 나를 혹사시켜 가며 그 불안을 일로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삶에서 쉼을 반납하여 열심히 일한 보상의 결과는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전에 없던 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만 하기위해 태어난 기계가 아닌데, 나라는 존재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우리를 둘러쌓고 있는 관계나 환경, 업무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리는 무엇 때문에 괴롭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잘 생각해 보아야한다. 만약 나를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하는 어떤 관계가 있다면, 계속 나에게 고통을 주고 강박, 중독, 억압, 불안, 우울, 다양한 욕구 등으로 감정으로 나타나고 있다면, 잠깐 멈추고 나를 들여다보아야 할 마음의 신호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첫 단계는, 왜 자신을 이해하기 어렵고 사랑하기 힘들었는지를 돌이켜보며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경험이 부족했다면 자신을 이해하고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처음에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처음 형성되는 관계인 가족,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부모님의 행동과 반응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조건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 가족 외에도 학교, 친구, 직장 등 사회적 관계에서도 우리는 조건부 수용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사회적 인정과 비판을 통해 자신을 특정 방식으로 드러내거나 억누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조건부 수용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다양한 관계 속에서 반복된 패턴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나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

우리는 성장하면서 부모 또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한 경험적 데이터가 쌓여 자신을 조건적으로 드러내고 생각과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배워왔다. 현생에서 살아남기위한 기술과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기제를 만들게 되는 데, 이러한 강력한 보호막과 성장하면 쌓인 다양한 기술들은 진정한 내면의 나를 발견하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자동화 된 사랑받기 위한 모습과 그렇지 못한 모습을 나누게 되며,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억누른 모습은 마음의 병이나 스트레스를 유발하게 된다. 





빛과 그림자를 받아들이기

모든 사람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과 싫어하는 모습 모두 나의 일부이다. 이 두 면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부정적인 모습도 나의 일부이며, 이를 억누르기보다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타인의 관계와 스스로의 비난 및 자책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상담했던 내담자 사례

상담했던 A는 다정하고 착한 B는 모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느라 지쳤다고 말했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칭찬과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또 다른 B의 사례에서는 평소 열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A는 게으른 자신을 부정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기대와 사회적 압력과 관계가 있었다.



이렇듯, 우리는 알게모르게 다양한 경험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으며, 우리는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존과 적응에 부정적인 감정이 방해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를 회피하려는 본능이 진화해 왔다는 학술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적절한 처리와 대처가 필요하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은 나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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